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꼬박꼬박 말대꾸 대장>을 읽고-
"어머, 무슨 아기가 저렇게 옹알이가 심해? 저런 애는 또 처음 본다~."
"......"
태어난 지 육 개월도 안 된 아기가 방바닥에 누워서 아빠빠빠빠~ 어마마~~~ 하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옹알이를 하고 있다. 그런 아기를 둘러싸고 할아버지, 할머니, 큰할아버지, 큰할머니 네 명의 어른들이 앉아있다.
그들은 한 번씩 꼬물이를 쳐다보며 "어이구 이쁜 놈." 하며 우쭈쭈를 하다가 이내 각자 딴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아기의 엄마는 방문 바깥에서 "이제 그만 데리고 나갈게요." 그 말 한마디를 어른들이 어려워서 못 하고 있다.
'이 낯선 어른들 사이에 날 버려두고 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 뒤집기도 못하는 이제 100일이 갓 넘은 아가가 분노에 겨워 저렇게 옹알이를 하나 싶어 발만 동동, 안절부절이다.
속 타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약을 올리는 건지 사촌 형님이 한마디 툭 던진다. 저렇게 옹알이 심한 아기는 난생처음 본다고. '어쩌라고? 아기들이 다 저 정도는 옹알이하는 거 아냐??' 그때는 몰랐다. 우리 꼬물이가 쉴 새 없이 입을 놀려 댈 줄은... 아가는 네 살이 되어서야 어린이집을 갔다. 육아서에 적힌 대로 만 3세, 36개월을 품 안에서 키우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뽑힐 확률이 극히 낮은 남편의 직장 어린이집에 운 좋게 당첨됐고 당연히 보내야 한다는 주위의 속삭임에 귀 얇은 엄마는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아이는 마음의 준비 없이 기저귀도 못 뗀 채 등원을 하게 됐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키즈 카페에 온 줄 착각해 신이 났던 첫 등원 날 아이의 표정이 십 년이 다 돼 가는데도 선명하다. 아마도 엄마가 계속 옆에 있는 줄,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다 두 시간 정도 지나면 집에 가는 줄 알았으리라.
아침 9시에 등원버스를 같이 타고 어린이집까지 엄마와 가는 시스템이었는데 도착 십분 전부터 긴장했다. 떨어지기 싫어서 눈물 콧물 범벅의 악을 쓰며 우는 아이로 인해 나도 눈가가 빨개졌다. 그렇게 거의 6개월을 같이 울면서 떨어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울음이 잦아든 2학기가 되고 처음으로 학부모 상담을 하게 되었다. 내키지 않는 남편을 설득해 일찍 퇴근해서 같이 상담을 가자고 했다. 지금까지 육아서를 읽으며 거기 적힌 대로 똑바로 키웠다고 자부심이 컸다. 30년 이상을 살면서 이렇게 뭔가에 정성을 쏟아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안 알아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주담임 선생님의 모든 말이 기대 이상?이었다. 망치가 되어서 두개골을 계속 두들겨 팼다.
"어머니, 00가 딴 애들에 비해서 너무 늦네요. 기저귀도 딴 애들은 다 떼고 4세 반에 왔는데... 00은 아직도 잘 못 가리고. 저희가 좀 힘들어요. 특히 말이 너무 느려요.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언어치료센터에 상담받으러 가보세요. 저희 동생도 어릴 때 다녔는데 금방 좋아지더라고요..." 웃으면서 말하는 그 선생님의 입을 바늘로 한 땀 한 땀 꼬매 버리고 싶었다. 등원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발음이 많이 좋아졌다고 느꼈다. 보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보물을 이렇게 지지부진아로 판단해? '당신이 도대체 뭘 알아? 우리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알아. 말은 좀 느릴 수 있는 거 아냐?' 다다다다~ 속으로만 쏘아붙였다.
남편과 나 둘 다 얼굴이 붉으라 푸르락 해졌다. 반박은커녕 "네, 네. 죄송합니다.' 이 말만 하고 상담이 끝났다. 분노는 곧바로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내가 잘못 키웠나? 분노한 남편은 나에게 원망을 해댔다. 집에서 도대체 뭐 했냐고! 자기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8시가 넘으면 집에 오면서 당당했다. 울보는 또다시 서러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에게 과묵한 엄마였었나? 수다쟁이 엄마가 언어발달에 좋다는데 이 모든 게 정말 다 내 탓???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육아서와 맘카페를 들락거리며 공부했다. 그리고 실천했다. 아이가 아무리 말을 더듬어도 눈을 보며 끝까지 들어주었다. 짜증이 나도 참는 건 일등이니 버벅거리는 아이의 말을 다시 문장으로 만들어서 질문했다. "아 물 마시고 싶다고? 생일 축하하는 노래 부르고 싶다고? 바지가 젖어서 찝찝하다고? 등등" 그 시간들이 조금씩 쌓여서 5세가 되니 나를 제외한 타인들도 의사소통이 수월해졌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지금은 하루 종일 입을 가만히 두지 않는 수다왕이 된 녀석. 그림책 <꼬박꼬박 말대꾸 대장>을 읽으며 우리 집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무슨 말만 하면 갈매기 눈썹을 그리며 "내가 알아서 할 게."를 달고 사는 열세 살. 주말에 집콕을 하면 우리 부부는 심한 피로감에 젖어든다. 아이는 자기가 책에서 읽은 것, 유튜브에서 본 것,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계속해서 쏟아낸다. 그러다 우리가 좀 조용히 있자고 하면 방에 들어가 탑 100 노래를 질리도록 부르는 아이. 저녁이 되면 귀가 먹먹하고 이명이 들리는 듯했다. "00야 목 안 아프니? 그렇게 말하면 안 피곤하니?"
"왜 피곤해? 나는 말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려. 침묵하는 건 고역이야." "학교에서 그렇게 계속 말해? 수업 시간에 친구들이 안 싫어해." 엄마는 또 쓸데없는 걱정타령이다. 어쩜 이렇게 다르지?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혼자 있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넌 누굴 닮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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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지 아빠를 닮은 것 같다. 신랑은 부산 남자들에 비해 말이 많은 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도 말이 많아서 촉새였단다. 세 명중 나만 과묵하다. 저렇게 말이 많으면 나중에 여자친구가 좋아할까… 혼자 앞서 나가는 나란 여자ㅋ 그래도 불행 중 다행, 수다왕이 장점인 건지, 첫 상담 때의 충격은 더 이상 없다. 상담을 가면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이 칭찬을 해주신다. 친구에게 설명을 잘해주는 아이, 수업 시간에 질문을 잘하는 아이, 자기 의견을 설득력 있게 말하는 아이라고.
말 많아서 수업 방해하고 친구들이 싫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안도감이 든다. 먹는 것의 80% 이상은 입으로 향한 아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할 때마다 항상 지는 기분이 들어 이젠 내가 심리상담센터를 다녀야 할 판이다. 오늘도 등교하기 전까지 서로 입씨름을 하면서 헤어졌다. 한마디도 안 하고 무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말대꾸하는 게 나으려나? 수다왕 아들과 과묵왕 엄마의 하루는 길고도 길다.
-관련 그림책-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우리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아 커뮤니티를 보면 “자꾸 말대꾸하는 우리 아이 버릇을 어떻게 고쳐 줘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미운 네 살,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주장이 분명해지면서 점점 부모에게 말대꾸를 하지요. 부모는 아이가 말대꾸를 하면 반항을 한다고 생각하여 ‘말대꾸’라는 나쁜 버릇을 고쳐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마 말 좀 들어.”, “누가 엄마한테 말대꾸하래. 말대꾸는 나쁜 거야, 하지 마!” 하면서 아이의 말을 막아 버립니다.
『꼬박꼬박 말대꾸 대장』은 말대꾸하는 아이 때문에 고민스러운 우리 부모들을 위한 시원스러운 지침서입니다.
-출처 예스 24 책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