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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Jun 27. 2024

(단편소설) 계곡이야기(完)


 “야, 아직도 더 가야해?”    


 나는 무거운 배낭을 다시 고처잡고, 태수에게 불평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좀 만 힘내자”     


 태수는 그런 나를 독려하며, 묵묵히 산을 올랐다. 그러자 옆에 있던 영수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쉬었다가자 네가 조금만, 조금만, 이야기한 게 벌서 한 시간도 넘었어, 너만 아는 비밀 계곡이 정말 있기는 한 거야?”


 태수는 이번에는 짜증 섞인 투로 대답했다.     


 “너네 이따가 계곡 보고 놀라지나 말어,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서 매년 놀러왔던 곳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조금만 힘내자”     


 태수는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배낭을 담당하는 나는 죽을 맛이었다. 대학에서 보낸 첫 여름방학, 나는 아르바이트나 할 요량으로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았는데, 대학친구인 태수에게서 자신만 아는 계곡이 있는데 놀러갈 생각이 없냐고 제안 받아, 고민 끝에 오게 됐다. 그런데 4시 간 째 계곡은커녕 옹달샘도 보지 못한 채, 그저 산 만 오르는 중이다.      


 “어”     


 가장 선두에서 오르던 태수가 갑자기 멈추더니 큰 소리로 추임새를 넣었다. 나와 영수는 도착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산을 뛰어 올랐다. 그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바라 본 계곡은 4시간 동안의 산행의 짜증을 한 번에 가실만 큼 장관이었다. 계곡은 물이 맑아 속이 다 비칠 정도였고, 우측으로는 작은 폭포가 있어 물줄기가 시원함을 더했다. 계곡은 마치 콜로세움 안에 물이 있는 거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는 계곡 위 쪽 평평한 곳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짐을 풀고, 영수는 가방에서 꺼낸 수박과 참외를 계곡물에 담가두기 위해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 때, 여자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악”     


 나와 태수는 여자의 비명에 놀라 태수가 내려간 길로 따라 내려갔다. 그러자,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세 명의 여자가 막 계곡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와 태수 그리고 수박을 들고 있던 영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굳어버렸다. 여자들은 갑작스러운 남자들의 등장에 적지 않게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서로를 멀뚱히 바라만 보다. 그 침묵을 깬 것은 태수였다.     

 

 “너, 미진이 아니니?”


 그러자 상대 여자도 두 눈을 크게 뜨고 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태수를 보고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악? 태수오빠?”     


 태수는 입이 귀에 걸려 미진에게 다가가 악수를 했다. 미진도 태수가 오랜만에 반가웠는지 악수 하고는 껴안았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아직 그대로 서있었는데, 그 둘이 회포를 풀자 태수가 아차 싶었는지 다시 우리 쪽으로 와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계곡 아래에 우리 친가가 있었어, 그래서 매년 여름만 되면 아빠 따라서 이 계곡에 놀러올 수 있었던 거야, 내가 인사한 미진이는 나와 마찬가지로 친가가 이 쪽이고, 나랑 곧 잘 이 곳에 놀러오던 사이었어. 그 때 시골에는 딱히 내 또래 애들이 없어서 거의 미진이랑만 둘이 붙어 다니곤 했었지. 정말 오래전인데, 추억이다”     


 이제야 나와 영수는 이해를 했고, 서로가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자 웃기 시작했다. 태수와 미진은 각자의 친구들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영수도 그제야 자신이 무거운 수박을 계속 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수박을 계곡에 넣었다. 일단, 우리는 짐을 다 풀지 않았기 때문에 짐을 다 풀고 계곡으로 다시 내려오기로 하고, 여자들은 그 곳에서 바로 물놀이를 했다.     

 

 우리 여섯은 날이 완전히 저물 때 까지 물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슬슬 물이 차가워 질 때 하늘을 보니, 밝은 해가 붉게 물들었다. 태수의 제안으로 밖으로 나와 우리가 텐트를 설치한 야영지로 향했다. 여자들은 당일치기로 놀러왔으나, 우리가 텐트 안에서 재워준다고 하자, 우리와 같이 숙박하기로 일정을 변경했다. 저녁이 되고, 가지고 온 발열 그릇을 이용해 카레도 해먹고, 간단히 맥주도 마시며 저녁시간을 보냈다. 태수는 자신이 가져온 기타를 꺼내 포크송을 부르며, 분위기를 무르익게 했다. 우리는 빙 둘러앉아 중간에 조명을 두어, 낭만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모두 지쳐 여자들은 텐트로, 남자들은 그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산행은 고단했지만, 그 끝은 멋진 풍경과 즐거운 추억으로 채워 만족스러웠다. 하루의 끝을 별과 함께한다는 것이 20살 낭만과 딱 어울린다고 생각할 찰나 텐트 쪽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옆에서 누워 있던 영수를 흔들었다.     


 “영수야, 저기 텐트 좀 이상하게 흔들리는 거 같지 않냐?”

 “텐트?”     

 영수는 귀찮다는 듯이 말하며, 허리를 세워 텐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텐트의 윗 부분이 기괴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영수도 이상했는지 그 옆에 누워있는 태수를 깨웠다.      


 “태수야, 저기 텐트 좀 이상한데, 우리가 가봐야 할 것 같다”    

 

 태수도 아까의 영수와 마찬가지로 귀찮다는 듯이 일어나서 텐트를 확인했다. 태수가 텐트를 확인할 때에는 아까보다 더 기괴하게 텐트의 윗부분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누가 위에서 텐트의 윗부분을 치는 듯한 모양새였다. 우리가 멀찍이 걱정만 하고 있을 때, 텐트 안에서 여자애들 중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텐트는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와 영수, 태수는 일제히 일어나 텐트로 향했다. 나는 텐트 뒤편에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뒤로 향했고, 영수와 태수는 텐트 문을 열고, 안의 상황을 확인했다. 내가 텐트 뒤편을 확인했을 때, 작은 새끼곰이 앞발을 들어 텐트를 내리치고 있었다. 새끼곰을 자극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와 텐트 속에 있는 친구들에게 사실을 전달했다.      


 “야, 지금 밖에 새끼곰이 있어”     


 여자애들은 겁에 질려 당장 울음이라도 터트릴 분위기였다. 나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으로 갖다대며 말했다.     

 “쉿, 여기서 우리가 크게 놀라면 곰이 흥분해서 어떻게 할지 몰라, 그리고 새끼곰이 여기 있다는 것은 근처에 어미곰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니까 일단 텐트를 버리고 물가로 가자”     


 나는 침착하게 애들을 독려해서 텐트를 빠져나오게 했다. 그런데, 우리가 나오는 모습을 새끼곰이 본 것인지 갑자기 텐트를 흥분하며 치더니,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들린지 얼마 되지 않아 먼발치에서 쿵쾅거리는 어미곰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누구하나 할 것 없이 계곡으로 줄행랑을 쳤다. 다행히, 우리가 있던 곳에 멀지 않은 곳에 계곡 물로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모두 뛰어내렸다. 물은 차가웠지만, 더운 여름밤의 무더위 때문에 금새 몸은 적응했다. 다행히 모두 수영을 할 수 있어서 흩어지기로 했다. 나도 최대한 텐트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텐트와 반대방향으로 팔을 저었다. 계곡은 크지는 않았으나, 계곡 주변에 엄폐할 곳이 많았기 아무 곳이나 다는다면 일단 안도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그렇게 어디인지도 모르게 팔을 저으며 앞으로 가고 있는데, 여자애 한 명이 물에서 허우적 대는 것을 보았다.     


 “야, 괜찮아?”


 내 물음에 대답도 없이 그녀는 허우적거렸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진정시킨 뒤에 발을 저어 근처 폭포 뒤의 동굴로 향했다. 그녀를 동굴에 앉히자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괜찮아? 많이 놀랐지? 쟤들도 곧 흥미를 잃으면 갈거야. 여기서 조금 만 기다리자”


 그녀는 대답 없이 눈물만 훔쳤다. 내가 그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그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깨를 내주었다. 다행히 내 어깨에 기댄 그녀는 진정이 되었는지 곧 흐느낌을 멈추고는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맙기는 뭘, 그래도 내가 발견해서 다행이었어”

 “응, 너는 민혁이지?”

 “어, 너는 향숙이 맞지?”

 “응, 맞아. 생각해보니까 우리 둘이 오늘 처음 대화하는 것 같네. 아까 애들이랑 그렇게 떠들었는데도 말이야”

 “그랬나?”     


 그녀는 긴장이 풀렸는지 미소를 약간 머금었다. 그 와중에 폭포수의 물이 계속 우리 쪽으로 튀었다. 

     

 “앗 차거”     


 그녀는 폭포수를 맞고는 놀랐는지 내게 안겼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 그녀는 안아 주었다. 하지만 어색함에 침묵이 흘렀다.      


 “너는 어디사니?”


 그녀가 내게 물었다.     

 “나는 서울 OO동에 살아”

 “너도?”

 “응?”

 ‘나도 OO동 OO아파트에 살아“

 “정말이야? 우리 이웃사촌이었네”     


 내가 너스레를 떨자 그녀는 재밌었는지 아까보다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쉿! 곰 온다”     


 그녀는 그 모습도 재밌었는지 계속 꺄르르 거리며 웃었다.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곰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웃사촌인지도 모르고 지나갔겠다. 정말 독특한 인연이네” 

 “그러게”     


 나와 그녀는 조금 더 이야기를 했으나, 더 이상 곰이 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모든 긴장이 풀렸는지 앉은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눈을 뜬 것은 태수가 우리를 찾기 위해 목놓아 부르는 소리 때문이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그녀를 깨운 다음에 폭포동굴에서 나가서 태수를 불렀다.     


 “태수야”     


 큰소리로 태수를 부르자, 태수와 그 옆에 있던 영수까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너 괜찮아? 다친대는 없어?”

 “응 없어. 너네는 어디 숨어있었어?”

 “우리는 근처 풀숲에 있었지, 야 그런데 너 향숙이 못봤냐? 걔도 없어져가지고 지금 여자애들이 찾고 난리났어”


 그 때, 그녀가 동굴에서 나왔다. 그러자 태수와 영수는 황당하지만 안도한다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곰 피하는 줄 알았더니 연애를 하고 있었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살짝 입꼬리만 올려주었다. 태수는 여자애들 쪽으로 큰 소리로 말했다.      


 “야, 향숙이 찾았다. 곧 그 쪽으로 갈게”     


 향숙이는 부끄러웠는지 볼을 발갛게 하고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다행히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지는 않았다. 그저 내 주위를 날고 있는 새들만이 그 모습을 보고 지저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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