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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Oct 04. 2023

재개발, 동전의 양면

개발은 다 좋은 것인가

        

아파트 건물이 하루가 다르게 높이 올라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벌겋게 드러난 맨살 같은 땅에, 포클레인이 입을 떡 벌리고 무어든 다 삼킬 것 같은 기세였다. 20여 년 동안 살던 곳 일대의 재개발 풍경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개발은 우리에게 발전이라는 미명으로, 재개발은 현대화라는 더 나은 발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화되면 생활이 전보다 편리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삶도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재개발이 동전의 양면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전에 살던 곳은 철거민들이 집단 이주해 둥지를 튼 곳이었다. 새롭게 부흥하자는 뜻을 가진 동명으로, 다른 지역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가진 편이었다. 슈퍼, 공원, 버스정류장, 우체국, 학원, 어린이집, 유치원, 교회, 사찰 등 생활 편의시설과 교육기관 그리고 종교시설이 가까이 있어, 주민들이 생활하기에 편리했다. 아이들도 많아 골목은 늘 시끌벅적했다. 


우리는 공원 아래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그곳을 산책하며 즐겼다. 골목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앞집과 담이 붙은 옆집은, 친척처럼 가까운 이웃들이었다.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풍경처럼 그 마을도 그랬다. 부침개를 푸짐하게 해서 나눠 먹고, 골목에서 술판을 벌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던 동네. 이웃들과 형님 아우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던 곳. 골목에서 아이들이 놀고 싸우며 소리치는 게 자연스러운 동네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골목에서 아이들 대신 어른들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차 전쟁이었다. 차가 하나씩 늘면서 아이들은 골목을 잃어버렸고 잦은 이사로 골목 사람들이 바뀌기 일쑤였다. 부족한 주차 공간 때문에 아이들은 공차고 고무줄 놀이하던 공터마저 잃어버렸다. 공터 소유자가 땅을 밀어 주차시설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경제에 밝은 사람들은 마을이 투자처로 보였는지 좁고 작은 집을 사들였다. 재개발이 되면서 그들은 큰 이익을 보았을 것이다.


골목에 살던 사람들은 재개발로 뿔뿔이 흩어졌다.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곳에 짓는 아파트에 들어갈 테지만, 월세나 전세를 살던 사람들은 그 마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소유자들도 분담금을 부담할 수 없으면 그 아파트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작은방 하나를 세놓아 용돈을 받아쓰던 노인들 또한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이제 주차전쟁은 사라질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흩어진 것은 아쉽지만 입주자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다툼 없이 사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리라.  


내가 살던 집 앞에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었다. 사계절 모두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을 즐겼다. 늦은 봄 뾰족뾰족 돋아나던 새싹, 꽃이 피었다 진 후 맺히는 올망졸망한 열매들, 검푸른 잎사귀가 노랗게 물들어 떨어질 때 내리던 함박눈, 그것을 황홀한 듯 즐겼다. 그뿐인가. 그곳에는 내가 설립한 어린이집이 있었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인계했지만 여전히 내가 지은 그 이름으로 있던 어린이집. 젊고 푸른 시절 어린이 교육에 대한 꿈을 활짝 펼치던 곳이다. 열정을 다해 일했고, 어린이를 마음껏 사랑했으며, 내 인생의 비전을 가지고 치열하게 삶을 개척하던 공간이다. 


그런데 다 사라졌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보이던 낯익은 이웃들, 뛰어놀던 아이들, 열병식인 듯 늘어선 은행나무들, 내 꿈을 펼치던 어린이집, 30년 가까이 서 있던 교회, 이 소중한 것들이 포클레인이 벌린 입 속으로 모두 쓸려 들어갔다.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마을 사람들도 하나씩 둘씩 떠나고, 마지막에 슈퍼까지 문을 닫던 날, 골목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낯익은 풍경들이 사라진다는 것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재개발이든 개발이든 이것은 현대인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발전과 편리성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인간의 정서적인 면과 관련해 볼 때, 재개발은 많은 아쉬움을 내포하고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있는 재개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다 갈아엎지만 말고 남겨둘 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없을까. 그것이 유형이 아닌 무형일지라도. 



*이 글은 '우리 문화'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하여 발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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