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 2학년이 되고 싶은 1학년

by 김태라


오늘은 걷는 내내 마음속이 시끄러웠다. 마음속의 목소리들에 잠식당하는 느낌이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살도 빼고 체력도 올리고 싶고, SNS에 업로드하는 여행기들에 좋아요를 더 많이 받고 싶고, 한국에 돌아가서 이런저런 작업을 해서 꼭 성공하고 싶고, 타인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마음을 어지럽혔다. 쉬러 왔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지만, 사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증명하고 싶고 이루고 싶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시은 마음이 나쁘다곤 할 수 없지만 결국은 지금의 나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어떤 것도 증명하거나 이루지 않아도 지금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다.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요즘 걸으며 듣고 있는 ' 하루의 사랑작업‘이라는 유튜브에서 비유하듯 나의 마음은 2학년이 되고 싶은 1학년인 것 같다. 하루빨리 2학년이 되고 싶어 1학년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보다 2학년이 하는 것만 부러워하고 따라 하려고 하는 1학년말이다. 1학년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사랑해 주며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2학년도 되고 학년도 되겠지만, 지금의 나는 언제쯤 나는 2학년이 될까만 생각하고 있다.

1인 작업자로서 내 이름을 건 괜찮은 작품 하나 세상에 하나 내놓고 싶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커리어를 만들고 싶다. 40대에는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싶고, 언젠간 내 집도 가지고 싶다. 지금보다 더 예뻐지고 싶고, 지금보다 더 운동도 잘하고 싶고, 장녀로서 부모님께 효도도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어디에 내놓을만한 커리어도, 모아둔 돈도 없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오늘은 그런 나에게 질문이 들었다. 꼭 2학년이 되어야 하나? 나는 정말 2학년이 되고 싶나?

차로 1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1시간 동안 걷는, 비효율의 끝판왕의 행위를 선택해 놓고 매일 어떻게 효율적으로 더 많이 걸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어디에서 쉬어야 더 가성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빨리 걸으러 온 게 내 목표가 아닌데 말이다. 순례길에서 경험하는 진짜 선물들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 안에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도 내 몸에 깊게 베인 생각의 습관들은 그대로이다.

빨리 더 많이 걷고 싶은 마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머리가 아파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적당한 나무 그늘을 찾아 드러누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탓에 금방 잠에 들었다. 누군가의 발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며칠 전만난 순례자였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늘 안으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좋아 조금 더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2학년이 되고 싶은 1학년

D+10 포르투갈길 10일 차

️루트 : Alvaiázere-Rabaçal(약 3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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