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강의에 들어가기 전, 나는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놓는다. 진동도 아니다. 드르르 울리는 소리도 수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습관이다. 문제는 강의를 마치고도 음소거 해제를 하지 않을 때 있다는 거다. 그날도 그랬다.
아들로부터 전화가 다섯 통이 와 있었다. 거기다 문자까지 한 통. 애타게 어미의 안위를 걱정하는 문자였다. 왜 이렇게 오버야! 무슨 일 있나,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 한숨을 휴 내쉰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이 되었단다. 아들은 놀란듯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놀랐어? 음소거 해제를 안 해서 그렇다니까.” 아들의 가슴이 필요이상으로 뛰는 것 같아 걱정될 정도였다.
전화를 무척이나 잘 받는 나다. 부재중이 찍혔으면 시간이 되는 대로 전화를 거니까. 예전부터 전화인심 좋다는 소릴 듣고 살 정도였다. 그런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아들은 애가 탔던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강의 마치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때 차 앞 계기판에 공기압 조화가 맞지 않을 때 들어오는 불빛이 보였다. 무심코 말했다. 바퀴 공기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아들은 그 말을 과장해서 들었나 보다. 공기압 때문에 운행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으로.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 차 전화를 몇 번씩 해도 안 받으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단다. 꼭 무슨 일이 생긴 것처럼 불안해졌다고. 사람이 하는 걱정의 96%가 쓸데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불안해 견딜 수 없어, 다섯 번이나 전화를 했다고.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솔직히 미안한 마음까지 아니었다. 그냥 그럴 수 있겠구나 싶은 정도. 놀라서 울먹이기까지 하니 달래줘야 했다. 하여간 ‘오버쟁이’ 아들이다. 감성적이어서 그런지, 그만큼 어미를 생각해서 그런지. 아들은 한동안 진정하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든든해졌다.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때문일까. 아들이 저렇게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서일까.
내 삶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를 혼자 걱정하고 혼자 결정했으며 혼자 해결하며 살았다. 남편은 온건하고 수동적이며 매사 천하태평인 사람이다. 아들이 남편을 닮지 않았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모두 장단점은 있다. 아무튼. 아들이 나를 걱정했다는 게 기꺼웠다. 지극히 주도적 삶을 사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속성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 말이다.
그날 아들은 집에 들어오기까지 다섯 번이나 전화를 했다. 퇴근 한 시간 전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오버하지 마! 엄마 아무 일 없어,라고 소리쳤다. 아들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순간적으로 별 생각이 다 나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단다. 사고로 이어진 게 아닌가 비약되었다고. 요즘 짬짬이 소설도 쓴다더니, 뻥쟁이 다 되었다며 웃었다. 소설가를 뻥쟁이라고 하지 않던가. 플롯을 구성하기 위해 하도 얽어 짜니까.
집에 들어온 아들이 포옹했다. “엄마, 진짜 놀랐어요.”라면서. “걱정 마! 천년만년 살 테니까. 이 오버쟁이야!” 아들의 등을 도닥여주며 말했다. 그게 부모자식 간의 정인 듯하다. 떨어져 살 때 알지 못했던 그 정을 이제 느낀다. 서로 부비고 살아야 미운 정 고운 정 든다는 게 맞는 말이다. 아들은 포옹을 풀고 씻으러 들어갔다. 씩 웃으며. 스스로 생각해도 오버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다.
인간관계에서 때론 오버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사람을 만날 때 반색하고, 표현도 크게 하는 것, 나쁘지 않다. 속 다르고 겉 다른 거짓이 아니라, 과장돼 보이는 표현 정도라면. 그것도 정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괜한 걱정으로 마음 졸이고 쓸데없는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아들은 확실히 오버했다. 그 바탕에는 어미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쯤 나도 안다. 그래서 든든하게 느꼈던 것이리라.
씻고 나온 아들은 다시 또 포옹했다. 아직도 걱정했던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며. 걱정도 오버, 포옹도 오버다. 우리 아들은 오버쟁이다. “이제 전화 음소거 해제 확실하게 할 테니, 걱정 그만해.” 아들이 씩 웃었다. 나도 빙긋 웃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뿌옇게 밤하늘을 덮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