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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Jul 18. 2024

내 말 좀 들으라니까?!!




우리 집엔 운동에 미친 40살 먹은 영악한 아들내미가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족구공 하나면 몸이 부서져라 내달리는 까무잡잡한 군인 아저씨..

동네 바보형 미가 물씬 풍기는 헐렁한 매력이 폴폴 풍기는 그 사람.

평소엔 사나운 마나님의 흘기는 눈빛 하나에도  숨을 몰아쉬는 그 소심이가, 운동을 가도록 해달라는 허락을 받을 때마다 나의 거절 사유를 사전에 차단하는 영악함을 발휘하는데 내키지는 않지만 허락할 수 밖에 없다.

대체 무슨 매력에 빠져든 건지 액션캠을 사질 않나, 자기 몸 찢기고 부러지는 것도마다 않는다.

털복숭이 까무잡잡한 다리털 위에 떼는 순간 '악' 소리 낼 것을 감내하고도 테이핑을 칭칭 동여 매는 것을 보면 참.... 

맘에 안 든다. 

나한 테나 좀 그렇게 열정적 이어 보라니까?!







7월 17일 내가 사는 파주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출근을 하면서 보니  뽑혀서 누워있는 나무며, 멀쩡했던 아스팔트가 찢겨 있기도 했고, 평평했던 길이 계단식으로 내려앉아 있기도 했다. 길에 물이 넘쳐 자유로서 동네로 들어가는 IC를 통제하는 바람에 차가 거꾸로 백(back)에서 궁둥이부터 도로로 다시 기어 나오는 경험을 해봤다.

' 하... 우리 집 군인 아저씨 바쁘겠네..'

출근을 하면서도 직업군인을 신랑이 바쁠까, 어렵거나 위험한 일을 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하는 나를  '늙은 아들아! 너는 알고 있니??' 

일을 하는 내내  당장 내 일터 앞이 물에 잠겨 못 나가는 상황보다 나의 늙은 아들내미 같은 신랑이 어떤 쩔쩔매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지, 거절도 못 하고 위험한 일을 떠맡게 되어  내리는 비에 속상한 마음을 쓸어 내리고 있지는 않을지 생각하는 나를 당신은 알고나 있을까 모르겠다.

나의 내려앉는 우려를 딛고 참 밝은 우리 집 40살 먹은 아들내미는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도  씩씩하게 전화를 했더랬다.


" 여보! 나 오늘 퇴근 좀 일찍 해서 1번 딸내미 치과 검진하고, 2번 막내 데리고 운동 가도 돼?"


" 아니, 비가 이렇게 오는데  운동을 간다고?? "


" 운동하는 곳은 실내라 상관없어! 내가 2번 데리고 가니까 자기 퇴근하고 편하게 할 일 하라고!  히히. "


.......


내가 말한 비가 이렇게 오는데 운동을 가야 하냐고 물은 건 그 뜻이 아니었는데...

군인 아저씨야! 지금 물난리 나서  여기저기 난리인데,  안 바쁘냐는 거였는데....

퇴근을 어떻게 빠르게 할 수 있느냐는 거였는데...


" 아니. 자기 안 바쁘냐고! "

" 아아.  매일 바쁘지, 그래도 빨리빨리 하면 돼. "


빨리빨리 자기 할 일 하면 된다는 사람한테 더 이상 내가 붙일 말은 없지 싶어서 떨떠름하게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 그런 날이 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 운동을 가면 밤 10시가 넘어야 들어오는 사람이  일찍 들어왔다.


" 왜 이렇게 일찍 왔어?? "


" ......"


" 뭐야.. 왜 말을 안 해 ?"


"....." 


두 손으로 목을 감싸고 있는 사람을 다그치니 그때 서야 나오지 않는 목소리 대신 쇳소리로 대답을 하는  늙은 아들내미는 내 속을 또 한 번 긁어놨다.

운동을 하다가 다른 사람의 머리와 자기의 목울대를 부딪혔는데 울대가 한번 들어갔다 나오더니 그다음부터 목소리가 나오질 않고 붗는 느낌이 들어 아이를 대리고 급히 집에 돌아왔단다.


" 그럼 병원을 가야지 왜 집으로 왔어?"


쇳소리 그득한 목소리로 " 병원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라고 말하는 큰아들을 보자니 말문이 막힌다.


"...."


"내가 가지 말랬잖아 오늘! "


나도 모르게 버럭 내지른 소리에 눈만 동그랗게 뜬  늙은 아들과 나의 진짜 어린 아들이 나를 쳐다봤다.


" 자기는 내 말 안 들어서 탈이 난다니까! "


멋쩍게 두 손을 목으로 감싸고 있는 사람에게 지르고 나면  남는 거라곤 턱하니 걸리는 찝찝한 마음뿐이다.

내지르는 동안 시원한 느낌이라곤 하나도 없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에 답답한 공기가 씻겨 내려갔으면 좋았으련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물난리만 만들어낸 간밤에 비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 여러 사람의 마음만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7월 18일 어제만큼 퍼붓는 빗길을 뚫고 출근을 했다.

오전 내내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오늘 오전에 병원에 들렀다 부대로 출근을 거라는 아들의 전화만 기다렸는데 점심 즈음 되니 연락이 닿았다.


" 나 후두에 피가 고였데, 연골이 골절됐을 수도 있다고 하네, 붓기를 가라앉혀야 뭘 찍을 수가 있어서 

입원을 해야 된대.."


"........"


" 아, 근데.. 오늘 재활용하는 날인데.... 히히"




하.... 진짜. 마음이 꽉 막힌다.

한대 쥐어박고 싶다! 

" 넌 내말 안 들어서 망할 거라고 !! " 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진짜로 망하면 나도 좋을 게 없다....

하... 답답하다.


" 내 말 좀 들으라니까!! "


고작 이게 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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