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꿈 만 꿀 꺼야? 움직여 좀!
생각이 많으면 용기가 줄어든다고 하던데, 심히 동의하는 바 생각하고 재느라 제대로 실행에 옮겨보지도 못하고 갇혀버린 꿈이 있다. 익히 오래된 꿈인데 뭐가 부끄러운지 말하지조차 못한 내 꿈.
나라는 사람은 천성이 게으른 건지 생각의 깊이가 깊은 건지 놓지도 못할 거면서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길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러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하느라 이게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확신이 없어 오랜 시간 방황했던 나
나의 꿈 = 드라마 작가
이런저런 일들로 엮어서 당시 친하게 지냈던 스쳐간 인연들, 보다 더 가깝다는 지인들까지도
" 야, 그거 할거 못된다더라, 보조작가해서 밥 못 먹고살아. 그냥 직장 다니면서 인터넷 소설 써 취미로."
" 김은숙 되기가 쉽냐? "
내 딴엔 누구한테 말해 보지도 못하고 꽁꽁 숨겨놨다가 어렵게 꺼낸 얘기였는데 허무맹랑한 질문을 들은 양 돌아온 대답들은, 나라는 소심한 싹을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래. 맞아 알았잖아...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거. 이런 반응 있을 거 알았잖아 그래서 말 안 했던거 였는데, 역시나 이건 아닌가 보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지금 이거 하려는 사람이 한 둘이겠냐...'
중학교 때부터 막연히 떠오르던 꿈을 누르고 눌러 나는 성인이 돼버렸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글을 쓰긴 했는데 어쩌면 그냥 글을 쓰는 일과 드라마 작가가 하는 일이 글을 쓰는 거라 일맥상통하니 그게 그거라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종종 작게 주최되는 공모전 같은 곳이나 회사 사내 대회에서 입상을 하거나 상품을 타거나 하는 일이 있었지만, 날아가게 기쁘다든지 벅차오르는 기분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 나 글 쓰는 것도 별로 안 좋아 했네, 글 쓰는 거 힘든데 그만하고 회사나 열심히 다녀야겠다.' 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게 문제였다. 몇 년이 더 지날 동안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고, 나름 괜찮은 연봉도 받았는데 내 개인적인 만족이 채워지지는 않더라...
'이게 맞나...? 나란 사람... 회사 생활하면서 남들처럼 살아가는 거 괜찮은가?...에이.. 다들 이러고 살던데...
아직도 나란 사람은 그게 하고 싶나? 글 쓰는 거 힘들지... 별로 좋은 지도 모르겠고, 저번처럼 잠깐 또 이러는 거겠지, 그냥 회사나 다니자.'
그렇게 현실에 만족하려고 핑계만 대면서 게으름뱅이가 됐다.
도전 한 번을 못해 본 그저 꿈 만 꾸는 게으름뱅이.
2016년 정말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한국 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 홀리듯 지원을 했었다.
" 직장인이고 워킹맘인데 글 쓸 시간도 그렇고, 여기 다닐 수 있겠어요? "
" 제가 지금까지 이것저것 하면서 바쁘게 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도 나가고, 놀러도 다니더라고요, 하고 싶은 거 한다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다니겠습니다!"
그렇게 방송 협회 작가 교육원 54기 교육생이 되었다.
6시 퇴근 후 저녁도 굶어가며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도 마감 날짜에 맞추어 대본을 써내겠다고 소재며, 사실관계 확인이며, 자료를 찾아보고, 이미 방송이 된 비슷한 이야기는 아닌지 교육원 수업을 마치고도 여럿 모여 앉아 의견을 나누고 수정하고, 집에 돌아오는 막차를 놓쳐 택시를 타고 들어오는 길에도 한 장면 한 장면을 쓰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작가협회 교육원 생활 꽉 찬 2년을 보내는 동안 한 번의 결석 없이 4편의 대본을 완성했다. 그 말인즉 합평을 4번 받았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 합평 시간이라는 게 글을 쓴 당사자의 작품 하나를 세밀히 분석해서 추가되었으면 하는 부분과, 사실관계 확인이 된 이야기인지, 작품적으로 가치가 있어 영상으로 제작이 될만 한지에 관한 수십 가지의 의견을 듣는 자리다. 멘탈이 약하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자리인데, 나 같은 유리멘탈이 어떻게 그 자리를 잘 지켜냈는지 심지어 메모장 꼼꼼히 적어놓은 지적 사항은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중이다. 좋은 의견을 추리고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므로.
그만큼 뜨거웠다. 간절하고, 성장하고 싶었다.
역시 쉬운 일도 쉬운 길도 없다. 작가 교육원의 전문반 과정까지 수료했지만 이론을 배우는 것과 직접 대본을 쓰며 녹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제일 어려운 일은 매일 글을 쓰는 것인데 교육원을 다닐 때에는 마감일자가 나를 채찍질하고 합평 자리의 긴장감이 나를 부지런히 이끌어 주었지만 전문반 수료 후 다시 직장인의 삶이 된 나는 다시 느림보 게으름뱅이가 되었다.
얼마간 정신을 차리고자 공모전을 찾아 벼락치기로 접수했다가 탈락이라는 당연한 결과를 맞닥뜨리고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간절한 꿈은 직장인이라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꺾였다.
체력 탓을 하고, 육아 탓을 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쌓인다. 정확히 핑계다, 교육원을 다니면서 글을 쓰던 시간들도 지금과 결코 다르지 않은 오늘이었으니까. 직장을 안 다니고, 운동을 한다고 해서 나란 사람이 글을 쓰진 않았을 거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행이다.
포기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것, 나는 또다시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아플 거다.
늦어도 가겠지.
두 번 세 번 꺾여도 부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요즘 내가 힘을 받고 있는 말이다. 파이팅 넘치는 응원을 받고 싶은데 나의 꿈을 말할 곳이 없으니 응원을 받을 곳도 없다.
신체 사이즈는 아동복 모델도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일단 얼굴이 안되니 아동복 모델 말고는 다른 것은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비록 늦을지라도...
힘을 받고자 관련 글귀를 읽어대니 알고리즘이 알아서 힘나는 글귀만 보여준다. 아무도 모르게 응원을 받고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나 아닌 누군가도 말 못 할 꿈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응원해 주고 싶다.
당신이 지금 못할 것은 아동복 모델 말고는 없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