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였다. 몇 달 전 헤어진 애인의 아이였다. 이 사실을 통보하기 위해 그를 다시 만났다. 긴장되었다. 그가 반가워하지 않을 소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아이를 낳을 거야"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통보였지만 나는 그의 얼굴의 미묘한 변화를 예민하게 살폈다. 그가 나를 지지해 주고 나와 함께 하겠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는 묘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 없이 나를 응시하기만 했다.
- 2023. 4. 7. 일기 중 -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 남자가 나를 반겼다. 그는 친절하게 침실과 주방,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까지 설명해 주었다. 내가 숙박비를 주려고 하자 그는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식탁 위에 놔두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는 나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순례자였다. 이 알베르게는 특이하게 주인이 상주하지 않고 순례자들이 알아서 시설을 이용하고 돈을 테이블 위에 놓고 가면 되는 곳이었다.
다섯 개의 침대가 있었지만 오늘은 그와 나만 있었다.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그는 저녁을 먹으러 마을로 나갔다. 나는 예산을 아끼기 위해 하루에 한 끼만 사 먹고 있다. 플라스틱통을 들고 다니면서 점심에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은 통에 담아 저녁에 먹는다. 오늘은 산을 하나 넘어왔더니 힘들어서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기에 가방에 있는 바게트로 대충 저녁을 때웠다. 샤워를 하며 빨래한 옷들을 널고 있는데 순례자가 돌아왔다.
그와 지는 해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이번 여정은 그의 두 번째 순례길이었다. 첫 번째는 프랑스길이었다. 프랑스 길은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라고 한다. 그는 여러 문화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순례길의 매력에 빠져 다시 걷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포르투갈길에는 순례자가 별로 없어 실망이라고 했다. 속으로 이 길에 오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문화의 사람을 만나는 여행방법은 많은데 왜 하필 순례길이야? 순례길의 무엇이 특별해서 돌아오게 되었어? "
"너는 걸으며 필요한 모든 것을 너의 등에 짊어지고 걸어.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순례길 위에선 네가 욕망하는 것의 무게를 너의 발이 솔직하게 느낄 수 있어. 그리고 곧 넌 네가 걷는데 무엇이 진짜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를 알 수 있지. 일상에서 삶은 복잡하지만 까미노 위에서 인생이 심플해져. "
그리곤 종교인들은 순례길을 ‘발로 하는 기도’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그의 첫 순례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고 일상을 되찾아 잘 살고 있었다. 처음 순례길에 오르게 된 것은 업무적 스트레스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후였다. 여느 날처럼 순례길을 걷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이 올라와 크게 오열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도 크게 놀란 경험이라고 했다. 그리고 순례자들은 순례길에서 최소한 한 번은 운다고 했다.
순례길 오기 전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순례길 위에서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무슨 감정일까 궁금했다. 지금 상상해도 별로 내가 울 일은 없을 것 같다. 근데 다른 사람의 그 순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로 하는 기도, 어떤 의미일까. 걷는다는 가장 보편적이고 단순한 행위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순례길에 오기 전 나는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내 안의 여러 가지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서 쉬어도 쉰 것 같지도 않고,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는 약도 먹지 않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조용해졌다.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 같다.
친구가 ‘이번 여행에서 뭘 하려고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 어떠냐’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러나 걸으며 느껴지는 나의 모든 감각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기도이려나 생각이 되었다.
발로 하는 기도
D+6 포르투갈길 6일 차
루트 :Golegã-Asseiceira(약 20km)
내 스마트시계는 아침마다 모닝리포트를 보내준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계속 '휴식 요망'이라는 알람을 보내고 있다. 스마트시계가 그렇다고 그래서인 건지 날씨가 더워서인 건지 오늘따라 몸이 무거웠다. 투벅투벅 느린 발걸음으로 걷던 중 활기찬 걸음으로 걷고 있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며칠 전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미국인 가족이었다. 이들과는 몇 번 마주친 적 있지만 각자 갈 길이 바빠 간단한 인사만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함께 걸으며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은 다섯 명이었는데 삼 남매와 각자의 파트너들이 함께 왔다고 했다. 처음에 가족이라고 했을 때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당연히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장 큰 형이었고 막냇동생과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는 은퇴 전 이미지를 분석하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장의 화물선 사진을 보고 배의 모델, 나무의 무늬, 배가 띄워진 정도를 보고 배 안에 어떤 물건이 있으며 어디 나라에서 왔는지를 분석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흥미로운 삶 이야기를 들으며 걸으니 이들의 빠른 걸음도 따라갈만했다. 나는 듣기만 해서 괜찮았지만 나이도 많은 순례자가 계속 얘기를 하며 걸어서 금방 지칠까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점점 지치는 건 나였다. 70대 후반의 노인에게 체력으로 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나는 늙음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있다. ‘나이 듦’이란 ‘쇠약함’과 ‘나약함’의 동의어처럼 생각해 왔다. 늙음은 곧 체력저하를 의미하고, 체력저하는 나 같은 1인 가구이자 1인 사업자 프리랜서에게는 생명유지와 연결된다. 나한테 몸이 아픈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 내가 사고를 당한다면 지나가던 사람이 구급차라도 불러주겠지만 내가 집 안에서 골골대고 있다고 관심 가져주는 이는 없다. 월세 계약이 끝날 쯤에야 미라가 되어 발견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교통사고보다 작은 병이 더 무섭다. 그래서 매년 한 살씩 늘어갈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모두가 말하는 ‘안정’이라는 것을 이뤄내야 할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정답처럼 자리 잡고 있던 '늙어감 = 쇠약함 = 죽음'이라는 공식은 지난 며칠간 상당 부분 깨졌다. 순례길에서 만난 순례자의 상당수가 중년, 노년층이었다. 그들은 배낭을 메고도 집 앞을 산책하는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그들을 보면서 상상하던 미래에서 쇠퇴가 아니라 성장을 보았다. 지금부터 노력하면 나도 저 나이 때 저들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시간과 친해질 용기가 생겼다.
시간과 친해질 용기
D+7 포르투갈길 7일 차
루트 : Asseiceira - Calvinos(약 2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