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이 특정한 길 이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까미노 드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라는 이름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모든 길을 의미했다. 더 정확하게는 도시가 아니라 12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스페인어로 Santiago) 무덤 위에 세워진 산티아고 대성당(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걷는 길이다. 천 년이 넘게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이유로 성야고보의 유해를 향해 걸어오는 고행을 시작했고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걸은 몇 개의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었다. 현재는 네 개의 길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드에서 시작하는 프랑스 길(Camino Francais), 스페인의 북쪽 해안선을 따라 걷는 북쪽길(Camino del Norte), 스페인 남부도시 세비야에서 북쪽으로 종단하는 은의 길(via de la plata),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종단하는 포르투갈길이다.
그중 내가 포르투갈 길을 선택한 것은 그중 가장 인기가 없는 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르투갈길 완주 후에는 두 번째로 인기가 없어 보이는 북쪽길을 걷을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유명한 프랑스길을 추천했지만 순례길을 걷는 동안 웬만해선 어떠한 문명이나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선택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이틀 전에 길을 잃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도 없어 한참을 헤맸다. 덕분에 10시간이 넘게 걸었고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느낄 때쯤 겨우 목표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밤 열 시가 넘어 공립알베르게는 마감한 상태였고 지도에 표시된 숙박업소들은 아무리 문을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노숙을 해야 하는 건가, 피할 수 없다면 역시 교회 앞이 안전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걷던 중 운이 좋게 문이 열려 있는 바를 찾게 되었다. 포르투갈어를 하나도 못했지만 생존의 문제였다. 바 주인이 알아듣든 말든 다짜고짜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어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바 주인의 말은 이해를 못 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이 마을의 숙박업소들은 폐업상태이거나 휴업상태인 것 같았다.
나는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마음을 담아 더 큰 바디랭귀지로 ‘큰일이야! 나는 오늘 묵을 곳이 필요해!’라며 호들갑을 피웠다. 덕분에 바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모아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한 호텔주인을 잠에서 깨우는 데에 성공했다.
그저께 밤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넘겼지만 그 위기감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는 아예 출발하기 전에 도착할 마을의 숙소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미 모든 숙소가 만실이었다. 걸을 때는 분명 발자국 하나 보지 못했다. 요즘 순례자들은 다들 전동킥보드라도 가지고 다니는 건가 그 많은 순례자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 남은 알베르게마저 만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모르게 수화기 너머 알베르게 주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다른 알베르게에도 남은 침대가 없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정말이지 나는 다음 마을까지 걸을 힘이 없어 "
마음 좋은 알베르게 주인은 내 불평을 다 들어준 후 조심스럽게 자신의 집 정원에 작은 막사가 있는데 거기라도 괜찮겠냐고 제안해 주었다. 나는 ‘지붕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말하곤 수화기 너머 천사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호스텔이 아니라 알베르게 주인이 실제 거주하는 가정집이었다. 공간은 따듯한 알베르게 주인의 목소리와 많이 닮아있었다.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한 마리의 반려마가 정원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저녁이 준비되고 있었다. 알베르게 주인은 어딘가 정신이 없으면서도 신이 나 보였는데 순례자들이 끊기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오랜만에 많은 손님들을 맞는 모양이었다.
도착해 있던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하러 거실로 나왔다. 오늘 이곳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모두 나와 같은 날 리스본에서 출발한 사람들이었다. 순례길 동기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대화는 어색함 없이 이어졌다. 배낭의 무게에 놀란 1일 차와 그럼에도 무식하게 걸어낸 2일 차, 그리고 자신의 체력과 타협한 3일 차의 경험을 나눴다.
각국에서 모인 순례자들 중에 프랑스에서 온 중년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해 대화를 띄엄띄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참 나중에서야 내가 여기에 오긴 했지만 몸을 누리울 침대가 없다는 것을 알고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했다. 불어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에게 자신들을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자신들의 방에 있던 침대 하나를 가리키고 자는 시늉을 했다. 자신들과 함께 방을 나눠서 쓰자는 말이었다. 깜짝 놀랐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이를 자신의 기꺼이 방에 초대한다니, 지난밤 몸을 뉘일 곳을 찾지 못해 한참을 길바닥에서 헤맸던 터라 더더욱 말할 수 없는 따듯한 감동을 받았다.
어젯밤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오늘 이들과 함께 걷게 되었다. 긴 거리를 걸으며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는데 정말 신기한 건 우리가 서로의 언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함에도 서로의 말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둘은 순례길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산티아고로부터 서쪽으로 90킬로미터 정도 계속 걸어가면 ‘세상의 끝(The End Of World)’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피니스테레는 스페인 이베리아반도의 최서단 지점에 있는 곶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영토를 넓혀가던 시절 이곳이 서쪽 대륙의 끝이라고 믿고 ‘최후(Finis)의 땅(terre)’이라는 뜻으로 '피니스테레(Finisterre)'라고 불렀다. 이후에도 오랜 기간 이곳은 세상의 끝, 하루의 해가 죽음을 맞으러 오는 곳이라고 믿어졌다고 한다.
얼마나 로맨틱한 스토리인가. 세상의 끝에서 피어난 사랑이라니. 내가 황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자 존마리는 신이 나 덧붙였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안내해 주는 순례길 표지석의 마지막 표지석, 0킬로미터 표지석은 산티아고가 아닌 피니스테레에 있어. "
Km0.000, 세상의 끝, 하루의 해가 죽음을 맞이하는 곳, 사랑이 시작하는 곳. 오늘 도착할 마을의 이름은 못 외웠지만 피니스테레는 내 뇌의 장기저장소에 깊게 박혔다. 이번 기회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존마리는 이번이 다섯 번째 순례길이라고 했다. 같은 길을 두 번 걸은 적도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볼 것도 많고 갈 곳도 많은데 같은 길을 또 걷는다니, 나로선 잘 이해되지가 않았다. 그에게 순례길의 어떤 점이 좋냐고 물었다.
"보통의 여행은 숙소가 되었든, 차가 되었든 언제나 회귀를 해야 해. 순례길은 그렇지 않아. 우리는 계속 앞으로만 걸어. 그리고 한번 지난 길은 뒤돌아 보지 않아. 나는 그 점이 좋아."
그의 대답은 내 머릿속에서 인생의 이미지로 펼쳐졌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 인생에 회귀점이란 없다. 순례길을 걸을 땐 지난밤 묵었던 숙소가 얼마나 좋았든 그곳에 다시 돌아갈 일은 없다. 그리고 내가 어제 좋은 숙소에 묵었다고 해서 오늘 밤, 혹은 내일도 좋은 숙소에 묵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과거나 얼마나 화려하거나 혹은 하찮았든 그것은 지금이 아니고, 내가 어떤 미래를 기대하든 역시 지금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과거의 실수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보내왔던 나의 모습과 이 사랑스러운 커플과 함께 걷고 있는 오늘, 지금의 나의 모습이 중첩되었다. '과거나 미래를 살지 말고 현재를 살아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던가. 하지만 지금까지 머리로만 이해하던 말들이 순례길 위에서 처음으로 무슨 뜻인지 체험적으로 와닿았다.
이때의 존마리의 대답은 이후에도 오래 내 가슴속에 남았다. 둘은 노래를 부르며 걷기 시작했는데 천 년의 시간 동안 순례자들을 통해 내려온 순례자의 노래라고 했다.
Tous les matins nous prenons le chemin, 매일 아침 우리는 길을 떠납니다.
Tous les matins nous allons plus loin. 매일 아침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갑니다.
Jour après jour, St Jacques nous appelle, 날마다 산티아고가 우리를 부릅니다.
C’est la voix de Compostelle. 콤포스텔라의 목소리입니다.
Ultreïa! Ultreïa! E sus eia Deus adjuva nos! 조금 더! 조금 더! 신이 우리와 함께 걷습니다.
Chemin de terre et chemin de Foi, 땅의 길과 믿음의 길,
Voie millénaire de l’Europe, 고대 유럽의 길,
La voie lactée de Charlemagne, 샤를마뉴의 은하수,
C’est le chemin de tous les jacquets. 그게 방황하는 우리의 길입니다.
Ultreïa! Ultreïa! E sus eia Deus adjuva nos! 조금 더! 조금 더! 신이 우리와 함께 걷습니다.
Et tout là-bas au bout du continent, 그리고 대륙의 끝에서
Messire Jacques nous attend, 산티아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Depuis toujours son sourire fixe, 변함없는 미소를 지으며
Le soleil qui meurt au Finistère. 피니스테레에서 지는 해를 향해
Ultreïa! Ultreïa! E sus eia Deus adjuva nos! 조금 더! 조금 더! 신이 우리와 함께 걷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회귀점이 없다
D+4 포르투갈길 4일 차
루트 : Valada – Santarém (약 19km)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걸을 때 생각이 정리가 된다는데 나는 더 생각이 많아지고 걸을수록 머릿속이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걷는 게 싫어서 집에서 다섯 블록정도 떨어진 마트에 갈 때도 차를 꼭 가지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하루 평균 걸음수는 200보를 웃돈다. 그런데 지금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순례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은 걷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하루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위해 온몸의 통증을 인내하며 빠르게 걷는 사람, 완주를 목적하지 않고 관광 온 기분으로 순례길을 벗어났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며 걷는 사람, 그날의 풍경과 우연의 인연을 즐기며 걷는 사람. 나 같은 경우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도 앱의 GPS를 계속 확인하며 골목 하나라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걸었다. 순례길을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제대로 걷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불안했다. 다른 순례자들이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서가면 또 불안했다.
오늘은 일부러 순례길을 벗어나 걸어보기를 시도했다.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보기도 하고 걷는 걸 잠시 멈추고 재미있는 식물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내일 어디까지 걸을까’ 걱정하기보다는 현재 내 컨디션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지금까지 자전거를 타거나 운전하는 방법은 알았지만 걷는 방법은 잘 몰랐던 것 같다. 걸을 때 머릿속은 과거의 실수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시끄러웠다. 나의 에고는 '더 잘해야 해', '더 열심히 해야 해' 라며 걷고 있는 나를 질책하고 조롱했다.
낯선 타지에 온 지금에서야 걷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맞는 길을 걷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보다는 걷는 순간에 집중하는 감각을 배우고 있다. GPS가 아닌 현재 나의 상태를 확인하며 걸으려 하고 있다. 내가 어디를 지나왔고 도착하게 될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걷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D+5 포르투갈길 5일 차
루트 :Santarém-Golegã(약 3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