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해소
웬일일까. 아들에게 친척의 결혼식에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더니, 선뜻 가겠단다. 의아했다. 내게 잘 보일 일이 혹시 있는 걸까. 순순히 가겠다는 게 이상했다. “정말?” 뜨악한 눈으로 봤다. “네에.” 됐다. 더 물었다가 또 안 간다고 할 수 있으니까. 집안 대소사에 아들도 함께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 지 좀 되었다.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나중에 친척 아무도 모를지 모른다. 또 먼 거리를 혼자 다녀오기 지루할 것 같아서다.
마흔두 살짜리 아들을 결혼기피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볼 때 그랬다. 병역기피자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결혼기피자라는 말은 난생처음 써본다. 아들은 집안 대소사에 참여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으레 하는, 언제 결혼하느냐, 여자 친구는 있느냐, 결혼 준비는 됐느냐 등의 질문 때문이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싫어하는 빛이 얼굴에 금세 나타나 민망할 정도다. 오랜만에 만나니까 별 할 말이 없어 그냥 하는 말일 수 있는데. 그걸 알기에 십여 년 동안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간 맞추기도 힘들었지만.
슬쩍 던져본 말에 어쩐 일로 흔쾌히 대답을 했을까. 철이 든 걸까. 늙어가는 어미가 혼자 운전하고 가는 게 안쓰러운 걸까. 졸음운전 때문에 걱정돼서일까. 그 속을 알 수는 없었다. 어쨌든 함께 가겠다고 하는 것만 흐뭇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누구의 결혼식이며, 우리와 어떤 사이인지, 참석해야 하는 이유만 설명했다. 하나 곁들인 것은 근처에 외가가 있으니 돌아오는 길에 외할머니를 뵙고 오자고 했다. 아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결혼식장에서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결혼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요즘 어른들의 의식도 달라진 듯했다. 얼마나 다행인가. 가끔 아들의 인상을 살폈다. 괜찮았다. 집안 어른을 모처럼 만나 인사하고 관계도 익혔다. 결혼식을 지켜보는 아들의 모습은 재밌어하는 빛이 역력했다. “결혼식 재밌니?” 아들이 싱긋 웃었다. “너도 경험해 봐. 실제는 더 괜찮을 수 있어.” 또 싱긋 웃었다. 정색하지 않는 게 신기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친정에 들러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도 아들에게 결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에게만 살며시 물으셨다. 아직 색싯감이 없느냐고. 나는 아들이 들을까 봐 쉿! 하며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어머니도 눈치를 채고 더 이상 말하지 않으셨다. 그저 아들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사랑스러워하셨다. 아들도 어머니를 몇 번이나 포옹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긴 포옹을 또 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사랑해요.”라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었다. 결혼식장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은근슬쩍. “넌 어디서 결혼하고 싶니? 여전히 교우회관이야?” 아들은 전에 말했었다. 결혼을 한다면 교우회관이라고. 그 말을 한 게 이십 대 중반이었다.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요. 오시는 분들 편의도 생각해야죠.”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해놓고도 말문이 막혔다. 결혼기피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혼할 생각이 있다는 말 아닌가 해서. 모른 척하고 또 말을 이었다. “교우회관도 좋을 것 같아. 추억 서린 모교 안의 장소니까.”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다. 내 아들이 결혼기피자는 아닌 듯해서다. 고루한지 모르겠으나 나는 결혼을 장려하는 쪽에 속한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다 생략하고, 그냥 그렇다. 공연히 이 문제로 쟁점화하고 싶진 않다. 아들의 속내를 조금 알 것 같다. 아기를 좋아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결혼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직설적으로 묻지 않았다. 아들이 결혼기피자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평안하게 했다.
반제터널을 지날 때였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겨우 거기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길이 막혔다. “엄마, 노래 한 곡 불러드릴까요?” 슬슬 잠이 오려고 해서 휴게소에 들러야 할까 고민할 즈음이었다. “오! 그래, 좋지.” 아들이 노래를 했다. 어느 성악가보다 발라드가수보다 더 잘했다.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결혼식 때 사회는 누구에게 부탁할 거냐고 물었다. 뜬금없는 물음에 아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자기라고. “뭐어? 스스로 사회를 보겠다고?” 그렇단다. 그럼 축가는 누구에게 부탁할 거냐고 또 물었다. “당연히 저죠.” 황당하다 못해 장난으로 들렸다.
아들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진지했다. 결혼식 사회도 자기가 보면서 하고, 축가도 스스로 부르겠다니, 어이없었다. 어떤 곡으로 부를 거냐는 물음에, 한 번 해보겠단다. 고개를 끄덕였다. MR을 켰고, 전주가 흘러나왔다. 아들은 본인의 결혼식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다. 본래 아들은 어렸을 적부터 노래를 잘했다. 음악선생님이 음대에 가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목소리는 아직도 미성이었다. ‘결혼 서약’이라는 곡이란다. 아름다웠다, 가사도 목소리도.
졸음이 다 달아났다. 오산쯤 지나자 정체가 풀리기 시작했다. 다시 물었다. 결혼할 생각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라고. 아들은 웃기만 했다. 그래도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걱정했던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도 들었다.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확실한데, 무슨 결혼기피자겠는가. 단지 인연을 못 만났을 뿐이다. 그 인연, 이제 천지사방에 소문내서 찾아봐야겠다. 우리 아들은 결혼기피자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결혼식에 함께 가길 참으로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