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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Jun 06. 2024

(단편소설) 현실 그리고 수긍 (完)

태수가 천천히 목을 젖히고, 무거운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했을 때, 이미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는 쓰다만 기사를 저장하고 선, 노트북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그때, 그의 전화가 울리고, 휴대폰 넘어 상기된 케이의 음성이 들렸다.


 - 태수야 도착했어?

 “아니 지금 나가려고, 너는 벌써 도착한거야?”

 - 곧 도착해! 그럼 조금 이따 보자고


 태수가 케이와 만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란히 신문방송학부 수석과 차석으로 입학한 그들은 참 언론인이 되기 위해 같이 수학했다. 둘은 학부 때부터 글쓰기와 사회비판에 대해 통달해 있었는데, 한 토론 수업에서 그 둘이 맞붙었을 때에는 다른 학과 학생들이 청강할 정도로 실력들이 좋았다. 태수는 오랜만의 케이와의 만남에 설랬다. 30살 후반 부양해야할 가족이 늘어난 만큼, 어릴 적 꿈들이 줄어들고 있었기에, 케이를 만나는 것 만 으로도 그 때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태수는 내일 조간에 나가야하는 기사는 일단 제쳐두고, 케이를 보기 위해 서둘러 짐을 쌌다. 상기된 얼굴로 짐을 꾸리자 옆 자리 동료가 그에게 농담을 건냈다.


 “태수씨, 첫사랑이라도 만나러 가나봐? 급한거 보니”


 옆 자리 동료는 자신이 적절한 농담을 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뿌듯한 표정으로 태수를 바라봤다.

 “첫 사람 보다 더 그리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납니다”


 태수는 상대의 농담에 진지하게 말하며, 가방을 들고 휙 나가버렸다. 다행히 케이와 만나기로 한 카페는 태수의 신문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태수가 가방끈을 고처매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10년 만에 보는 케이가 바로 보였다. 그는 10년 전 보다 더 수척해져있었다. 

 “케이!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태수야. 정말 반갑다. 네 결혼식 이후 처음이지? 너야 말로 어떻게 지냈어?”

 “나는 와이프 비위 맞추고, 애들 케어하고, 돈 벌고, 햄스터 마냥 쳇바퀴만 구르고 있지, 너는? 결혼은 안 해? 만나는 사람은?”

 “결혼은 생각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어” 


 오랜만에 조우하는 그 들은 형식적인 인사가 끝나자 갑작스레 침묵이 찾아왔다. 태수는 괜히 커피 잔을 들었다 내려놨다 했다. 짧은 침묵을 깬 건, 케이였다.

 “태수, 요즘 기사 잘 쓰고 있어?”

 “나야 뭐, 잘 쓰고 있지, 너는? 요즘 준비하는 거 있어?”

 “응, 요즘 재력 있는 부모의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놀리고, 무시하는 행태에 대해서 준비하고 있었어”

 “주제 괜찮다. 요즘 애들 무서워”

 “그런데...”


 케이의 눈빛이 변했다.  ‘그런데’라고 말하고는 무엇인가 화가 난 건지, 자기 앞의 아이스 커피를 벌컥거리며 마시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위에서 하지 말라더라 그게 뭐가 재밌냐고 하면서”

 “주제자체는 고루할 수 있어도, 사회 풍토에 대해 알리고 경각심을 갖자는 내용인데, 위에서 왜 말리는 거야?”

 “그 딴 주제는 사람들에게 외면 받을 거래. 그러더니 나 보고 요즘 가장 이슈되는 연예인 스캔들 사건이나 특집기사로 내라더라” 

 케이는 분노했다. ‘연예인’이라고 말 할 때에는 목소리가 떨리기 까지 했다. 누구보다 사회비판에 앞선 그였기에 연예인 뒷 꽁무니나 조사하는 처량한 신세에 학을 떼는 듯 했다. 

 “그 딴, 쓰레기 같은 종이 낭비 기사들을 쓸 바에는 그냥 그만 두고 말지. 오늘 너무 화가나서 처음으로 다 던저 놓고 나왔다”


 그가 체념하며 말하자. 그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부장의 전화였다. 하지만 그는 받지 않으며, 핸드폰의 베터리를 분리해서 아예 꺼버렸다. 태수는 케이를 처다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너 그렇게 그냥 전화 안 받아도 되는 거야? 너네 직장상사 같은데”

 “필요 없어, 대머리 세끼가 뭘 안다고, 지금 다니는 데는 그냥 때려 칠 생각이다. 너는 나처럼 한심하게 안 살지?” 


 태수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가 방금까지 준비했던 기사는 케이가 그토록 혐오하던 연애인 뒷 꽁무니를 조사하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까지 네가 제일 혐오하는 연예인 뒷 꽁무니를 조사하는 기사를 쓰다 왔다”


 태수는 멋쩍게 웃었다.

 “너까지. 결국 어쩔 수 없나보네, 오늘 너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사회 담론을 나눌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였어. 학교 다닐 때, 너랑 나 꽤 합이 좋았잖아? 토론도 많이 하고, 나보다 더 열심히였 던 너 까지 변한 걸 보면, 나만 철 없이 사는 것 같다. 사실 오늘 널 만나면 나는 나만 이상하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어. 그런데 지금 보니까 나는 정말 이상한 놈이었네”

 “케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다들 상황에 맞게 사는 거지, 너는 아직 부양할 가족이 없으니까 좀 더 네 꿈을 펼쳐봐. 나는 이제 그게 안 돼”


 갑자기 케이가 옷가지를 챙겨들더니 일어났다. 

 “태수야, 미안하다. 오늘은 여기 까지만 만나야겠다. 너에 대해서 실망한 것은 아니야. 현실구분 못하는 나에 대한 자괴감이 너무 크다” 

 “케이, 오랜만에 봤는데 술은 한잔해야지, 정말 갈 거야?”

 “응, 다음에 마시자. 그 때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올게”


 케이는 카페를 나갔다. 태수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맥없이 남은 커피를 홀짝 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후, 태수는 더 이상 케이와 연락할 수 없었다. 항간에는 케이가 ‘외국으로 갔다’거나, ‘자살을 했다‘거나, ‘산 속에 들어갔다‘와 같은 무성한 소문으로만 나돌았다. 태수는 가끔 그날 그와 같이 앉아있었던 카페에 찾아 커피 두 잔을 시켜, 한 잔은 그의 자리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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