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만 있다고?!
부여 들판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스무 살 무렵까지 콩잎이라는 걸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다.
그 넓디넓은 논두렁과 고샅길을 매일같이 걷고도 말이다. 어머니의 식탁에는 콩잎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던 스물셋, 부산으로 시집온 첫여름날에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마주하게 된다.
시어머니는 장독대에서 시커먼 잎사귀를 꺼내 밥 위에 척 올리며 말씀하셨다.
“니는 이 귀한 거 먹어본 적 없쟤? 요래 싸 묵어봐라. 밥도둑이 딴기 아이다.”
그녀는 그 말에 한 장을 젓가락으로 들어 입에 넣었지만, 곧 짭조름하고 쿰쿰한 된장 향에 눈을 찡그렸다. 도무지 입에 붙지 않았다. 차라리 풋고추나 깻잎이 낫지, 저 눅눅하고 짠 콩잎은 도통 정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딸에게서 일어났다. 열한 살이던 큰 딸은 여름만 되면 차가운 보리차에 밥을 말고 된장콩잎을 밥 위에 올려 오물오물 씹었다.
“엄마, 이렇게 먹으면 두 그릇도 먹을 수 있겠다!”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그 쿰쿰한 맛을 아이가 이렇게 좋아하다니. 입맛이 덜 자라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 딸은 자라서 진해 용원, 바닷바람 부는 동네에 신혼집을 꾸리게 되었다.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임신 소식을 전해왔고, 입덧이 몹시 심하다는 말에 그녀는 콩잎을 떠올렸다.
김치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 뚜껑을 열자, 푹 익은 된장 냄새가 짙게 퍼졌다. 손끝에 묻은 된장 냄새는 아스라한 여름날 장독을 열던 시어머니의 손과 겹쳐졌다.
미리 데쳐둔 콩잎을 가지런히 펴고, 다진 마늘과 홍고추, 매실액 등을 넣은 된장에 콩잎을 한 장씩 정성스레 재웠다. 된장의 짠 향, 콩잎 특유의 풋내가 섞이며 부엌 안이 옛날 냄새로 가득 찼다. 손가락 끝에 머무는 미끌한 감촉, 콩잎을 덮을 때 나는 사각거림, 그 모든 게 마치 시간이 반죽해 낸 한 편의 기억처럼 오롯했다.
그녀는 그것을 챙겨 신혼집으로 향했다. 딸은 여전히 입덧에 시달리며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다. 조용히 부엌에 들어가 밥을 지어 찬물에 말고 콩잎을 그릇에 담은 뒤 소박하게 한 상을 차렸다.
“니, 아직도 아무것도 못 묵고 있나?”
“어… 엄마, 냄새만 맡아도 속 뒤집어진다.”
그녀는 웃으며 밥 위에 콩잎 한 장을 척 올렸다.
“이거, 엄마가 니 좋아하던 거 해왔다. 함 먹어봐 봐.”
딸은 흘끗 쳐다보다가,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었다. 오물오물 씹던 딸의 눈이 번쩍 떠졌다.
“와… 엄마, 이번에는 콩잎 잘 됐네! 진짜 옛날에 할머니가 해주던 그 맛이다. 내가 원하던 맛이 이거다 이거!”
“다행이네. 니 어릴 때 여름만 되면 맨날 달라 캐서 엄마가 숨겨놨던 거, 기억나나?”
딸은 배시시 웃으며 콩잎 한 장을 또 집어 들었다.
“기억나지~ 다른 거는 안 먹고 맨날 찬밥에 물 말아서 콩잎만 싸 먹어서 혼났잖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그렇게 좋아했던 거, 엄마가 안 해줄 수가 있겠나… 니는 체하고 나은 날에도 꼭 이거 찾았잖아.”
딸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엄마밖에 없다. 진짜 살 것 같다.”
그녀는 딸의 반응에 씁쓸히 미소 지었다. 자신은 아직도 그 맛이 썩 입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 콩잎 속엔 시어머니의 손맛, 딸의 입맛, 그리고 자신이 몰랐던 가족의 시간이 차곡차곡 절여져 있었다.
바깥 창문 너머, 바닷바람이 은은히 불어왔다.
콩잎 하나로 이어진 모녀의 식탁은, 세월을 품은 장아찌처럼 진하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