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지.”
이십 대 때 대부분을 국내외를 유랑하며 여행자의 신분으로 지냈다. 여행도 가끔 가야 풍경을 즐길 기운이 있지 여행도 삶이 되면 멋진 풍경보다는 익숙한 편안함을 먼저 찾게 된다. 그런 전사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성향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화려함은 그다지 나를 감동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순례자들이 유럽에서도 손에 꼽게 아름다운 도시라 알려진 포르투에서 며칠씩 쉬고 갈 계획이라는 얘기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포르토의 중심지까지 가는 길은 역시나 여느 유럽 국가에서 흔하게 볼법한 대도시의 모습이었다. 가이아라는 이름의 도시였는데 도시의 끝에 다다르자 큰 다리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걸 보니 여기부터 유명한 관광지인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다리의 이름은 ‘동 루이스 1세’로 1886년 에펠탑을 만든 건축가 에펠이 만들었다고 했다. 다리 위에 올라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고는 깜짝 놀라 숨 쉬는 것을 잠시 까먹었다. 다리 너머로 보이는 포르토 전경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압도된 것이다. 그대로 얼어버려서 입을 벌리고 한참을 서있었다. 이후로 쉬는 숨은 모두 감탄사가 되어 나왔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뜬 후에도 내 눈앞에 있는 광경이 믿기질 않았다. 10 킬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있다는 것도 까먹고 30분이 넘게 다리 위에 서서 포르토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도심에 들어서서도 아름다운 건축물들에 압도되어 계속 걸음을 멈췄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포르토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해리포터의 배경이 된 도시이다. 조앤 K롤링은 해리포터를 집필할 당시 포르투에 살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렐루서점은 포르토에 실재하고 호그와트 교복은 포르투갈의 대학 교복 디자인에서 착안한 것이다. 아직도 마음 한편에 호그와트 입학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해리포터 덕후로서 나의 모든 신경세포가 포르토에 반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성지에 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순례자다. 도시의 아름다움에 마냥 취해 있을 순 없었다. 일단 큰 도시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공수해야 했다. 해리포터의 도시에서의 첫날, 여분의 양말을 구입하기 위해 다른 의미로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대형 쇼핑몰 건물로 향했다.
해리포터의 도시 포르토
D+17 포르투갈길 17일 차
루트 : Airas-Porto (약 29km)
다른 순례자들이 옳았다. 포르토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죄악이었다. 오늘 하루 관광객이 되기로 했다. 오랜만에 관광모드가 되니 예쁘게 하고 나가고 싶었다. 기분을 내기 위해 나름 머리도 빗고 틴트도 발라 꾸민다고 꾸몄는데 티도 안 났다. 게다가 여분 옷이 잠옷 밖에 없어 새벽에 집 앞 슈퍼를 나가는 느낌으로 포르토를 맞았다. 관광용 옷을 하나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일이면 바로 후회할 것 같아 마음을 바로 접었다.
사는 것은 모두 내 배낭의 무게가 되고 오늘 길에도 힘들게 덜어내며 왔기에 큰 도시에 와도 물욕이 안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과거는 없던 것처럼 옷가게에 비치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옷들이 눈이 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유리에 반사되는 나의 몰골에 눈이 감겼다.
‘아니. 잊지 마 휴먼. 자네는 순례자야. 구매하는 건 모두 짊어지고 갈 무게가 된다네. 지금까지 덜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자네의 배낭에 헛된 물욕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그래도 아이쇼핑은 무게가 안 되겠지?‘
분명 아이쇼핑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옷을 입어보기도 전에 손으로 옷의 무게를 재고 있었다. 얇은 나시티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본래는 성당을 가기 위해 나온 길이었다. 그리고 십 분이면 도착했을 성당에 두 시간 만에 도착했을 땐 입었던 옷들 중 가장 부피가 크지만 제일 반짝였던 형광 분홍색 드레스와 함께였다. 내일이 되면 절대 후회할 텐데 오늘의 나는 행복했다.
예쁜 옷을 입고 바라본 포르토는 몇 배나 더 아름다웠다. 아마 예쁜 옷을 입고 포르토를 바라보는 나를 상상하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중세 교회의 화려한 역사를 간직한 대성당들, 아줄레주(타일공예)가 크게 장식되어 있는 상 벤투역,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에 둘러싸인 도우루강,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움에 뒤처지지 않는 나의 형광 분홍 드레스. 이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면 고통을 감수할만하지 않을까?
저녁엔 다른 순례자들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모여 앉아 포르투의 밤을 즐겼다. 우리는 오랜만에 들어온 대도시에 대한 낯설면서도 익숙한 묘한 감정을 나눴다. 나 또한 낯설면서도 익숙한 물욕의 달콤함을 맛본 하루였다.
오늘의 기쁨이었고 내일의 죄책감이 될 형광 핑크색 원피스는 신데렐라의 드레스처럼 어두운 밤이 찾아오며 빛을 잃어갔다. 이제 순례자로 돌아갈 시간이다.
물욕이 사라질 줄 알았다
D+18 포르투갈길 18일 차
Proto 휴일
새로 산 물건들이 있어 조금 걱정을 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을 구매한 거라 어쩔 수 없다 여겼다. 여분으로 산 양말 두 켤레, 추운 날 밤을 위해 산 경량패딩, 그냥 예쁘니까 산 옷. 추가된 무게는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발바닥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열 걸음을 걷기도 전에 깨달았다. 덜어내야 한다. 배낭의 무게는 딱 오늘 필요한 것들의 무게만 허락하는 것 같다.
포르투에서는 순례길이 나뉜다. 크게는 내륙길과 바닷가길이다. 나는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히 바닷가길을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륙길을 선택하는 순례자들의 논리에 조금은 고민이 되었다.
”내륙을 지날 땐 360도 풍경을 즐길 수 있지만, 바닷가 길은 한쪽 풍경이 항상 똑같은 바다니까 금방 지겨울 걸 "
일단 짐을 싸서 나오기는 했는데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해 일단 카페로 갔다. 언제 또 올지도 모르는 포르토 구경을 며칠 더 하고 싶기도 하고, 포르투갈길의 원조격인 내륙길도 걸어보고 싶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을 가진 바닷가길도 걸어보고 싶다. 모두를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괜한 커피만 몇 잔을 비워냈다. 고민만 하다가는 카페에서 저녁까지 먹을 거 같아 일단 발길 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도우루강을 더 보고 싶었던 터라 강을 따라 걸었다. 시원하고 넓게 뻗은 도우루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앞에 대해양시대가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보며 키웠던 해적의 꿈을 회상하며 걷다 보니 넓은 대서양이 펼쳐졌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구경을 하며 걷다 보니 바닷가 길중에도 ‘더 바닷가 길’(More Costal Way)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계속 이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아직 4월이지만 해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록달록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 누워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젤라토나 크레페를 손에 들고 걸어 다녔다. 누군가는 SNS에 올릴 사진을 몇 십장씩 찍고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배낭을 메고 지나치는 오늘은 뭔가 메스꺼운 느낌이 들었다. 어제도 도시에 가득한 관광객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기도 하다. 무슨 감정인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정확히 뭔진 몰라도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배낭 속 형광 분홍색 원피스의 무게가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올라왔다. 이 풍경을 몇 시간을 보며 걸으니 바닷가 길은 오늘로 충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걸어보고 싶어
D+19 포르투갈길 19일 차
루트 :Porto-Vila do Conde(약 2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