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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Sep 06. 2024

오늘도 퇴사를 못 했다.




원래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2년 3년 4년을 지나 5년 차 머무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 중소기업.

작은 회사, 적은 사원수, 많은 업무,  귀여운 월급. 

오늘은 그만둔다고 해야지 하면 그날은 보고서 마감날이고, 내일은 그만둔다고 말해야지 하면 인사 담당자가 안 계시는 상황이 생긴다.

때는 4년 전, 지금 다니는 회사 근처 DPF 업체에 잠깐 근무했었다.  

지역 서류를 분류하고 전산에 입력하고 DPF 부착 차량, 검사 일정을 확인하고 서류를 보내는 업무.

근무했던 부서는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으로 어느 순간 패가 갈렸다. 

개인적인 천성으로 무슨 영문인지 모를 사늘한 기운에 휩싸여 서로를 흘기는 세태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 분위기에 지쳐 3개월에 만에 전 회사에 정이 떨어졌다. 그만두기로 하고 마지막 출근을 하던  금요일 점심쯤 연락이 왔다.




" 000씨 맞으시죠? 회사 면접제의합니다.! "

" 아 네네..."




회사의 마지막 출근을 마치며 전 회사의 로비에서 지금 회사의 면접 제의를 받고 당일 바로 면접을  봤던 나

'초스피드' '빠릿빠릿' 'It's OK! ' 

그렇게 현재 회사의 직원이 됐다.

처음엔 기대 없이 이력서를 여러 군데 돌렸던 터라 제일 먼저 면접제의를 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고, 근무하던 곳과 같은 동네라 출퇴근에 부담이 없어 좋았다. 무엇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던 날 따뜻한 기운과 맞물렸던 면접제의 전화는 이 회사는 내가 가야 할 곳이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평소와 같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부터 다른 곳 ( 현재의 회사)에 출근을 했다. 

나와 사시는 분을 빼고는 아무도 나의 이직 사실을 몰랐다. ㅎㅎ 









입사 1년은 처음 해보는 분야의 업무라 배우고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고 2년 차에는 이제 손에 익을만하니 쏟아지는 업무에 정신을 못 차렸다. 

3년 차쯤 되니 '아!' 하고 느껴지는  무언가에 나도 모르게 쌓이는 게 있었다.

그렇게 꽉 채운 4년 차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 욱 ' 하고 올라오는 순간들이 생기게 되더라.

꼭 없으면 못 살 것 같던 연애시절부터 10년 차 결혼생활과 닮은 그 모양새처럼.



본인들 물건 몇 시간 빨리 받자고 계약업체 택배를 두고 타 택배사를 이용해서 물건을 보내달라고 하는지 거래처에 화가 나다가 ( 차를 끌고 나가서 더 비싼 가격에 물건을 보내주어야 함 = 다른 업무를 할 시간을 빼앗김 + 한 번 해주면 계속해달라고 함) 


엄청 큰 물건을 실어 보내야 하는데  우리 계약업체 택배사는 예외 사이즈 물건의 배송을 안 한다. 때문에 내 개인차로 물건을 부치고 오는 일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1년이 넘어가니 당연히 내가 하는 일이 돼버렸다. (처음엔 내가 회사 막내라서, 그다음은 그 물류는 내 차가 아니면 다른 차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분 좋은 날은 그럭저럭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한다고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내 개인적인 차에 다른 물건도 못 싣고, 내 차 상해가며 나만 해야 되지 싶은 마음에 울컥하더라.

택배 계약 업체를 바꿔볼까 했으나 지리적 상황+ 계약단가 이슈로 인해 현재 업체 아니면 다른 택배사들은 들어오지조차 않으니 답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 회사는 청소업체를 쓰지 않기 때문에 목요일 오전에 조금 일찍 출근을 해서 청소를 한다. 주로 내가 하는  일은 손 걸레질로 대표님 실 탁자를 닦고,  휴게실 유리문,  창문, 콘센트 박스 위 먼지가 쌓이지 않게 미리 닦아주는 정도다. 한창 걸레질을 하는데 실장님이 부르신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니




" 여기 거미줄 있다. 00씨 " 

" ??"

" 여기도 닦으라고! "




'아니, 같은 걸레질하고 있는데 본 사람이 먼저 닦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일단 시키는 일에 반사적으로 닦긴 했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 그저 내가 아랫사람이라? 거미가 싫어서? 아니면 시키는 사람이 꼰X 이거나 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참) 

일단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할 아침이니  어이없음을 꾹꾹 눌러 잊어버리고 바쁜 일과를 마쳤다.



퇴근할 때마다 자유로를 달리며 머리를 꽉 채우는 생각들... 앞으로 작은 놈 태권도도 보내야 하고,  큰 놈 학원 하나 더 보내야 하는데 지금의 벌이로는 버겁지, 이제 그만 옮길 때가 되었지 올해? 아니면 내년?

일단 올해 조달청 업무 끝나면 말하자,  아니다 이번 정부 지원 사업 보고서 끝나면 말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2년....









오늘은 그만둔다고 말할까 싶으면 다른 일이 터지고, 오늘은 말해야지 하면  마음이 누그러지는 일이 생긴다.

일단 우리 회사는 차가 없으면 출퇴근이 안되는 지리적 위치에 있다. 차자 없이 출퇴근이 어렵다는  이야기인즉슨 엄마가 다니면서 살림을 돌볼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때문에 같은 회사에 다니는 부장님과 과장님은  들여다보지 않아도 나의 집 꼬락서니가 어떤 상태인지 간파를 하시는지 밑 반찬이며, 애들 간식이며 챙겨주신다. 




"네가 지금 반찬 해먹을 시간이 어딨어."


"네가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어딨어, 애들만 챙겨도 벅찰 때야."


" 이거 가져가. 가서 애들 밥반찬으로 줘. "


" 나 이번에 감자 캤어 한 박스 가져가 차에 실놨다! "





                                                          <부장님이 주신 감자 한 박스>





개인적인 일로 쉬고 나오던 어떤 날 아침부터 밀린 일 처리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로 출근을 마쳤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는 일도 있다.




"어제 딸 방에 갔더니 맛있어 보이는 캐러멜이 있는 거야 얼른 집어왔지! "



" 00아 자리에 먹으라고 챙겨놨다! "


 




" 00아 퇴근하고 떡 가져가! "










참 희한하다.

마음이 상해서 오늘은 관둬야지 하다가도, 

나에게도 감자 한 박스 나눠주고 싶었을 그 마음에

내가 없을 자리에 캐러멜을 올려두었을 그 손길에

무심한 척 담겨오는듯하지만 소담한 반찬들에

오늘은 아니구나 한다.


그렇게 또 2024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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