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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Apr 25. 2024

(단편소설) 이야기 (完)

태수는 동아리방을 가기위해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다가오는 여름날씨에 태수는 얼굴에 맺힌 땀을 연신 훔치며 올랐다. 태수가 계단을 거의 다 올랐을 즈음에 뒤에서 그의 후배 미진이 그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태수 선배”     


태수는 마지막 계단을 두고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을 부르는 후배가 누군지 확인하며, 반겼다.      

 “어, 미진이구나, 지금 동아리방 가는 길이야?”     


미진은 태수가 먼저 올라갈세라 뛰다시피 계단을 올라, 태수의 가방을 붙잡았다.      

 “선배,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요? 그리고 뒤에서 한참을 불렀는데 못 들었어요?”

 “미안, 못 들었어, 너는 동아리방 가는 길이야?”

 “네, 선배는요?”

 “나도, 동아리방 가는 길이야”     


태수는 미진을 한 번 쳐다보고는 심드렁하게 이야기 한 뒤, 다시 앞을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미진은 태수가 왜 바삐 움직이는지 알고 있기에 그의 걸음에 맞춰 빠르게 걸으며 계속 말을 걸었다.      

 “선배 소설은 쓰기 시작했어요? 이번 교내 소설 공모전이요.”

 “아직, 시작도 못했다”     


태수는 동아리 ‘소설 쓰는 이카루스’의 회장이었다. 그리고 부원은 약 10명 정도 있는 작은동아리 리다. 부원 중 태수는 같은 과이며, 동갑인 영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며칠 전, 동아리 회식 때, 영수는 태수에게 아직도 시덥잖은 로맨스 소설이나 쓰냐며 비아냥 거렸고, 그 둘은 서로 욕지거리를 하다가 결국 주먹다짐 까지 하게 되었다. 서로 주먹질로 끝날 뻔 한 싸움이었지만, 태수가 이번 학교에서 주최하는 교내 소설공모전에 자신이 쓴 로맨스 소설로 당당히 입상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것이다. 그 때, 영수는 코웃음을 치며, ‘네가 입상을 하면 내가 여기서 나가주겠다’ 라고 덥석 태수의 제안을 물어 버렸다. 동아리 내에서 영수는 항상 시니컬하였기에 좋아하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은근히 태수를 응원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미진은 태수가 무엇을 알았기에 최대한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선배, 그럼 내가 소설쓰는 거 도와줄까요? 아무래도 로맨스 소설이면, 남자 혼자 쓰는 것 보다, 여자랑 같이 쓰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네가? 너 연애는 해봤니?”

 “선배!”     


 태수가 미진을 놀리듯 이야기는 했지만, 미진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기에 그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태수는 정중히 미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둘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금세 동아리 방에 도착했다. 동아리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태수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며, 책상에 노트와 펜을 꺼내놓았다. 미진은 그런 태수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자신의 노트를 폈다.      


 “선배, 혹시 생각한 주제가 있어요?”

 “아이디어는 많아, 하지만 어디선가 봤던 것뿐이고, 너무 뻔해서 걱정이야, 아무리 교내 공모전이라고 해도, 엄연히 대회이기 때문에 뻔한 주제로 나가서 상을 타기에는 무리라고 봐”


 풀이 죽어있는 태수를 보며 미진은 그의 뒤로 가서 어깨를 살포시 잡아주었다.      

 “선배, 힘내요! 우리 동아리 부원 중에 소설을 가장 잘 쓰잖아요. 어깨에 힘들어가서 딱딱한거 봐요. 내가 풀어줄게요”     


 미진은 계속 태수의 어깨를 주무르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아, 저도 생각을 좀 해봤는데 선배 말처럼 어차피 연애소설 이라는게 거기서 거기잖아요. 그러니까 작중 인물들의 대사에 힘을 싣는 거에요. 이름하여, ‘명대사 대방출 작전’”

 “명대사 대방출?”

 “네, 내용이 거기서 거기면 문장 하나하나에 임팩트를 넣는 거죠”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겠는데, 그게 쉬울까?”

 “일단, 줄기를 먼저 만들어 봐요”

 “좋아”     

 태수는 미진의 응원이 힘이라도 난 듯이 거침없이 플롯을 써내려갔다.      

 “미진아, 들어봐, (1)여자가 시한부를 선고받았어, 그리고 그 여자는 자신이 6개월 밖에 살지 못하는 것에 힘들어해 (2)그 여자의 담당의사는 그녀를 몰래 좋아하고 있어. 하지만 자신이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해 괴로워해 (3)결국 그녀는 죽고 남자만 남어”

 “오, 선배 역시 바로바로 생각하시네요. 이야기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좋은데요. 이제 이 이야기에 같이 살을 붙여 보시죠”     


 태수는 미진의 칭찬에 다시 펜을 잡고 도입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여자가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는 걸로 시작하는 거야. 시한부를 선고 받았으니, 잠시 집에 다녀와 요양하고 온다는 설정이야”

 “오 좋아요. 그럼 그 내용의 문장은 ‘그녀는 택시의 작은 창 사이로 흘러가는 시간을 볼 수 있었다’ 약간 이렇게 꾸며주면 어떨까요?”

 “괜찮은데, 그렇게 꾸미면서, 그녀가 처음 집에서 나와 봄 향기를 맡는 것도 넣으면 좋을 것 같다”     


 태수는 다시 한참을 써내려가며, 미진과 이야기한 내용들을 하나씩 반영하여 소설의 윤곽을 잡아갔다.      

 “이제 결말인데, 어떤 식으로 풀어 가면 좋을까? 여자가 죽고, 여자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의사? 아니면 여자는 의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냥 떠날까?”

 “둘다 너무 진부해요. 차라리 열린 결말은 어때요?”

 “열린결말?”     


 태수는 약간 의아하다는 듯이 미진을 쳐다봤다.      

 “네, 꼭 여자주인공이 죽거나 떠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다시 태수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 때, 미진이 태수의 귀에 귓속말로 속샀였다.      

 “선배,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갈까요?”

 “너 갑자기 그게 무슨 .....”     


 태수는 미진의 말을 듣고는 불현 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고맙다 미진아. 결말이 생각났어”     

 태수는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들어봐, 병원에 복귀한 미진이 앉아있자, 의사는 미진에게 힘을 내고 남은 삻이라도 즐기다 가라고 하는거야. 하지만 미진은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기 때문에 그 의사에게 물어보지 ‘의사 선생님,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요?’ 그 때,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환자분이 어디로 가시든 그 곳은 봄일 꺼에요!’ 그리고 이 말에 힘을 얻은 여자는 크게 웃으며 소설을 마무리 하는 거야”     


 미진은 태수가 쓴 결말을 넋을 놓고 들었다.      

 “선배는 천재에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고마워 네 덕분이다. 문장들 정리만 하고 좀 더 살을 붙이면 공모전에 늦지 않고 낼 수 있겠어! 오늘 나 많이 도와줬으니까 밥 살게 가자”


 책가방을 챙기는 태수 뒤에서 미진은 어색 하게 서있었다. 태수가 가방을 챙기라고 이야기를 하자, 미진은 쭈뼛거리며 힘겹게 입을 땠다.     

 “선배, 오늘 내가 도와준게 그렇게 고마워요?”

 “응, 엄청 고마워. 도움이 많이 됐어. 밥먹으러 가자”

 “도움이 많이 됐으면, 밥 말고 다른 선물 해줘요”

 “선물?”     


태수가 미진을 바라보며, 의아하게 쳐다보자, 미진은 볼이 발그스름해진 채로 땅을 바라 보며 말했다.      

 “네, 밥 말고 저 한테도 봄을 선물해 주세요”      

태수와 미진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볼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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