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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06. 2022

계좌 이체, 아직 편치 않다

복잡하게 살기

"코로나 시대에 뭘 직접 가려고 해. 난 계좌 이체했어. 계좌번호 알려줄까?"

고향 친구 A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묻는 나에게, B가 하는 말이었다.

"아니야, 가서 문상해야지. 어서 알려줘."

B가 알려준 곳은 전에 한두 번 가본 고향의 장례식장이었다.


늦가을 오후 해는 짧았다. 세 시경에 출발했는데, 도착 즈음에는 벌써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어둑신한 고향의 대지. 하늘엔 어느새 달이 돋아났다. 고속도로 주변 벚나무 단풍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자연의 이치가 그런 거겠지. 사람도 자연의 일부니까. 저렇듯 가는 것이리라. 태어나면 가야 하는 게 철칙이지만 영원한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삼인칭의 누군가와 하는 이별일지라도.


A의 아버지를 오며 가며 몇 번 뵌 적이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 전. 아마도 40~50년 되었을 것 같다. 어렴풋이 기억날 듯 말 듯한 분이다. A와 특별히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고향 친구들이 대부분 다 그러하듯 그만큼의 거리에 있는 친구다. 그러니 그의 아버지를 뵌 적이 까마득히 오래되었다. 그것도 지나치면서 어렴풋이 A의 아버지라고 안 것뿐이지, 직접 인사를 드린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직접 찾아 문상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라기보다, 친구를 찾아보고 위로하는 것이므로.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을 때,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걸 안다. 그건 친소관계와 상관없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직접 문상하는 쪽을 택한다.  


계좌이체로 조위금을 보낸다는 게 나는 마뜩잖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웬만해서 그런 식으로 경조사를 챙기지 않는다.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직접 가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는 나다. 특히 장례식에는 꼭 참석하자는 주의다. 그건 복잡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내가 정한 삶의 방식이다. 결혼식에는 부득이 참석 못 할 경우 축하금을 다른 사람 편에 보내거나 미리 또는 나중에 전달한다. 계좌 이체를 한 적은 한두 번밖에 없다.


이런 나에게 왜 그리 복잡하게 사느냐는 사람들이 꽤 있다. 계좌 이체가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누구에게 부탁할 경우, 받은 쪽에서 연락이 안 오면, 혹시 누락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번거롭게 하는 것도 맞다. 그러니 계좌 이체가 편하다는 말 이해된다.


오고 가는 데 다섯 시간 족히 걸렸다. A를 만나본 시간은 30분 정도다. 문상하고 자리에 앉아 간단하게 식사했다.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혼자서. 간간히 A가 내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마주한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실용적인 면에서 보면 나의 행동이 어리석은 것 맞다. 그래도 나는 계좌 이체가 아직 편치 않다.


돌아오는 길은 밀렸다. 캄캄한 도로에 늘어선 많은 차들. 눈이 약간 피곤했고, B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 삶의 방식이  아직은 어리석게 생각되지 않았다. 조금 전, 나를 보고 놀라던 A의 벌겋게 충혈된 눈 속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떠올랐다.


밤 운전으로 눈은 피곤해도 마음은 가벼웠다. 구십 세에 자는 듯이 가셨다는 A의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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