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큰 숲 Sep 12. 2024

변덕이 죽 끓듯!

미웠다가 예뻤다가



매일 똑같은 하루가 없듯이 매일 똑같은 감정으로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만은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변덕이 있는 사람이다.

손바닥 뒤집듯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체통 머리 없이 바뀌는 기분에 혼자 이건 좀 부끄럽지 싶어 체면치레하듯 조절해야 한다는 강박이 어느 정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일산 킨텍스에 오토 살롱 위크를 다녀왔다.

우리나라에 1호로 들어왔다는 사이버 트럭에 작은 녀석이 무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인데, 출발 전날 밤 열이 38.5도를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오늘 밤 푹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안 아플 것이기 때문에 해열제를 먹고 얼른 자야 한다며 컨디션 조절을 했더랬다. 

6살짜리 어린 마음에 못 가면 실망이 크겠지 싶은 마음 반, 저렇게 열이 나서 갈 수나 있겠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반이었으나 해열제를 먹고 잠든 녀석은 정말 자신이 뱉은 말대로 열이 떨어져 괜찮은 컨디션을 찾았다.


" 봐봐 내 말이 맞지? 나 괜찮으니까 연수 형아한테 전화해 사이버 트럭 보러 가자고! "


사람은 참 대단하다, 꼭 해야겠다 싶은 일이 있을 땐 아픈 것도 조절하는구나... 6살짜리가 ㅎㅎ

근처에 사는 남동생의 가족과 함께 하는 일정은 항상 복닥복닥 시끌시끌한 자리라 아이들 4명이 뛰어다니고 떠들어대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항상 같이 하는 이유는 행복한 얼굴로 조잘조잘 거리고 웃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같이 보는 같은 행복감 때문이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남자아이 2명에 차에 환장하는 어른 2명 2살 애 보는 어른 2명 그냥 사춘기 온 10세 여자아이 1명이 오토 살롱을 돌아보고 즐기는 시간은 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차량 튜닝이며, 캠핑카며, 경주용 자동차에 만지고 구경하고 타보고 사진 찍고, 중간에 간식 먹는 시간까지 다해도 그 이상을 못 놀겠어서 전시회장을 나왔는데 아직 환한 하늘을 보고는 아이들은 헤어지기 아쉬워했다.


" 그럼 그냥 헤어지기 아쉬우니까 근처 트레이더스에 가서 장 봐서 할머니네 가서 저녁 먹을까? "


" 좋아요!  치킨이랑 피자랑, 맛있는 거 ! "


그렇게 우리 두 가족은 마트에 들러 참치 회에, 치킨이며, 피자며 한 보따리 장을 봐 엄마 네로 향했다. 물론 참치 회에 술이 빠질 수 없다며  남자 둘 (신랑과, 남동생)은 복분자에 토닉워터까지 챙겨들고 들이닥쳤다.

밭에 다녀온 엄마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이었지만 아이들 4명을 보고는 바로 상 차리기에 돌입하셨고, 신이 난 두 남자는 술상 세팅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연락을 미리 받은 아빠는 상석에 자리를 잡으셨다. 

누구 하나 말하진 않았지만 알고 있다.

남자들은 술판을 벌이려 모였고, 애 엄마 둘은 집에 가서 밥하기 싫어서 친정으로 시댁으로 들이닥친 거라는 것을....


" 아니 근데 오늘 일요일인데 이렇게 먹으면 내일 출근 어떡하려고 그래? "


그렇다, 

애들 아빠는 술을 먹고 거나하게 취해 있을 거고 여자들은 취한 애들 아빠들을 태우고, 애 둘을 태우고 짐도 챙겨서 떠날 거다....... <- 이 대목이 맘에 안 든다.

나도 술도 먹을 줄 알고 놀 줄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나는 심지어 친정인데 술은 애들 아빠가 먹고 기분 좋게 노는 것도 애들 아빠가 논다.

나는 맨정신에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애 둘을 태워서 집에 온다  집에 와서 술 취한 남편은 잠을 자고 나는 내일 출근 준비며 애들을 씻기고 재운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새벽이다. ->  술 취할 애들 아빠가 밉다.


"나도 참치 좋아하는데! 복분자랑 먹음 더 맛있겠다! "


 " 자기도 먹어! 대리하면 되지! "


"내일 출근 준비는 누가 하니, 애들 얼집가방 챙기고 씻기고 해야지 "


 " ....."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신랑이 또 밉다. <- 자기는 신나게 놀 예정이므로...


술 취한 애들 아빠를 차에 태우고 집에 돌아가는 길 

집에 갈 때까지 잠들지 말라는 나의 신신당부에도 아이들은 대답도 안 하고 이미 눈이 풀렸다. 

큰 아이야 깨우면 어떻게든 집까지 올라가겠지만 작은 녀석은 잠들면 깨운다 해도 못 일어나므로 안고 집에 올라가야 하는데, 엄마가 챙겨준 반찬까지 가지고 올라가는 건 무리다. 

빼도 박도 못하고 2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렇다고 술 취한 사람 깨워서 애를 안으라고 할 수도 없고,,, 참...괜히 미워서 똑바로 앉으라고 짜증을 던지면 또 순순히 자세를 바꿔서 앉아주는 모습이 우스워 별말도 안나온다.


       <자세 고쳐 앉으라는 타박에 군 말없이 자세 바꿔앉음, 순간 보이는 내 사진에 마음이 풀어짐.>




술에 취해서 마누라가 운전하는 차에 실려오는 주말이 익숙해진 탓인지  이 남자...

월요일부터는 열이 난단다.

아침에 출근해서 검사해 보고 코로나라면 좆 겨 날 거라며 힘없이 출근하시더니  코로나가 아니었던 겐지

열이 나서 정신이 없고 두통까지 오는 머리를이고 급양 당번을 마쳤단다. 

퇴근을 하고도 혹시나 후에 증상이 발현할까 싶어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덕에 어린이집 하원도 독차지, 퇴근 밥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식구들이 공용으로 사용하고 몸에 닿을 있는 물건을 만지는 일도 오롯이 차지가 되었다.

덕분에 요즘의 나는 일도하고, 살림하고, 육아도 하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병간호까진 아니더라도 환자 봉양까지 하며 지내게 되었다. 

슬슬 내 몸도 부하가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열이 나고 목이 부어 음식물도 넘기지 못하고 기운이 빠져가는 사람을 눈으로 보니 걱정이 됐다.


" 누룽지 끓여줄까?"

"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오늘은 좀 어때 어제보다 나아? "


3일을 물어본 질문에  3일 똑같은 컨디션 별로라는 대답 대신 

'이제 좀 나아졌어' 란 대답에 뭔가 툭 하고 터지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 반,  미운 마음 반.






3일 동안 혼자 종종거리는 걸 보고 미안해서 그랬던 걸까?

사진을 보내온다.


                                               < 작은 아이 어린이집 마켓 행사 사진 >




깜빡하고 잊고 있었던 작은아이 어린이집 행사 사진...... 

나는 못 간다고 하고 말았는데,  반차 내고 어린이집 행사에 참여했나 보다.

다른 집 애들 다 부모 한 명씩은 왔을 텐데, 우리 집 애만 덩그러니 신나는 분위기에서 소외될까 마음이 쓰였던 걸까? 그런 생각 했을 거 보면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

하루, 이틀, 삼일은 미운 마음이 가득했다가.  사진 한 장에 마음이 풀린다.

내가 신경 못쓰는 부분을 알아서 품어주는구나 싶어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났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래도 이번 추석 연휴에는 또 취해서 미운 사람이 될 게 확실하니 예뻐하는 마음은 두고두고 킵 했다가 열받을 때마다 하나하나 꺼내서 내 마음을 다스려 봐야겠다.



                           < 자기 숙제하기 싫은 아들과, 아들 숙제에 더 신난 술 취한 아빠 >



이건 보너스 사진!

잊지 말자! 애들 아빠는 열정적인 좋은 사람이다! 








                    

이전 01화 노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