경포대 인근 식당에서 여동생과 점심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요?” “강릉 경포대. 00이랑 1박 2일로 놀러 왔거든” 내 말에 남동생이 깜짝 반가워했다. “와~ 좋네. 진즉에 그러시지.” 한가롭게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뜻이다. 그동안 시간적 여유 없이 사는 내 생활을 남동생은 자주 안타까워하곤 했다.
사실 나는 늘 시간이 모자랐다. 아이들 어릴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 집을 떠난 후에도 한가한 때가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더 부족했다. 이런저런 계기로 인연이 된 사회활동과 뒤늦게 뛰어든 상담심리라는 학문은 깊이 들어갈수록 어려웠다. 상담과 공부를 병행하게 되면서부터는 더 바빠졌다. 그러므로 꼭 필요한 행사 외엔 형제들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여유를 모르고 산다며 형제들은 나를 이해 못하겠다는 투였다. 남동생은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잘 생각하세요.”
해가 바뀔수록 여유가 생기기는커녕, 한 달 일 년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곤 했다. 사실 나도 어느 때부터인가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나처럼 늦은 나이에 상담현장에 뛰어든 동기들은 박사과정에 진학하거나 공신력 있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를 계속해나갔다. 나이와 상관없이 일과 학문에 몰두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어는 순간부터 내가 추구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 깊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사는 이유가 뭐지? 학문 탐구에 대한 지적 욕구와 열망? 사회적 성취? 상담사로서 상처 입은 이들에게 위안과 힐링을 주고 싶다는 순진한 사회적 의무감? 이러한 바람들은 내게 있어 상담학 입문 초기에 해당되었다. 이젠 세월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가늠해보았다. 한 때 절실함으로 다가왔던 가치들의 의미가 이젠 퇴색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를 깨우는 새로운 울림에 마음의 귀를 세웠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뿐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소중히 하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너 자신에게 잘 대해 줘라. 타인에게 잘 대해 줘라.’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병상에서 남겼다는 말 중 일부이다.
남동생이 내게 하고 싶은 말도 이것이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일단 쉬어가자. 아니 멈추자. 너무 늦어지기 전에 가족과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갖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잡스조차도 죽음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 주제에 무슨 사회에 영향을 미치겠다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진해가며 나를 내몰고 있을까. 내가 무엇을 얻고 놓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했다.
젊은 나이라면 모를까 인생의 전반기를 정리하고 후반기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는 시선이 외부로 향하기보다 내면을 향해야 한다. 그리고 내면을 풍요롭게 할 자기만의 진정한 원트(want)를 찾아야 한다. 더 세월이 흐른 후, 뭔가 헛헛한 아쉬움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나는 생의 마지막을 앞둔 병상에서 아쉬움과 미련이 아닌, 가족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 행복했던 기억으로 만족한 미소를 짓고 싶었다.
단풍이 예쁜 가을이면 나보다 두 살 적은 여동생은 계절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른 채 살고 있는 나를 챙기며 아쉬워했었다.
“언니야. 벌써 단풍 다 지겠다. 올해도 가을 여행 함께 못 가는 거야?”
“응. 내년엔 꼭 가자.”
그 내년이 몇 번을 더 지난 다음, 가을은 아니었지만 드디어 오늘 여동생과 강원도 여행을 오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왔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 유영하듯 살고 있는 요즘의 날들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동생과의 여행도 즉흥적으로 정했다. 예전 같으면 벼르고 별러야 겨우 뺄 수 있는 일정이었을 텐데 말이다.
어제 평창에서 1박을 하고서 오전엔 월정사 전나무숲 일대를 산책하며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했다. 숲길을 걷는 동생의 뒷모습을 영상 촬영했는데 연예인처럼 멋지다고 동생을 띄워주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맑았다. 경포대 인근 맛집에서 점심을 마친다음, 경포해변을 산책하며 봄 바다를 감상했다.
동생과 나는 새로운 장소마다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는 솔직해서 우리의 주름진 얼굴을 거짓 없이 보여주었다. 그점이 싫었다. 그래서 더 찍었다. 카메라가 혹 실수하여, 한 두장쯤은 우리의 나이를 2,3년쯤 전으로 되돌려놓기를 기대하며, 여러 컷을 찍었다. 이런 놀이도 자매이기에 가능하다. 젊은 아들딸들은 마음은 여전히 소녀인 어미들 심리를 그런 면에서 헤아리지 못한다.
동생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가족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다. 산다는 건 정말 별 거 아니다.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을 감사하며 마음껏 누리는, 이것이 행복이다.
우리는 각자의 카메라로 찍은 서로의 사진을 열어보며 또 한 번 즐거워했다. 언제 이처럼 희한한 표정을 지었을까 의아해하면서 킥킥거렸다. 앞으로는 사진을 찍을 때 얼굴이 아닌 뒷모습만 찍자며 유쾌하게 웃었다.
아무려나,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나는 형제들과 친구들과, 그리고 나 혼자서도 ‘가장 젊은 날’들을 아낌없이 즐기기로 했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일이며, 타인에게 잘 대해줄 힘도 거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