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소망, 그거 하나

소망

by 최명숙


그렇다. 이건 시기와 질투와 부러움과 질시와 얄미움 또 그 외의 모든 감정이 뒤범벅돼 비벼진 미묘한 감정이다. 아들이 후배 결혼식에 간다고 이발을 하고, 흰색 와이셔츠를 사며 설레발을 칠 때, 느끼는 그 감정 말이다. 이런 덜 떨어진 놈. 남 장가가는데 뭐 그렇게 들떠서 난리야! 대리만족이니?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도 속으로만 웅얼댔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남의 아들이지만 나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전혀 모르는 누가 결혼한대도 나는 무조건 축하할 거다.


한 달 전부터 아들은 입만 열면 후배 결혼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어머! 잘됐다. 그 친구는 차아암, 효자구나.” 내 말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모르쇠로 나가는 건지, 이 아들은 아니 세입자는 싱글벙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꼭 자기가 장가가는 것인 냥 행복해했다. 그날을 위해 준비하는 신랑처럼, 모든 일정을 후배 결혼식에 맞춰 짰다. 그래, 후배가 결혼하니까 약간 들뜰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고 특강 제의 거절, 온이들 육아조력도 거절할 정도인가. 그래, 그것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저 싱글벙글은 뭐란 말인가. 이해불가.


내가 결혼할 때 내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을 반대했다. 내 결혼인데 지들이 왜 반대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도 반대하지 않는 걸. 지금 생각하니 갑자기 우습기만 하다. 불현듯 물어보고 싶다, 그 이유를. 아무튼 모두 왜 결혼하느냐고, 하지 말라고, 말렸다. 내 남편을 본 친구나 안 본 친구나 모두 그랬다. 그래도 막상 결혼식 날엔 스무 명 가까운 친구들이 몰려왔다. 울며불며 시집가지 말라고 말리던 친구까지 왔다. 모두 활짝 웃으며.


그랬던 내 친구들과 달리, 아들은 후배 결혼 소식에 들떠 있었다. 심그렁 하거나, 마지못해 참석할까 말까 갈등할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면, 저 예술가는, 그래, 아들도 말고 세입자도 말고 지가 스스로 예술가라고 하니까 그렇게 불러주자.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저 예술가는 늘 그랬다. 친구나 선후배 결혼식에 관심이 많았다. 떨어져 살 때도 내게 전화로 알려주곤 했으니까. 그걸 보면 페르소나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제권을 진즉에 내게 맡긴 그 예술가는 후배 결혼을 앞두고, 와이셔츠 산다고 얼마, 이발한다고 얼마, 비비크림 산다고 얼마, 선크림 산다고 얼마, 눈만 뜨면 요구했다. 경제권 도로 가져가라고 소리쳤다. 도리질. 싫단다. 아무튼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장만하고 준비했다. 축의금까지. 봉투에 이름을 써서 건네는 것도 내가 했다. 아들의 흐뭇해하는 표정엔 진심으로 후배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 순수한 마음을 읽으니 내 속에서도 서서히 열불이 식기 시작했다. 어찌 그 마음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결혼식 날 아침부터 아들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새로 산 와이셔츠와 양복을 입었다. 무스를 발라 손질한 머리와 썩 어울렸다. 그대로 본인이 결혼해도 될 복장이고 얼굴이다. 집에 온 후 10kg 이상 감량한 체중 덕분에 타이트하던 양복이 헐렁했다. 선크림을 바르고 비비크림까지 살짝 바른 얼굴은 살아난 턱 선 덕분에 더 빛이 났다. 저 인물을 해가지고, 장가도 못 가는 덜 떨어진 놈, 아니 예술가.


“엄마, 어때요?” 아들이 묻는다. “뭐, 그냥. 괜찮은 듯.” 냉소적인 내 말에도 그 예술가는 싱글벙글.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옷이 크죠?” 스스로 봐도 흐뭇한 모양이다. 역시,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다. “아, 됐다고. 오늘 신부 친구 중에 마땅한 사람 있나 잘 살펴봐.” 결국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하하하…….” 아들이 웃어제친다. 웃긴, 그럴 속셈이 있었던 건가. 들켰냐고 농담했더니, 아들은 절대 그럴 일 없단다. 후배 체면을 봐서 깔끔하게 차리고 가는 것뿐이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알았다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이제 저 인간의, 아들의, 예술가의, 세입자의 인생에 간여하지 않으리라.


저녁에 들어온 아들은 여전히 싱글벙글했다. 뭔가 감지되는 촉이 왔다. 혹시. 무관심하려던 마음을 다시 열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신부 친구들 중 눈의 띄는 아가씨가 있더냐고. 아들은 들은 척 않고, 옷 갈아입을 거라며 방문을 닫았다. 방문에 대고 주먹질을 했다. 소심한, 지극히 소심한 분노표출이다. 등이라도 한 대 후려칠걸. 그 있잖은가. 친구 결혼식에서 만난 신부 친구와 인연이 되어 결혼했다는 사람. 비약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아들은 여전히 싱글벙글. 아, 저 싱글벙글 표정이나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어미 속에서 열불 나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즐거워해도 되는 걸까. “엄마, 아유, 신부가 엄청 예뻐요. 그 동생 장가 잘 가는 것 같아요.” 거기다 한 술 더 떴다. “예쁘면 다냐? 속을 잘 써야지. 신부 예쁜 거랑 너와 무슨 상관인데. 됐어! 그만 얘기해.” 톡 쏴 부쳤다. 그래도 아들은 여전히 싱글벙글. “아 쫌! 그만 싱글벙글해. 네가 장가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도 좋으냐!” 소리쳤다. 아들은, 아니 예술가는 큰소리로 웃었다.


서재로 들어가는 내 뒤에 대고 한마디 했다. “엄마, 그 친구가 신혼여행 다녀와서 연락한댔어요. 신부 친구 중에 소개할 사람 있다고요.” 지금까지 못마땅해한 것이 민망해서 더 묻지 못했다. 슬며시 나오는 웃음을 어쩌지 못해 간신히 참았다. 그게 소개팅으로 이어질지 어쩔지 모르겠다. 누가 그랬다. 결혼하면 걱정거리 하나 더 생기는 거라고. 그래도 나는 우리 아들이 결혼하기를 바란다. 현재 소망은 그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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