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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Jul 25. 2022

울보유전자

-그림책 <울면 좀 어때>를 읽고-


"전혀요. 얘는 절대로 울지 않는 아이예요. 하지만 얼마나 날 애먹이는지 몰라요. 내 속 썩는 건 하느님이나 아시지요.”

“그렇다면 벌써 좋아지고 있군요. 아이가 울고 있잖아요. 정상적인 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아이를 데려오길 잘하셨어요."

-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


나는 참 울음이 많은 아이였다.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기쁘거나 힘들거나... 아무튼 툭하면 눈물부터 흘렸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우니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엄마는 그렇게 마음이 여려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냐며 걱정 섞인 말을 자주 하셨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 좀 더 강해지고 덜 울 줄 알았다.

웬 걸 횟수와 농도가 더 심해졌다. 신랑과 싸울 때도 울고 시댁에서 시어머니가 한소리 할 때도 울고 사춘기 아이와 투닥거릴 때도 운다. 울보 아이에서 울보 엄마로 타이틀이 바뀌었다.


최근에 가장 쪽팔렸던 상황은 동네 독립서점에서 열린 낭독회 준비 시간이었다. 강사님을 초대해서 발성연습을 하는 낭독자 열 명이 모인 첫 만남이었다. 강사님은 감정 표현 설명을 위해 지원자 세 명이 필요하다 했다. 그날은 뭘 잘못 먹었는지 선뜻하겠다고 앞으로 나섰다. 강사님이 던진 과제는 '사랑해'라는 단어를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기였다. 그 순간 눈물샘에 연결된 긴 호스를 발로 세게 밟아서 압력이 터져버렸다.


마음이 컨트롤되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며 사랑해라고 뱉었는데 조금씩 눈시울이 붉어지다 통곡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나 자신이 어이가 없다.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었지 코와 입 주변이 흘러내리는 콧물로 엉망이 되었다. 강사님도 당황하고 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 모두 놀란 눈치였다. 지인분은 어색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00 씨, 남편 이름을 부르며 사랑해라고 했어야지." 하며 위로를 했다. 그래도 터진 눈물은 쉽사리 멈춰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한 달 동안 낭독회 연습이 끝나면 잽싸게 사라졌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것도 유전되는 건지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다. 신랑이랑 10년 넘게 살면서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녀석은 아빠를 닮지 않았다. 수학 문제가 잘 안 풀려도 눈물부터 흘리는 아이다. 아기 때 자장가로 '섬집아기'를 불러주는데 동그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으앙 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녀석은 울보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걸. 얼마 전에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마지막 회를 보다가 김혜자 님이 죽는 장면에서 같이 부여잡고 또 울었다. 신랑은 그런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공감 능력 떨어지는 인간 쯧쯧) 아빠를 반만이라도 좀 닮지... 잘 우는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이 되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울면 어린 시절 내가 떠올라 속이 상했다.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되지만 나 역시 우리 엄마가 날 보며 그랬듯이 걱정부터 앞섰다.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지... 울보라고 친구들에게 놀림당할까 봐, 사람들이 만만하게 볼까 봐 한숨부터 나왔다.


하지만 그림책 <울면 좀 어때>를 읽고 알게 되었다. 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건강한 울음은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비타민이란다. 언젠가 남자들의 우울증이 증가하는 이유가 여자보다 울지 않아서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래 마음의 병보단 우는 게 백 번 낫지. 이제부턴 '울지 말자, 울면 바보다'라는 말 대신 실컷 울게 놔둬야지. 나도 우리 아이도 눈물 비타민을 먹으며 마음을 토닥이는 중이니까.


-관련 그림책-

건강한 울음은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비타민입니다.


「괜찮아」시리즈는 우리 아이들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등을 찾고, 두려울 때.혼날 때.슬플 때.화날 때 같이 여러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용기를 주기 위한 책입니다. 3권『울면 좀 어때』는 아플 때, 슬플 때, 기쁠 때 등 울어야 할 때 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 주기 위한 그림 동화책이다.



화가 나는 상황과 마주하기


홍걸이는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선수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기쁠 때도 눈물이 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무릎이 까져서 눈물이 났을 때 심술꾸러기 영철이는 울보라고 놀렸거든요. 아빠한테 물어보니 눈물은 아플 때만 나는 게 아니었어요. 홍걸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들은 기뻐서 눈물을 흘렸어요. 넘어져서 상처가 나면 아파서 울기도 하지만, 엄마는 홍걸이가 잠든 모습을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흘리기도 해요.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예요.


운다고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슬프면 엉엉 울고, 코도 팽 소리 나게 풀고 나면 가슴이 시원해져요. 울면 좀 어때요? 울어도 괜찮아요.


                                                                                                  -출처 예스 24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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