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 고행의 길

by 김태라



”문명이 없는 어디론가 가고 싶어”


순례길에 오기 전 친구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오늘 비문명타령 하던 과거 나의 허세를 제대로 치료받았다.

어제 도착한 마을에는 식당이 하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방에 남은 빵 두 조각 중 하나로 고픈 배를 대충 때웠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부터 걸을 힘이 하나도 없었다. 멍하니 알베르게 정원에 드러누워 있는데 새로운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아... 나도 얼른 출발해야지...‘


정오쯤이 되어서 길에 나섰다. 그리고 나의 고행 길이 시작 되었다. 4킬로쯤 걸었을 때부터 이미 체력의 한계에 도달했다. 하필 오늘 지나가는 길은 쓸데없이 아름다운 숲길이었다. 빽빽한 나무들 속에 혹시라도 먹을만한 것이 있을까 살피며 걸었지만 역시나였다. 너무 배가 고팠다. 점점 정신도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길가에 예쁘게 핀 라벤더도 먹음직스럽게만 보였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최후를 위해 남겨둔 마지막 빵 한 조각을 꺼냈다. 며칠 전 식당에서 먹다 남은 빵이었는데 퍽퍽해서 질긴 고기를 씹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까지 주워 야무지게 입에 넣었다. 허기와 뜨거운 태양, 무거운 배낭까지 짊어지고 걸으니 왠지 예수의 고행의 길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작은 마을을 지나는 길에 과일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허기가 극에 달했던 터라 남의 집 정원 안에 있는 과일나무라도 기어 올라갈 준비가 되었었지만 다행히 도로의 갓길에도 과일나무가 많이 있었다. 이름 모를 열매, 오렌지, 레몬 나무가 있었다. 오렌지를 여섯 개 넘게 먹었지만 허기는 계속되었다.

오늘 도착할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문명의 노예인 주제에 시끄러운 문명과 사람이 없는 곳에 가고 싶다고 허세스럽게 이야기했던 과거가 새삼 부끄러워졌다.

해가 지고 있었지만 오늘은 잘 곳이 없어도 일단 먹어야 했다. 타이밍이 맞아 다른 순례자들과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의 고행을 보상을 하듯 메뉴는 완벽했다. ' 순례자들을 위한 메뉴‘였는데 15유로에 따듯한 수프와 구운 돼지고기, 샐러드, 감자튀김, 푸딩, 커피까지 포함이 되었다. 문명인처럼 대화를 나누며 우아하게 음식을 즐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짐승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삼켰다. 친구들이 자신들 접시에 있던 음식을 내 접시에 덜어 주었다. 덕분에 남은 음식은 모두 내 몫이 되었다. 남은 고기와 감자를 정성스럽게 썰어 도시락통에 담았다. 친구들은 음식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나를 신기하듯이 바라봤는데 나는 식당을 찾기 힘든 순례길에서 음식에 미련을 갖지 않는 그들이 더 신기했다. 문명의 조각을 끌어모으듯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도시락 통에 담았다.

음식을 충분히 다 즐기고 나니 어느새 밤 열 시가 넘어있었다. 무사히 숙소도 구했고, 운이 좋게 삼인 실 방을 혼자 쓸 수 있게 되었다. 배도 부르고, 따듯한 물에 샤워도 하고, 편안한 침대도 있고... 문명 최고다.




고행의 길

D+8 포르투갈길 8일 차

루트 : Calvinos - Alvaiázere(약 22km)








마을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성당의 종소리가 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왔다. 눈을 뜨니 유럽 특유의 작은 다락방의 낮은 천장이 보였다. 방 안의 엔틱 한 가구들은 낡았지만 고풍스러웠다.


'아 내가 유럽에 있긴 하는구나.'


기분 좋게 침대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침을 여유롭게 즐겼다. 딱히 쉴 계획은 없었지만 화창한 날씨도, 아기자기한 이 마을도, 낡은 다락방도, 주위의 모든 게 마음에 들어서 하루 더 묵고 가기로 결정했다. 커피를 마신 후 별달리 할 일이 없어 괜히 알베르게 주인 주위를 기웃거렸다. 그는 순례자들이 떠난 방을 청소하는 중이었다.


“오늘 부활절인데 뭐 해?”

“휴일을 맞아서 아들이 집에 왔어. 이따 같이 성당에 갈 거야.”

“나도 데리고 가.”


난 가족이 천주교라 성당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성당은 명절에만 가기에 오랜만의 미사였다.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길에 성당이 생긴 건지 성당이 있는 곳을 향해 순례자들이 걸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순례길은 지나치는 마을의 성당을 꼭 거쳐가게 되어있다. 매일 많은 성당을 지나쳤지만 미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자랐다. 하지만 나는 무교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낯선 나라에서 미사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눈물이 난다. 무슨 마음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오늘도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이 벅찬 것도, 반가운 것도, 슬픈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늘은 금장으로 꾸며진 제단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낯선 타지에서 느끼는 고향의 냄새일까? 어려서부터 익숙한 공간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눈물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이 떠오르질 않았다.

며칠 전 종교적 이유로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부활절이 다가옴을 알려주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수는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에게 외면당하고 비난받는다. 심지어 그의 제자들마저 모두 도망을 간다. 예수는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긴 거리를 걷는다. 사람들은 예수를 향해 야유와 조롱을 보낸다. 예수는 하늘에 대고 말한다.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예수는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사흘 뒤 부활한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순례길 위에서 들으니 이야기의 맥락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신기한 사실의 깨달았다. 내 인생의 위기들은 부활절을 기점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2018년 필리핀 여행 중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다. 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있었는데 오토바이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순간 하늘을 날아 아스팔트에 얼굴부터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얼굴로 시작해 온몸으로 아스팔트를 쓸어내리며 떨어졌다. 팔이 부러지고 얼굴 살갗이 뜯어져 나갔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불행하게도 부활절 주였다. 기독교 국가인 필리핀은 부활절 주에 모든 가게가 닫고 심지어 의사들도 휴가를 떠난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뇌에 이상이 없다는 의사소견이 필요했는데 서류에 사인을 해줄 의사들은 모두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부러진 팔과 찢어진 얼굴을 대충 소독만 한 채로 병실에서 사 일이 넘게 의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작년에 건강문제로 갑자기 수술받게 된 것도 부활절 주였고, 그보다 몇 년 전에 임금체불로 한 회사를 노동청에 고발하며 법률 분쟁이 있던 것도 그즘이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최악의 순간이자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이 부서지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선명하게 성장했다. 진짜라 믿어오던 세상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내가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패턴을 깨닫고 나니 여러모로 예수의 부활이야기가 나의 버전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십자가를 지고 고행을 하는 예수, 욕망을 가득 담은 배낭을 메고 순례길을 걷는 나. 많은 이에게 조롱받고 질타받는 예수, 내 내면의 에고들의 목소리에게 조롱받고 질타받는 나.

미사의 끝 무렵이 되니 사람들이 일어나 십자가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만신창이가 된 예수의 발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한 인간의 최후의 모습이 중심에 걸려있고 주위에 죽음에 대한 찬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예수의 고행의 여정을 찬양하고 그의 죽음을 향해 기도를 한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미사를 조망하다 보니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참 기이하면서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괜히 나의 순례길이 그 한 부분이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릿지릿한 발의 통증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예수와 나의 평행이론

D+9 포르투갈길 9일 차

Alvaiázere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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