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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Jul 20. 2022

불편한 관계

-그림책 <진짜엄마 진짜아빠>를 읽고-

아빠라는 단어를 들으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마음이 아련해지거나 행복한 기분이 들기는커녕 불안감에 휩싸인다. 나에게 아빠는 그런 존재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밥상을 뒤엎거나 아니면 술에 잔뜩 취해 있는 모습, 머릿속에 그런 잔상으로만 남아있다.


어린 시절 김수현 작가님이 대본을 쓴 가족드라마를 좋아했다. 그분의 드라마를 빠짐없이 다 봤는데 특히 《부모님 전상서》 속 아빠의 모습이 좋았다. 방영되는 시간이 되면 앉아서 기다렸다. 내가 꿈꾸는 아버지 상이 었다. 책을 많이 읽고, 차분하고 자식들이 힘들어할 때 따뜻하게 품어주는 멘토 같은 아버지……. 왜 우리 아빠는 이런 사람이 될 수 없을까?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 배우들

그림책 <진짜엄마 진짜아빠>를 읽으며 어린 시절 울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림책 속 주인공은 '너무멀어자세히안보면잘안보여 별'의 왕자님이다. 왕과 왕비가 여행 중 해적에 쫓겨서 지구에 왕자를 놔두고 떠난다. 왕자는 어느 가족이 데려가 키우지만 언젠가 진짜 엄마, 아빠가 데리러 올 거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내가 밤마다 기도했던 내용이다. "부처님, 진짜 아빠가 저를 찾으러 오게 해 주세요." 순진하게 그런 기도를 했다.


아빠가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날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리던 어린 시절을 지나서 스무 살 성인이 되었을 때, 지금껏 참아왔던 원망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빠는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 신세 한탄을 계속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된 게 할머니 탓이라고, 너희 고모 탓이라고.’ 매번 하는 레퍼토리에 순간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래서 버럭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의 그 타령 지긋지긋해. 술 좀 작작 마셔요. 아빠는 뭐 잘한 거 있다고!” 눈물만 흘리고 아무 말 못 하던 큰딸이 벌건 얼굴로 달려드는 모습에 아빠도 흥분했다. 딸한테도 이런 취급을 받아서 뭐 하겠냐고 자살 소동을 벌였다. 엄마와 여동생은 빨리 아빠한테 싹싹 빌라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다. 아빠가 충격을 받아서 TV 드라마 속 아버지처럼 그렇게 싹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환상을 품었다. 이른바 충격요법이다.


그날 이후로 20년이 지났고 아버지와 나의 사이는 냉랭하다. 불편한 관계이다. 동생은 아빠한테 싹싹하고 전화도 자주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 한 번도 먼저 전화한 적 없고 아빠가 전화하면 네, 네 단답형으로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빨리 끊는다. 오죽하면 신랑이 결혼 초기에 너무 싹수없이 군다고 핀잔을 주었을까?


한 달 전에는 엄마가 ‘아빠가 전화 오면 대답 좀 잘해라. 나를 못살게 군다.’라고 카톡을 보내셨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읽씹을 했다.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엄마를 들들 볶았다는 점에 또 화가 났다. 틀어진 관계는 만리장성처럼 견고해져서 무너뜨릴 수 없다. 관계가 좋아질 자신이 없다. 아빠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딸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공부를 오래 하다가 서둘러 결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신랑이 아빠와는 완전히 극과 극, 정반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에게는 다정하고 기댈 수 있는 아빠를 만들어줘야지, 사고 안 치는 성실한 사람을 만나야지.'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이상형이라 망설이지 않았다. 꿈꾸었던 아빠를 우리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이고 남편은 100%의 완벽한 아빠는 아니다. 다소 아쉽지만 장난 잘 치고 게임도 같이 하며 재미있는 친구 같은 아빠는 되어주었다. 아이가 무시무시하다는 중2 사춘기만 무사히 잘 넘어갔으면 좋겠다.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거의 두 달 만에 친정에 갔다. 엄마는 볼일을 보러 나가셨고 동생네는 먼저 다녀갔다. 집에는 친정 아빠, 나, 신랑, 아들 이렇게 있었다. 친정에 가면 엄마하고만 이야기하기에 그 상황이 어색하고 적막만 흘렀다. 아이는 고학년 사춘기 시작이라서 핸드폰만 하고 있고 어른들 3명은 말없이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서 끊임없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에게 또 화가 났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번에도 쏘아붙였다. “아빠는 아빠 좋아하는 정치인 지지하고, 우리는 우리 좋아하는 사람 지지할게요, 정치 이야기는 부부간에도 안 한다는데 올 때마다 누구 욕 좀 그만하세요!” 그렇게 사위와 손주 앞에서 싸가지 없이 말하는 내 모습에 아빠는 순간 얼어붙었다. 남편과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한바탕 난리가 나겠구나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밥상을 뒤엎었을 텐데 이번에는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셨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아빠도 나이가 드셨구나, 힘이 빠지셨다는 생각에 안도감과 슬픔의 모순적인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빠에게 쌓인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원망도 분노도 없었던 6세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다. 몸만 자란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내 머리가 반백이 되면 괜찮아지려나? 참으로 불편하고 불편한 관계이다.

      


-관련 그림책 소개-


우리 ‘진짜 엄마 진짜 아빠’ 못 보았니?



“나의 ‘진짜 엄마 진짜 아빠’는 따로 있을 거야.” 부모님에게 혼나고 나면 울먹울먹 눈물을 한 가득 머금은 아이들은 생각합니다. 세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이런 생각 한번 안 해 본 아이가 있을까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삼촌부터 이 책을 읽을 아이들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언제나 최고의 스토리와 그림을 선사하는 박연철 작가의 손에서 〈진짜엄마 진짜아빠〉가 탄생했습니다. 재미난 이야기와 독특하고 기발한 그림으로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의 엉뚱하고 귀여운 생각을 들여다보고, 나와 가족의 관계,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유머로 녹여내어 그린 그림책입니다.


                                                                                                              -출처 예스24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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