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저녁 늦게 퇴근한 아들이 말한다. 우리 통화 시간이 너무 긴듯하다고. 그건 그렇다. 버스 탔다고, 학원에 도착했다고, 수업 시작한다고, 끝났다고, 지하철 타고 작업실 간다고, 도시락 먹었다고, 잠시 산책한다고, 한 시간 후에 퇴근한다고, 등등. 퇴근해 오면서도 몇 번이나. 누가 원했나, 강요했나, 바라기라도 했나. 모두 자발적 아닌가. 통화가 잦은 것 이제 알았다는 게 우습다.
“응, 길어. 전화 좀 자제해. 일일이 보고할 필요 없어. 나도 바쁘거든. 네가 전화할까 봐서 움직일 때마다 전화기 들고 다녀. 언제 깨닫나 했더니, 두 달 반 만에 알아챘네. 이제 꼭 필요할 때만 해. 나도 바라던 바야. 마마보이 아니고, 결정 장애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보호가 필요한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네가 섭섭해할까 봐 전화 자주 하지 말라는 말 못 했어. 이제부터 하루에 두 번 정도만 하든지. 아니, 아예 안 해도 괜찮아. 알았지? 문제가 생겼을 적엔 즉각 전화해도 돼.”
따발총 쏘듯 다다다다 쏟아내는 내 말에 아들은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전화 피곤했느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했다. 물론 아니다. 아들의 전화가 피곤할 일 있을까. 강의 마치고 나면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을 적 있다. 즉각 전화한다. 그냥 했는데 엄마가 안 받아 강의 중인가 보다 하고 끊었단다. 강의 중에 무음으로 해놓고 풀지 않은 적도 있다. 톡이 몇 통 와 있고, 전화가 세 통이나 와 있었다. 아들이었다. 하도 연락이 안 돼 걱정돼서 그랬단다. 이해한다. 나 같아도 그랬을 테니까.
우리는 서로 생각하는 게 애틋하다. 전에도 이랬던가. 아니었던 듯하다. 아들이 더한 것 같다. 그건 십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인 듯하다. 어미인 나야 이때나 저때나 거의 비슷하다. 자식은 부모의 먹을 것과 입을 것 걱정을 하지만 부모는 오직 자식의 몸을 걱정한다는 말이 있잖은가. 눈앞에서 보고 있어야 안심되는 건 어리나 크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매일 수십 번씩 전화한다 해서 마다하겠는가.
아들은 나가서 마음껏 살다 들어오니, 놓친 게 많다고 아쉬워한다. 진즉에 들어왔으면, 아예 나가지 않고 함께 살았더라면, 훨씬 모든 게 나았을 거란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고 미소 지을 뿐이다. 속으론, 이 한심한 인사야, 그걸 이제 알았냐! 하면서. 겉으론 절대 표시 내지 않는다. 굳이 지난 일로 잘난 체하고 싶지 않고, 지금 상황을 공치사하고 싶지도 않다. 자존감 훼손시키고 싶지도 않다. 어미니까.
이게 작전 아닐까, 이러다 아들은 캥거루가 되는 것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만다. 어미가 아들을 그리 모르진 않으므로. 유난히 감성적이고 감정의 결이 섬세한 아들이니까, 함께 사는 나에게 신경 쓰는 것이리라. 이런 정도의 배려와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아이가 왜 여자 친구를 사귀지 않는 걸까. 더구나 예술하는 사람이. 내게 하는 것의 반만 해도 이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일까.
“엄마, 하실 말씀 더 있으세요? 제가 전화통화가 너무 잦다고 해서 섭섭하세요? 그게 다 제가 하는 거잖아요. 엄마는 용건 없으면 안 하시고요. 집에 와서 대화하면 되는데, 자꾸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물감 칠해놓고 마르기 기다리며 하기도 하고, 밥 먹고 나른하면 하고 말이에요.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하는 느낌이 들어 엄마가 귀찮으시겠다는 생각도 들어서요. 이해하시죠?”
아들은 길게 변명했다. 그럴 일 전혀 없는데, 왜 그럴까. 혹시 내 눈치를 보는 것인가. 내게 얹혀산다고 생각하는 걸까. 확실히 따로 살다 합가 하면 쓸데없는 생각도 드는 모양이다. 그만큼 서로 마음을 살피는 것이리라. 나쁘지 않다. 이렇게 마음도 계획도 조율하는 게 좋다.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또 따질 일이 있으면 그것 역시 필요하면 할 수 있다고 본다.
가만히 다가가 아들을 안아주었다. “여긴 네 집이야. 나는 네 엄마고. 아무 걱정도 눈치도 볼 것 없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는 다 좋아. 전화해도 좋고, 안 해도 좋아.” 아들도 나를 꼭 안았다. 땀 냄새가 풀풀 났다. 등을 탁 쳤다. “얼른 씻고 자! 늦었어.” 아들이 씩 웃으며 욕실로 향했다.
집에 오길 잘했다고 말하는 아들이 옆에 있고, 전화 자주 하는 아들이 저녁마다 집으로 들어오니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다. 씻고 나온 아들에게 그 말을 해주었다. 아들이 다시 또 나를 포옹했다. 아무리 일인 가구 시대라 해도 가족은 함께 사는 게 좋은 듯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또 가족끼리 자주 통화하는 것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