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바라봤다. 칼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등을 여러 번 찌른 후 몸을 뒤집어 가슴도 계속 찔렀다. 한 때는 나의 생명이었던 액체가 힘없이 흘러내렸다. 축 쳐진 몸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축 쳐진 나를 부여안고 있고 있는 손이 느껴졌다. 미안했다. 가슴이 아팠다. 같이 울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길을 걷다, 유튜브를 보다,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수없이 나를 죽이고, 애도하고, 용서하고, 증오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목을 매달고 매달리기도 했고, 목을 조르고 조여지기도 했고, 난간에서 밀어내고 밀어지기도 했으며, 가위로 난도질하고 하고, 화살을 쏘았다. 죽이고 죽여지는 것 모두 나였다.
- 2023.03.30 일기 중 -
보통 알베르게에 가장 늦게 도착하는 순례자가 나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제는 나보다 늦게 도착한 한 순례자가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는 정말 반가워했는데 11일째 걸으며 순례자를 만나기 힘들었다고 푸념하듯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순례자들이 없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해를 피해 새벽같이 걷기 시작해서 이른 오후에 마치기 때문에 그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그는 다음 날 함께 걷기를 제안했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길을 나선 적은 없었기에 그러기로 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포르투갈에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다. 포르투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만큼 그가 걷는 길은 내 것보다 풍부했다. 그는 포르투갈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지나치는 모든 골목에는 그 골목의 이름이 쓰여있다는 것, 우리가 오늘 도착할 코임브라라는 도시는 포르투갈 대학문화의 중심지라 많은 파티가 있다는 것, 식당에서 빵을 리필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지금까지 빵은 무료로 제공되는 줄 알았다.)을 배웠다.
오늘 걸으며 맞이한 산새는 정말 아름다웠다. 오늘따라 유난히 예쁜 구름과 햇살 덕분에 산에서 빛이 났다. 그런데 이 선물 같은 풍경이 나와 함께 걷는 이 순례자에게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걷기는 회사원의 점심시간 산책 같았다. 그는 걷는 내내 직장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휴대폰을 체크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다. 아마 그도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산 중턱에서 담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급도로 불안증세를 보인 그는 나의 길까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괜찮다고 말은 하면서도 이미 확인한 주머니와 배낭을 계속 체크했다. 가장 가까운 카페(포르투갈에선 카페나 바에서도 담배를 취급한다.)를 찾기 위해 또 휴대폰만 보았다.
산 하나를 지나고 나오니 로마시대 유적지와 함께 박물관이 있었다. 로마시대 유적지는 처음이라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이 친구의 영혼이 빠진 눈동자를 보고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박물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그는 음식을 기다리는 내내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한 명씩 스캔하기 시작했다. 흡연자 관상을 찾는 듯했다. 곧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디를 갔었나 했더니 웨이터를 통해 담배를 구해 니코틴을 충전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웨이터 덕분에 식사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얼마가지 않아 금방 카페를 발견했다. 그가 다시 평안을 찾아 기뻤지만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이때다 싶어 재빠르게 먼저 가겠다고 말하곤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역시 혼자 걷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며 걷던 중 갓길에서 오렌지 나무를 발견했다. 땅에 떨어져 있는 오렌지들을 보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거 따도 돼?" 길을 지나던 한 순례자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주인 없는 나무라서 괜찮아."
"주인 없는 거 맞아?"
"여기 땅에 떨어져서 짓무른 오렌지들을 많잖아. 뱃속에서 짓무르는 게 낫지. 너도 좀 챙겨. "
나는 열심히 오렌지를 주워 그의 손에도 몇 개 쥐어주었다. 열심히 배낭에 오렌지를 담고 있는데 길 건너 오렌지 농장에서 한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 둘 다 포르투갈어를 못해서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아저씨는 뭐라 말하더니 자신의 농장에서 오렌지를 따기 시작했다. 그리곤 품에 한가득 담은 오렌지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나와 아일랜드 순례자는 손에 받아 든 오렌지의 양과 무게에 놀라서 서로를 쳐다봤다. 하지만 아저씨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역시나 모자랄 것 같다고 생각이 되었는지 몇 개를 더 따서 우리 손에 쥐어주셨다. 서리한 오렌지와 아저씨가 주신 오렌지를 가방에 다 넣고 나니 닫히질 않았다. 배낭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그 자리에서 몇 개는 바로 뱃속에 담았다. 그리곤 아저씨에게 감사의 의미로 엄지를 들어 올리며 '따봉(Tá bom)'을 외쳤다.
오렌지를 나눈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이 순례자와 함께 걷게 되었다. 아일랜드에서 온 그는 에너지가 넘치고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걷는 내내 그의 이야기보따리는 멈출 줄을 몰랐고 덕분에 걷는 것이 심심치 않았다. 오후 다섯 시쯤이 되자 그는 마치 마법이 풀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신데렐라가 된 듯 극도로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한 마을에서 방을 못 구해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설마 방이 없겠어?’라는 마음이었기에 그냥 흘려 들었다. 그러나 수다스러운 그는 불안을 말하는 것도 멈추질 않았다.
"벌써 여섯 시야. 코임브라까지 얼마나 남았어? 넌 어느 숙소로 갈 거야? 나도 따라가도 돼? 방이 없으면 어쩌지? 다 닫은 거 같은데?"
나는 그에게 불안하면 나보다 빨리 걸으라 했지만 그는 계속 함께 걷기를 선택했다. 아마 노숙을 하게 되더라도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불안에 비해 정보검색력이 부족했기에 알베르게가 꽉 찼을 경우 갈 수 있는 호텔을 알아보는 건 내 몫이었다. 그의 불안에 금방 전염된 나는 그렇게 꼴 보기 싫던 이탈리아 순례자처럼 휴대폰만 보면서 걷고 있었다.
걸으면서 쌓인 짜증과 스트레스는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렸다. 도착한 산타클라라 수도원은 실제 성당에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알베르게였는데 역사를 가득 간직한 거대한 수도원 건물을 보고 있자니 처음 호그와트를 마주한 해리포터의 기분이 이랬으려나 싶었다. 요정들이 준비한 음식이 가득한 그레이트홀을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두꺼운 철문을 밀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도 둔탁한 소리만 날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건물에 있는 철문을 하나씩 열어보던 중 운이 좋게 퇴근을 하고 있던 관리자와 마주쳤다. 친절한 그는 체크인을 하기 전에 성당 내부를 구경시켜 주었다.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대한 미술 작품들과 조각품들이 금장에 뒤덮여 웅장했다. 그 아름다움에 우와를 수십 번을 외친 것 같다. 성당을 본 후 가슴이 너무 뛰어서 벽과 바닥의 돌조각 하나하나에 감탄을 하며 알베르게로 향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나선형 돌계단을 올라가다니, 그리고 오늘 밤 여기에서 묵는다니!
숙소는 기대만큼 적당히 허름하고 적당히 편안해 보이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어제 만난 순례자들의 다시 볼 수 있었는데 수도원에서 만나니 괜히 반지의 제왕의 반지원정대 일원을 만난 것처럼 유난히 더 반가웠다. 판타지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만끽하며 잘 준비를 하는 중 잔뜩 흥분한 순례자가 씩씩거리며 방에 들어왔다. 왜인가 들어보니 알베르게 문이 다 잠겨있어서 밖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고 했다. 내가 저녁을 먹고 십 분 전에 열린 문으로 무사히 들어왔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알베르게를 다녀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최악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눈을 떴을 때도 그는 흥분 상태에 있었다. 함께 방을 쓰는 순례자의 코골이 때문에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하며 코를 고는 사람은 알베르게가 아니라 호텔룸을 잡아야 하는 게 아니냐며 큰 소리로 화를 냈다. 그리곤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며 흥분하고, 침낭커버를 못 찾겠다며 또 흥분했다. 그는 알베르게를 나가는 순간까지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화를 내었다.
오늘은 여러 사람의 불안을 바라보았다. 마치 불안할 때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오늘 본 불안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불안이 시간을 집어삼켰지만 어떤 것을 해결하는 동력이 되지는 못 했다는 것이다. 불안 밖에서 그들 주위에 아름다운 시간과 풍경이 발견되지 못한 채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의 불안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지켜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불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며칠 전 아빠와 한 통화가 기억이 났다.
"사람 조심해. 특히 유난히 친절한 사람을 특히 조심해. 좋은 사람이 많지만 그중 나쁜 사람이 꼭 있어."
"잘 있는 사람을 왜 불안하게 해."
"불안하라고 하는 소리야!"
화가 났다. 아빠에게는 걱정이었지만 나에게는 불안하고 싶지 않아서 온 여정에 불안을 심는 말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빠는 항상 최악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주의를 주곤 했다. 걱정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너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어.'
'너의 상황은 더 최악이 될 수가 있어’
‘사고는 한순간이야’
'세상에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디든 아주 나쁜 사람들이 있어.‘
' 지금은 좋을지 몰라도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몰라.‘
나의 안전을 걱정하여 항상 경계하고 걱정하라는 말들이다. 사랑이었다. 사랑하니까 걱정하는 거다. 물론 그 말들이 분명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거나 할 때는 덕분에 조심하며 운전하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 그런 말에 너무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땐 그 말들을 어떻게 소화시키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많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나의 상황은 더 최악이 될 수가 있어. 모든 상황에 대비를 할 수 있는 완벽한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위험해.'
’항상 누구든 의심해야 해'
사실 아빠의 말에 화가 나는 것은 이제는 그 말들이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매일 하는 말이다. 내가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불안의 근거는 없다. 삶은 충분히 살만한데도 그냥 불안하다. 나는 내 불안을 평가한다. 그리고 평가된 불안은 어떠한 신념으로 마음속에 각인된다.
오늘은 무의식적으로 남의 불안을 평가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타인의 감정을 그럴만한 것과 아닌 것으로 나눴다. 평가는 2차 감정을 낳았고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아마 같은 일을 나 자신에게도 해왔을 것이다. 불안하지 않으려 노력하기 전에 불안을 평가하는 것부터 멈춰보기로 했다.
불안에 대하여
D+11 포르투갈길 11일 차
루트 :Rabaçal-Coimbra(약 29km)
몸은 분명히 며칠 동안 계속 신호를 보냈다. 피곤은 몸을 땅으로 짓눌렀고 발에 생긴 티눈과 물집이 매 발걸음을 고통스럽게 하며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어제 아침에도 분명 신호는 있었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지만 좀처럼 걸을 힘이 나질 않았다.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까지 가려면 22킬로미터를 걸어야 했기 때문에 하루 쉬어갈까도 고민했다. 한참을 도시를 배회하다가 결국은 걷는 걸 선택했다.
몸에 리듬을 억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국가에서 유일하게 허락한 마약을 크게 틀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20킬로미터 지점에 다다르자 발의 통증이 심해져 똑바로 걷기도 힘들었다. 주위에 있는 호텔에 들어갔지만 방이 없었다. 이미 해가 진지 오래였지만 알베르게까지 걷는 게 최선책이었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3킬로미터를 두 시간을 걸어 겨우 도착했다. 그런데 알베르게는 잠긴 채 모든 불이 꺼져있었다.
있는 힘을 최대한 끌어 써서 도착했기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기력도 없었다. 그대로 깜깜한 골목에 주저앉았다. 심카드를 살 때 무제한 데이터에 정신이 팔려 전화기능이 없는 걸 선택한 것이 후회됐다. 요즘 시대에 전화할 일이 얼마나 있으려나 했다. 알베르게는 마을이 아닌 마을을 잇는 도로의 갓길에 있는 곳이어서 주위에는 문이 닫은 가게들 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십 분을 앉아있었을까, 운이 좋게 작은 골목에 사람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행인을 붙잡고 호텔에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선한 주민이 콜택시를 예약하는 것까지 도와주고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깜깜한 골목이 덜 무서웠다.
호텔은 내가 지나쳐 온 마을에 있었다. 택시는 내가 몇 시간을 절뚝이는 걸음으로 이를 악물고 걸어온 길을 몇 분만에 되돌아갔다. 기분이 묘했다. 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을 보며 결심했다. 짐을 과감하게 줄이자.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다니던 것들과 작별인사할 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배낭에 있는 모든 물건을 침대 위에 펼쳐놓았다. 가지고 있지만 한 번도 쓰지 않은 것,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 꼭 필요한 것들로 나누었다. 오는 길에 사치품 카테고리에 해당하던 종이책과 헤어에센스는 이미 비워냈다. 이제는 ‘가벼운데 뭐 어때’라며 들고 다니던 작은 헤어핀의 무게조차도 용납할 수 없다.
얇은 바람막이를 매일 입고 있어서 긴팔티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상의는 걷는 용, 수면 용 반팔티 각 한 벌씩 남긴다. 고어텍스 바람막이를 가져왔는데 비싼 외투라 고민을 했다. 추울 땐 우의를 입으면 되겠다 싶어 덜어내기로 결정했다. 산이 많다고 들은 북쪽길에서 쓰려고 가져온 등산스틱도 당장 필요하지 않아 덜어냈다. 굳이 샴푸와 바디워시를 나눠 쓸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외에도 혹시 몰라서 가져온 립틴트, 자물쇠 등을 버렸다.
각각의 무게는 크진 않지만 덜어내고 나니 배낭이 훨씬 가벼워졌다. 덕분에 확실히 이전보다 걸음이 가벼워졌다.
'혹시'는 모두 버리기로 했다
D+13 포르투갈길 13일 차
루트 :Sernadelo-Águeda(약 28km)
포르투부터 걷는 순례자가 많기 때문에 이후에는 알베르게가 많아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20-30킬로미터에 하나씩 알베르게가 있어서 걷는 거리를 컨디션에 따라 선택할 수 없다. 걸을수록 발의 통증이 심해진다. 티눈이 생긴 곳이 땅에 닿을 때마다 송곳을 밟는 느낌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바닥 근육 한 가닥 한 가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걸음이 이상해지니 허벅지까지 아파왔다. 나는 왜 이 낯선 나라까지 와서 걷고 있는가. 뭘 위해 쉬지 않고 계속 걷고 있는가. 여기에서 걸으며 뭘 얻을 수 있다 기대한 건가.
몸이 힘드니까 계속 원론적인 질문이 들었다. 순례길의 역사에 대한 유튜브를 찾아 들으며 내가 사서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했지만 별 도움은 안 됐다.
왜 여기까지 와서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가
D+14 포르투갈길 14일 차
루트 : águeda-Albergariaa Velha(약 1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