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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pr 13. 2023

호칭 유감

질서를 찾아야 한다

     

딸이 결혼하기 일주일쯤 전, 계촌법과 호칭법을 가르쳤다. 촌수 따지고 호칭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불평할 것 같은데,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알아듣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으나 일단은.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면 난감했을 텐데. 그걸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시댁 어른들을 아버님 어머님 이모님 등으로 지칭하는 걸 보면, 들은 대로 하는 것 같긴 하다. 


사위를 지칭할 때도 꼭 김 서방 또는 아범이라고 한다. 오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실제로 오빠도 아니니까. 네 살이나 어리니 말이다. 가끔 이름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 시어른들 앞에서도 그럴까 봐 기겁했다. 더구나 아이들이 크고 있는데. 솔직히 따지고 본다면 이름 부르는 게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우리의 호칭은 따로 있고 그걸 지켜왔지 않은가. 


호칭과 지칭은 다르다. 호칭은 어떤 대상을 부르는 것이고, 지칭은 어떤 대상을 가리켜 일컫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지칭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호칭이 되어버린 것도 있다. 한 예로, 고모나 이모는 지칭이었다. 호칭은 아주머니였고. 예전의 소설을 보면 이모나 고모가 아주머니로 불리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지칭이 호칭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지칭으로도 호칭으로도 쓴다. 나도 어렸을 적에 이모를 아줌마로 호칭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요즘엔 호칭의 질서가 흐트러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이야기하면 어느 시대 사람이냐는 말을 들을 게 뻔해서, 이 글을 시작해 놓은 지 꽤 되었는데, 마무리커녕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하루에 한두 줄 썼다가 지운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아무래도 마무릴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열었는데, 공연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또 망설여진다. 되든지 말든지 거침없이 쓰겠다는 호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리 작가라 해도 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나는 쟁점화되어 문제 야기하는 걸 꺼린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작가가 아직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으니 피곤한 일이 생기는 건 딱 질색이다. 안 그래도 겪은 게 많고 몸도 약해지는데 남과 부딪치는 게 좋을 리 없다.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분명히 호기가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자꾸 이렇게 꺼내보는 것 아닌가. 그러니 몇 마디라도 해야 한다. 남자는 아니지만 칼을 뺐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그냥 거둘 수 없지 않은가.  이렇게 새가슴이니 큰일을 할 수 있겠나, 이만큼에 와 있는 것도 대견하다면 대견한 일이다. 또 이렇게 핵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꾸 변죽만 울리고 있는 나다. 


사실 글을 쓸 때 지금처럼 변죽만 울리는 글은 안 쓰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도대체 주제가 무어야? 그걸 말하라고. 지금 이렇게 외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른다. 그래, 나는 요즘 안에서든 밖에서든 호칭이 바르지 않아 유감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거다. 호칭과 지칭이 뒤섞인 것은 문제 삼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이제 바로잡을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먼저 가정 내에서 가장 거슬리는 것은 남편을 ‘오빠’로 지칭하고 호칭하는 것이다. 연애할 때 그렇게 부른 습관 때문에 그렇겠지만 영 거슬린다. 본인의 오빠도 오빠고 남편도 오빠란 말인가. 심지어 인터넷상에서 젊은 여인들이 시아버지를 ‘샵쥐’라고 부른다던가. 직접 대놓고 부르는 것은 아니니 상관없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희화적으로 들린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아주 일부일 수 있지만.  


음식점에 갔을 때 직원을 ‘이모’로 호칭하는 것은 이제 말거리도 못된다. 어떤 이는 아주머니로 호칭했더니 기분 나빠하더라는 이야기가 있고, 아주머니보다 이모로 호칭했을 때, 더 친절하고 반찬도 더 나오는 상황을 방영해 보여주는 것도 본 적 있다. 요즘 아이들은 아저씨 아주머니에 대한 호칭이 거의 ‘삼촌’과 ‘이모’다. 친밀감이 드는 호칭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 삼촌과 이모만이 가질 수 있는 호칭인 고유명사를, 보통명사화한 것이 나는 떨떠름하다. 삼촌과 이모가 얼마나 개인에게 특별한 존재인데. 


요즘 가족 관계 속에서 이모, 고모, 삼촌 호칭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자녀를 하나만 낳든지 아예 낳지 않고 있으니. 그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그렇게 고유명사를 보통명사화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참으로 선견지명을 가진 것 아닌가. 내가 왈가왈부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우리 집안도 당숙을 ‘큰아빠’와 ‘작은아빠’로 호칭하고 있으니, 그것도 그런 의미로 본다면 문제 삼을 게 못된다. 내가 몇 번 교정해 주었지만 아이들은 ‘아저씨’나 ‘당숙어른’이 어색해 부르지 않는다. 


학교에 있을 적에도 그랬다. 교수는 격식체 지칭 내지 호칭이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일컫는. 가르침을 받는 학생은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게 맞다. 초중고 때 선생님을 ‘교사님’으로 부른 적 있던가. 대학의 선생님도 ‘교수님’으로 부르는 게 맞지 않다. 모두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게 맞다. 물론 사회적 지칭으로는 교사 또는 교수다. 그래서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은 격식체로 불러도 무방하다. 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으로 부르는 게 맞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학생들은 선생님 아 아, 교수님 하며 스스로 교정한다. 도저히 바로잡을 수 없어 나중에는 그냥 두고 말았다. 


이제 호칭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래도 유감은 유감이다. 사부인끼리 언니 동생 하는 경우도 봤으니까. 처음엔 무척 거슬리고 이상했는데, 자꾸 들으니 정감 있게 들리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유감이라는 것은 이성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일까. 나도 이제 뒤죽박죽이 되는 것 같다. 따지다 공연히 ‘꼰대’란 말 듣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그냥 따라가는 게 좋은 건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유감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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