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아빠가 장남이었기에 아들을 바랐던 할머니는 나와 동생의 이름을 남자 같이 지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을 말할 때 처음 듣는 말이 ‘어머, 이름이 남자 같네요?’였다. 그게 속이 상해서 좀 더 여성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모르는 사람을 봐도 방실방실 잘 웃고 얌전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어릴 적부터 말썽을 부리는 왈가닥이었고 고집불통에 한마디로 기가 센 남자 같은 아이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동생이 4살이었던 것 같다. 물을 먹다가 옷에 흘려서 소매 끝이 조금 젖었는데 바꿔 입겠다고 했다. 그런데 새로 갈아입은 지 얼마 안 된 옷이라 엄마는 그냥 입으라고 했다. 하지만 동생은 바꿔 입겠다고 한 시간을 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방구석을 굴러다니며 새 옷 내놓으라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그 말을 반복했다. 엄마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빗자루를 들고 매질 시늉을 했지만 동생은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도 지지 않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냥 놔두었다. 6살이었던 나는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조금만 참으면 젖은 옷이 마를 텐데 왜 저렇게 엄마를 화나게 하는 거지? 나였으면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입었을 것이다. 그만큼 동생은 나와는 많이 다른 아이였다.
두 번째로 타인이 우리 자매를 보고 많이 하는 말이 ‘언니가 동생 같고 동생이 언니 같네요.’라는 소리였다. 외형적으로도 나는 158cm에 작은 키지만 동생은 172cm가 넘는다. 나는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언제나 덤벙대고 잘 잃어버리고 물도 걸핏하면 쏟았다. 그러나 그 아이는 손끝이 야무진 아이였다. 요리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엄마가 시키는 집안일도 실수 없이 잘하는 사람, 나는 그런 동생이 얄미웠다. 부러웠다. 동생이 언니 같다는 말이 듣기 싫었다. 자격지심과 질투가 뒤섞인 감정은 엄마가 동생을 더 예뻐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나 6살, 동생 4살 그림책 『피터의 의자』를 읽으며 피터의 모습이 어린 시절 나와 겹쳐 보인다. 피터는 동생이 태어나고 자신이 후순위로 밀려난 게 속상하다. 자신의 파란색 의자도 핑크로 페인트 칠해서 동생에게 주는 부모님이 싫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지만 앞마당으로 가출도 한다. 하지만 곧 피터의 부모님은 아이의 속상함을 깨닫고 녀석의 마음을 위로하며 다독여준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8살 때 엄마가 시장에 가서 동생의 옷만 사 왔다. 장을 봐 온 검은색 봉지 네다섯 개를 아무리 뒤져도 내 옷은 보이지 않았다. 내 거는 왜 없냐며 속상해서 방에 들어가 엉엉 울었다. 엄마는 신경질 난 목소리로 “엄마가 죽으면 네가 엄마 노릇해야 하는데 언니가 돼가지고 잘~한다.” 하며 귓전에다 따갑게 톡 쏘았다. “몰라..”하고 짧게 대답했지만 그날 밤 일기장에 엄마 욕을 잔뜩 적었다.
이 응어리 진 마음은 혼자서 끙끙 앓다가 딱딱하며 모난 돌이 되었다. 나는 양보 잘하는 넉넉한 언니가 아니었다. 우리 둘은 결혼 전까지 정말 많이 싸웠다. 옷부터 시작해서 금전 문제로도 다툼이 잦았다. 동생은 일을 하는데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나는 공부만 하고 있으니 그녀도 불만이 많고 언니가 짜증 났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한 명만 낳은 것도 어릴 때 받은 상처가 어느 정도 작용을 했다. 물론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 점이 가장 크지만 아이 두 명에게 똑같이 사랑을 줄 자신이 없다. 최근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는데 그 연구에서도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는 틀린 말이란다. 유전자적으로 엄마가 막내를 더 챙기는 상황이 정상이란다. 그러니 나 역시 어린 막내를 더 챙길 것이고 서운해하는 첫째의 마음을 놓칠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동생에 대한 질투가 서로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신기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생은 첫 조카를 참 이뻐했다. 기념일마다 까먹지 않고 선물을 챙겨서 보내고 만나면 엄마보다 재미있게 놀아줘서 아이도 이모를 잘 따랐다. 오죽하면 엄마보다 이모가 더 좋다는 말을 만날 때마다 했겠는가. 걔다가 동생이 갈 시간이 되면 이모 자고 가라며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이에게 둘도 없는 이모가 되어주니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나는 우리 동생을 왜 그렇게 질투했을까?
지금 보면 동생이 언니 같다는 말이 맞았다. 결혼 후 시댁 일로 힘들거나 사람들과 부딪힘으로 혼자서 상처받을 때, 엄마에게 못 하는 말을 동생에게 전화해서 조언을 구했다. 마음이 힘들면 울면서 동생에게 전화했다. 유약한 언니와 달리 강인한 동생은 언제나 언니를 위로하고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았다. 동생은 힘든 일로 전화를 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녀도 속상한 일이 있을 텐데 언니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한 것 같다. 어른들이 정확하게 본 것이다. 동생이 내 언니로 태어났어야 했다. 아무래도 삼신할머니의 착오가 있었나 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삼신 할머니를 원망하며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번 생애는 계속 동생 같은 언니 역할을 할 것이다. 오늘은 그녀에게 전화해서 약속을 잡아야겠다. 코로나 사태 이후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열 번도 안 된다. 동생과 예쁜 카페에 가서 맛있는 거 먹으며 사진도 찍고 폭풍 수다를 떨어보련다.
나 11살, 동생 9살
-관련 그림책-
새로 태어난 동생 때문에 엄마, 아빠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꼬마 이야기. 제가 쓰던 의자를 동생에게 주지 않으려고 그 의자를 가지고 내빼는 아이의 어깃장이 충분히 설득력있게 표현되어 있다. 동생이 생겨서 생기는 시샘은 “동생한테 착하게 굴어야지” 하는 따위의 말로는 금새 고쳐지지 않는다. 제 엉덩이 붙이고 앉기에는 너무 작은 의자, 그것이 이 꼬마를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논리이다.
-출처 예스24 책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