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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y 08. 2024


(단편소설) 꽃잎(完)

 내가 그 친구를 알게 된 이유는 완벽한 우연이였다. 노는 무리도 다르고, 또 그 무리와 내가 교우하던 무리는 관심사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나는 그 친구와 3년 동안 같은 반이었지만 말 한 마디 제대로 섞을 기회가 없었다. 단순히 그 친구가 여자고, 내가 남자기 때문에 접점이 없던 것은 아니다. 내 무리의 친구 중에는 일부 여자들도 있었고, 또 나는 그들과 제법 잘 어울렸었다. 아무튼 나는 오늘같이 벗꽃이 흩날리는 날이면 그 친구가 생각난다. 딱히, 첫사랑이나 이런 애뜻한 감정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꼭 벗꽃이 흩날리는 날에만 생각났으니까. 반대로 말하면 더운 여름이나, 낙엽이 지는 가을 혹은 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그 친구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친구와 만났을 때 처럼 꽃잎이 흩날리고 있다. 아까 이야기 한 것 처럼 그 친구와 나의 만남은 완전한 우연이었다. 나는 학창시절 꽤 글을 잘 쓰는 놈이었다. 그래서 교내 백일장에서 왕왕 상을 타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여느때와 같이 '겨울'을 주제로 교내 백일장이 열렸고, 나는 '겨울'에 관한 짧은 시를 써서 상을 타게 되었다. 시라는 것이 많이 생각하면 잘 써지지 않는다. 내가 당시에 제출한 '겨울을 잡아보자' 이라는 시도 내리는 눈을 보고 5분 정도 만에 떠오르는 글들을 그냥 나열했을 뿐이었다. 10년이 지나 그 내용이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

 눈이 내린다.


 잡아라, 잡아

 겨울을 잡아보자

 손에 꼭 쥐어 

 봄에게 선물하자

 

 봄이 오거든 내 손에 겨울을 내주고,

 봄날의 향기를 손에 담자.


 그리고 그 향기는 다시 여름에 선물하자. 

--


 지금 보면 많이 유치한 것 같지만, 그 때에는 꽤 많은 아이들이 공감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쓴 '겨울을 잡아보자'라는 시로 그 이듬해 열리는 지역 백일장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회는 나의 고등학교 3학년 3월에 열렸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내가 수상했던 교내 백일장대회 '그림 부분'에 최우수상을 수상한 그 친구가 함께 지역 백일장대회로 갔다. 수가 적어 인솔교사 없이 오롯이 둘이 갔으나, 별로 친하지 않던 우리는 따로 만나거나 그러지는 않고 각자가 대회장소로 갔었다. 그 곳에서도 공통점은 같은 학교일 뿐, 인사조차 하지 않았었다. 


 대회가 시작되었고, 주제는 '꽃'이 었다. 나는 당시에 꽤 진부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딱히, 꽃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시간은 넉넉해서, 대충 그늘로 가려진 풀밭에 누워 주제를 곱씹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입에는 강아지풀 하나를 물고, 팔베개를 하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있는데, 작년에 그 친구가 그린 그림이 생각났다. 그림은 대각선을 기준으로 아래에는 겨울이 지나가는 모습을 위에는 봄이오는 모습을 그렸었다. 그 봄이 오는 모습을 표현할 때, 큰 벚꽃나무에서 떨어지는 분홍 꽃잎들이 흩날리는 모습으로 담아냈다. 그 그림이 내게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내 펜을 잡고 그 친구의 그림을 떠올리자 글은 막힘없이 써내려갈 수 있었다. 10분이 채 안 되어 나는 글을 완성했다. 나는 더 고칠 것도 없을 거라 생각해, 작품을 제출하고, 남은 시간은 만화방에서 때우다 들어갈 요량으로 먼저 그 곳을 빠져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 친구는 무슨 그림을 그리는 지 궁금했다. 다행히 그림 그리는 아이들은 내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나는 가방을 메고, 일부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 열기는 대단했다. 아이들이 모두 집중해서 그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친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와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앙 다문 입과 약간 보이는 빨간 입술 영락없는 그 친구였다. 


 그들은 풀 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인도와 인접한 곳에서 그리고 있었기에 내가 지나가다 우연히 볼 수 있는 거리었다. 그 친구가 무엇을 그리는지 볼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 친구의 그림이 보일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가 그리고 있는 것은 내가 작년 겨울에 교내 백일장 대회 때, 제출한 시의 장면이였다. 물론, 밑바탕만 연필로 그린 그림이었지만, 그 형태는 영락없었다. 눈을 잡으려는 어린아이의 손이 보였고, 그 옆에 아이는 꽃을 잡고 있었다. 


 나는 만화보러가는 것을 그만 두고, 그 친구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풀 밭 맞은 편에 앉아 그 친구가 그림을 다 그릴 때 까지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지루한 시간이 흐른 뒤 그 친구는 무리들 중 거의 마지막에 제출을 했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있는 그 친구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혹시 내가 쓴 시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린거야?"


 그 친구가 약간 당황한 듯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친구를 더 또렷이 보았다. 나는 별 생각없이 물었을 뿐이다. 오히려 내 시가 그림이 되어 기뻤었다. 그저 그 친구의 의중이 궁금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묵묵히 짐만 쌓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 번 더 물었다.


 "내가 혹시 뭐라고 할 것 같아서 그런거야? 네가 그린 그림 내 시를 모티브로 한게 맞는 거지?"


 그 친구가 짧게 대답했다.


 "응"


 나는 기쁜마음에 더 물었다.

 

 "내 시가 좋았니?"

 "꽤 괜찮았어"

 

 나는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 친구와 나의 처지가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웃어 버렸다. 갑자기 웃어버린 바람에 그 친구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빤히 처다봤다. 이제는 그 친구에게 왜 내가 웃는지에 대해서 말한 차례였다. 


 "나는 네가 그린 그림이 좋아서, 그 것을 떠올리며 시를 썼어, 정말 재밌지?"


 그제서야 그 친구도 나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봄의 향기가 내린 날, 어린 두 소년과 소녀는 그렇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봄도 그걸 아는지 웃고 있는 우리에게 꽃을 한아름 뿌려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는 내 시구 처럼 '봄의 향기'를 내게 선물하듯이 풋풋하게 다가왔다. 


 마침 오늘 운전하는 중에 벚꽃잎이 날리는 하늘을 바라 보니 그 친구가 떠올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생각했다. 


 - 빵빵


 뒷차가 가지 않는 나를 보고 성내듯이 클락션을 밟아댔다.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좋은 추억 떠오린 값이라 생각하고 악샐을 밟았다. 그 때, 내 옆에 와이프가 나를 보더니 한심한 듯이 물었다.


 "여보, 또 벚꽃 보면서 옛날에 그 사생대회인지 뭔지 떠올린거야?"

 "아니야. 무슨소리야?"

 "뭐가 아니야. 딱 보니까 가로수 벚꽃 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만, 언제까지 그 때 생각할거야?"

 "아니야..."


 내가 멋쩍어 하며 이야기하자 이제 5살 올라가는 딸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와이프는 웃으며 딸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아빠가 꽃 보면서 무슨 생각 한거야?"

 "응, 아빠가 엄마를 처음만난 날 생각한거야. 그런데 아빠는 아직도 그 때의 엄마를 잊지 못해서 봄에 만 엄마를 사랑하고, 애뜻해하는 것 같아. 너는 꼭 이 다음에 남자 만날 때에는 계절상관없이 널 사랑해주는 사람으로 만나라"


 와이프는 아이에게 웃으며 말을 하고, 나를 짖궂게 쳐다봤다. 나는 쑥스러워 괜히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아까 흩날리던 벚꽃잎 몇 개가 들어와 봄날의 향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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