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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20. 2024

가슴으로 낳기, 그 숭고한

입양



나도 자녀 입양을 깊이 생각해 본 적 있다.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고 싶었는데, 솔직히 여러 여건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어느 정도 가정이 안정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입양 이야기를 꺼냈다. 둘 다 그러자고 했다. 다행히 아들딸은 순하고 성격이 좋아 큰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때 우리 나이 사십 대 초반과 중반이었다. 마침 방송에서 해외 입양아에 대한 뉴스가 자주 흘러나왔다. 저 아기들을 우리나라에서 키울 수 없다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웬만한 가정에서 한 명씩만 맡아 키워도 저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우리가 중진국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가고 있다고 떠들면서, 이 땅에서 태어난 생명을 타국으로 보낸다는 게 속상했다. 낯설고 물선 저 타국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까 걱정도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 명 책임지자, 아이를 많이 낳으려고 생각했던 우리가 아닌가. 따지고 보면 나도 단순하게 생각했던 듯하다. 


남편은 아이를 좋아했다. 나는 좋아하긴 해도 엄격한 면이 있는 반면, 남편은 무골호인. 온 동네 아이들의 친구가 될 정도였다. 사느라고 바빠 아들딸 하나씩 둘만 낳고 만 게 늘 아쉬웠는데 입양해서 키우면 내 자식 아닌가 싶었다. 남편과 나는 들떴다. 먼저 여자아이 한 명을 입양하자고 했다. 그때 나도 일하고 공부하느라 하루가 바쁘고 여유 없었다. 


우리가 입양기관에 방문해서 일을 진행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당시만 해도 어리석고 생각이 부족했다. 잘 알만한 사람에게 의사를 밝히니까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이유는 우리가 조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집과 재산이 없기 때문에. 그때 우리는 전세 살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실망했다. 할 수 없이 집 마련부터 하자며, 입양을 그 후로 미루었다. 


내 집 마련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집이 없다고 입양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구시렁댔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듯했다. 가정 형편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지 안 그러면 아이가 평안하게 살 수 없겠다 싶었다. 집을 소유해야 되는지,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기관에서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한 적 없으니까. 지극히 상식적이고 맞는 말 같아서, 지인의 말만 듣고 내 집 마련 후에 입양을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모양이다. 마음먹었을 때 결정해야지 미루다 보면 무슨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요원하기만 했다. 다락같이 오르는 집값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집 마련의 꿈은 멀어져만 가고 그러는 새 몇 년 세월이 그냥 흘러가버렸다. 속절없이. 나이가 많아도 입양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는 모든 여건이 나빠만 갔다. 집이 없고 나이는 많아졌으니까.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아프게 되었다.  


나는 사십 대 중반이었고 남편은 막 쉰 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 불쑥 든 생각은 이제 입양이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론 입양하지 않은 게 다행스러웠다. 남편의 발병으로 살림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병원비와 아들딸 학비 조달이 힘들었다. 얼마간 해놓은 저축은 몇 달 만에 바닥이 났고, 하루하루 빚지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게 기적이었다. 더구나 아픈 사람을 간호하느라 일을 마음껏 할 수도 없었다. 온 식구가 매달려 어려움을 견디느라 허덕댔다. 


그런 상황에 입양한 아이까지 있었다면 그 아이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싶다. 집이 없어 다음으로 미루기를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편의 병은 그 후로도 십여 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 후에 기적적으로 집을 마련하게 되었지만 입양 여건은 더 나빠졌다. 내 나이가 오십 대 중반이 되었고, 부부가 건강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었으니까.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막연히 아이들 좋아해서 그랬을까. 해외로 입양되는 우리 아기들을 우리가 키워야 한다는 단순한 책임감으로 그랬을까. 잘 키울 자신도 없으면서 감상적인 내 정서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이행하지 못했다. 뜨거운 사랑과 가슴을 갖고 있었다면 어떻게라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만큼의 역량이 되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기들 입양하여 사랑으로 키우는 부모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다. 가슴으로 아기를 낳는 그 숭고한 일을,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생각한 적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마도 엉뚱함의 극치를 보인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니었을까. 진정으로 원하긴 했으나 인연이 닿지 않은 것일까. 좋은 어미가 될 만한 사람이 못 되는걸 신이 아시고 허락하지 않은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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