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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Jan 18. 2023

속물 엄마

-그림책 <스갱 아저씨의 염소> 를 읽고-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러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민음사- 


요즘 우리 집 남자 2호, 초등 5학년 아들 녀석이 그림에 빠져있다. 공부 시간을 제외하곤 틈만 나면 패드에다가 그림을 그린다.  처음엔 그림이 유치하고 발로 그려도 그것 보다는 잘 그리겠다고 속으로 비웃었다. 시간의 법칙은 어디서나 통하는 것일까? 이제는 부쩍 잘 그린다. 고슴도치 엄마는 인스타그램에 툭하면 그 그림을 찍어서 올린다. 너무나 자랑이 하고 싶은 푼수 엄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공부하다 스트레스 풀라고 놔두는 것이지 그걸로 밥 벌어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니다.  


남편과 나는 『달과 6펜스』 속에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될 수 없는 지극히 6펜스적인 현실주의자들이다. 이상적인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고 부부 사이의 대화 80% 이상이 그런 주제이다. 오늘 주가가 올랐는지 내렸는지, 부업으로 무엇을 할 지 등등. 유튜브도 경제방송 위주로 틀어놓는다. 우리 아이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대기업 회사원이나 공무원 같은 안정된 직업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예술가의 길은 고달프며 배고픈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고리타분한 생각이고 선입견인 걸 알고 있지만 운도 따라줘야 하는 그런 길을 아이가 간다고 상상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며칠 전에 자기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이니 대학은 가지 않겠다는 말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뱉었다.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리 부부는 곧바로 동시에 아이를 나무랐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대학 안 간 일러스트레이터를 누가 고용하냐, 네가 자주 보는 그림 잘 그려서 대박 난 유튜버들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잔소리가 길어질수록 아이의 표정은 시무룩해져 갔다. 힘이 빠졌을 것이다. 엄마, 아빠 누구도 자신의 꿈을 지지해주지 않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밤에 침대에 누워 아이의 표정을 계속 떠올렸다. 육아서에는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서 꿈을 지지해주라고 적혀있는데 또 배운 걸 실천하지 못한 엄마가 되었다. 다음날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계속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쿠키를 사놓고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이는 벌써 어제의 일을 잊은 듯 맛있는 쿠키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행복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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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의 눈치를 살피다 살며시 “00야, 어제 엄마, 아빠가 너한테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구박해서 속상했지?”라고 묻는다.  


아이는 진심인지 괜찮은 척을 하는 건지 곧바로 “아니, 전혀~! 하나도 속 안 상해. 그게 왜?” 동그랗게 눈을 뜨고 되레 묻는다. 그 반응에 당황하지만, 육아서에 적힌 대로 사과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아니야, 엄마가 온종일 생각했는데 잘못한 것 같아. 반성했어. 엄마가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일러스트레이터 멋진 직업이야. 좋아하는 그림 실컷 그려. 대신 대학은 가야 해. 그래야 선택의 폭이 넓어지지.” 대화의 끝에 대학은 가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래도 어제의 구박보다는 백 번 낫다고 안심했다.  


아이도 수긍한다. 자기도 대학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어제는 말이 잘못 튀어나왔다고……. 


그림책 『스갱아저씨의 염소』 속 스갱 아저씨가 내 모습같다. 아저씨는 염소 블랑께뜨에게 푹신푹신한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맛있는 풀도 실컷 뜯어 먹게 하며 흡족해한다. 하지만 블랑께뜨는 곧 다른 염소들과 마찬가지로 아저씨의 집이 지루해진다. 울타리 너머로 탈출해 다른 세상을 보고 싶다.  


나도 아이에게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이고 여행도 자주 가며 다양한 경험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잠시나마 학교-학원-집으로 지겹게 반복되는 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만 아이는 울타리 안 생활이 싫다. 염소가 무서운 늑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탈출하고 싶듯이 학교도 가지 않고 학원 숙제도 하지 않고 그림만 실컷 그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일년 내내 방학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자유롭게 살아.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면서.” 그 한마디를 해주고 싶지만 나는 달이 될 수 없는 6펜스다. 그럴 수 없다. 서머싯 몸이 그려 낸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현실주의자인 내가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었는데 그 모든 걸 다 버리고 그림을 그리러 떠난다. 이상주의자인 주인공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 『스갱아저씨의 염소』의 블랑께뜨 모두 자유를 선택하고 그들의 꿈을 실현하긴 하지만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은 나보다는 낫다. 공부해서 성공하는 게 다가 아니라며 아이에게 5월 5일 어린이날 선물로 웹툰 작가들이 사용한다는 ‘타블렛’을 6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줬다. 6개월 전부터 사달라고 매일매일 조르니, 사주는 대신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는 조건으로 눈 딱 감고 남편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이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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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헐… 설마설마했는데 도착 후 딱 2번 사용하고 땡이다.  


지금은 타블렛 위로 먼지가 하얗게 쌓여가고 있다. 자기가 사용하기에는 기능이 어렵다고 투덜대는 아이를 보며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저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그러게 왜 전문가용으로 사달랬어?’라고 잔소리 폭탄을 투여하고 싶다. 하지만 육아서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읽었으니 아무 말 하지 않고 혀를 깨문다.  


다혈질 남편은 당장 당근 마켓에 팔아버리라고 볼 때마다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아이 역시 빨리 팔아야 비싸게 받을 수 있다고 사진을 찍어 당근에 올리라고 한다. 그리고는 원래 이용했던 구닥다리 패드에다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그림그리기는 스트레스 푸는 취미생활인데 왜 전문가용을 사준 건지 후회도 되고 또 한편으로는 안심도 된다. 아이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 생활하면서 취미로만 그렸으면 한다. 어쩔 수 없다. 속물 엄마는 이상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달이 될 수 없는 6펜스이다. 



-관련 그림책-


프랑스 문학의 대표 작가 알퐁스 도데의 글과
아름답고 강렬한 색채를 가진 에릭 바튀의 그림


《스갱 아저씨의 염소》는 알퐁스 도데의 《풍차방앗간에서 온 편지》에 담긴 우화가 원작이에요. 《별》과 《마지막 수업》 등으로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아름다운 글에 에릭 바튀만의 강렬한 색채가 더해져 완성된 그림 동화이지요.



스갱 아저씨의 염소 블랑께뜨가 늑대를 만나는 장면은 온통 짙은 빨간색과 검정색으로 채색되어 읽는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켜 줍니다. 다른 그림책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강렬한 색감 선택은 색에 민감한 프랑스 사람들이 에릭 바튀의 그림을 사랑하고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유화의 맛을 잘 살려 표현한 그림들은 한 컷 한 컷이 단순한 삽화가 아닌 하나의 그림 작품으로 보이기에 충분합니다. 더욱이 절제된 표현과 강렬한 색감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그림책을 보며 감성 교육을 함과 동시에 창의력 또한 자극받을 수 있습니다.

                                                                                                -출처 <예스24>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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