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무조건 응원해야 한다. 새로운 건 좋은 거니까. 과연 그럴까. 내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아들이 수입지출 관리를 부탁하며 카드를 건네고 며칠이 지난 후,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며 여기저기 입시 학원에 채용원서를 넣었다. 말려야 할까, 그냥 두어야 할까, 갈등이 일었다. 큰 그림을 그리며 입시 강사를 그만둔 것을 아는데, 다시 그곳에 한쪽 발을 담가야겠다니. 말릴 수도 응원할 수도 없는 새로운 출발 계획.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고민 끝에 지켜보기로 했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 된, 마흔두 살의 아들. 돌아온 탕자는 아니나 십여 년 만에 어미 품으로 들어온 아들 아닌가. 성경의 한 일화처럼 금반지 끼우고 동네잔치를 벌이진 못할망정, 야박하게 하긴 싫었다. 생활비를 내지 않을 때 독촉한 적 없고, 물어본 적도 없다. 카드 건넬 때 보니 1년 치 넘게 입금하지 않았던가. 알아서 하도록 당분간 지켜보는 게 나을 듯했다.
마음은 불편하다. 입시 지도 이제 하지 마! 엄마가 후원할게. 한마디로 일갈하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 혹시 의지할까 저어 되고, 삶을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게 옳기 때문이다. 또 언제까지나 그럴 수 없는 일이고. 작업만 하고 싶은 아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외면하는 모진 어미 같고,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하는 어미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아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도 갈등이 인다.
하고 있는 일들은 몇 개 있지만 모두 고정 수입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일이 끝나야 들어온다. 중도금으로 중간중간 정산을 받는 게 아들은 시답잖은 모양이다. 거의 작업만 하면서 살아온 게 2년 가까이 되었으니까 통장 잔고가 빈 것은 당연지사. 전업 작가로 사는 게 왜 힘든지 알겠단다. “결혼 안 하길 얼마나 잘했니. 안 그러면 이미 그림 포기했어야 할 확률이 높아.” 어미가 하는 말이 겨우 이거라니. 그 말에 큰소리로 웃는 아들, 안쓰럽다.
후원할 테니 다음 전시회 준비하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참았다. 나약한 아들로 만드는 길이 될지 몰라. 아니야, 책도 출간하고 나서 바로 후속 작품이 나와야 좋은데, 전시회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닐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수 있는데, 과연 맞을까. 이제 스스로 하도록 힘을 길러주는 게 나을 거야. 쥐꼬리만큼 있는 것, 아끼지 말고 아들에게 투자할까. 아니야, 그랬다간 나도 저도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 아,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은 오락가락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단다. 그 유명한 학원가에 있는 입시학원. 집에서도 가까우니, 오전에만 입시지도를 하는 게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오후에는 작업실에서 본래 하던 것을 이어가겠다며. 그건 다음 전시회 준비와 영화사 일이다. 그 일들을 다 해낼 수 있을까 염려되었다. 걱정 말란다. 모두 좋아하는 그림과 관련된 일이니 할 수 있다며. 내가 할 말이 무엇이 있으랴. 알아서 해, 네 일이니까. 겨우 그 말이었다.
면접 보러 가던 날, 이런저런 유의점을 말했다. 아들이 엄마 학생 아니라며 웃었다. 누가 보면 유명 대기업에라도 들어가는 줄 알 것 같다고도 했다. 그쪽 일을 오래 해온 아들인데, 노파심이라는 것 안다. 그렇게라도 관심을 보이는 건 미안하기 때문이리라. 면접 마친 후 연락이 왔다. 여러 가지 조건이 흡족하다며, 바로 출근하기로 했단다. 오랜만에 학생들을 만난다는 게 설렌다고 했다. 그 마음 알 것 같았다.
첫 출근하던 어제,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 책임감 강한 아들. 옷차림과 외모에 신경을 쓰는 모습, 직장인다웠다. 불편한 내 마음과 달리, 기분 좋은 듯했다. “좋으냐? 학원 강의 다시 안 할 것 같더니.” 약간 빈정대는 투로 말하는 건 불편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다. 아들이 웃었다. “아이, 그럼요. 애들은 예쁘잖아요.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일찍 움직이면 꽉 찬 하루를 보낼 수 있잖아요. 기대돼요.” 천생 교육자 같은 모습이다. 그 일에 의미를 두던 아들이기도 하니까.
오늘 아침 출근 이틀째다. 오전 9시에 시작되는 수업을 하기 위해, 이른 아침을 먹으며 아들이 말했다. “생각해 보니, 엄마 말씀이 맞아요.”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21세기엔 직업을 여러 개 갖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내가 늘 했던 말을 이제 알아듣다니. 그나마 지금이라도 마음에 둔 게 다행스러웠다. “다 할 거예요. 그림도, 학생 지도도, 강연도, 영화사 일도, 글쓰기도요.” 아들은 약간 들뜬 듯했다. 일찍 일어나 출근해 수업하고, 오후에 작업실로 가서 예정된 작업을 하는 게 좋단다.
그럼 되었다. 자기의 삶은 스스로 개척하며 사는 게 맞다. 언제까지 부모가 도와줄 수 없다. 스스로 위무한다. 적어도 비빌 언덕이 되는 것까지 해주고 싶어 아들의 귀가를 받아들인 건데, 잘했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두 끼 도시락 싸고, 건강식품과 영양제 챙겨 먹이고, 포옹한다. “아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하게. 새로운 출발, 응원할게.” 결국, 나는 응원하고 말았다. 자식에게 늘 응원이 필요하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이 엇나가는 것만 아니면.
승강기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아들이 또 웃는다. “저녁에 봬요옹.” 애교까지 보이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거실 유리창을 두드린다. 여름도 이젠 다 간 모양이다. 아들의 번민과 힘듦도 다 가고, 새로운 날이 도래하기를 바라며 오늘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