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본 모듈화 개념
냉장고는 대표적인 백색 가전의 하나입니다. 백색 가전이라는 말 자체가 가전제품의 획일화된 모습을 의미하므로, 일반적으로 냉장고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한번 구매를 하면 오랫동안 사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정된 색, 기본 기능 외에 따질 요소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는 그런 의미에서 그런 백색가전의 의미를 깨뜨린 제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모듈화 관점에서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듈화 (Modularization), 제품 컨피규레이터 (Product Configurator),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Mass Customization) 세 가지 개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맞춤형 대량생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단일 또는 소수의 제품의 대량생산과 맞춤형 제품 소량생산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효율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동일한 형태의 제품을 많이 만들어내야만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또는 효과성 측면에서는 효율성을 희생해야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양복을 예를 들면 공장에서 몇 가지 치수로 맞춰진 양복을 만드는 것과 고객의 신체 치수를 일일이 측정해서 맞춤형 양복을 만드는 것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것과 동일합니다.
결국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볼 수 있는 소품목 대량생산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고객이나 시장의 니즈는 점차 다양해지고, 구매력 또한 강해지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만들어놓는 대로 팔 수 없는 시기를 겪게 됩니다. 그렇게 된 와중에 나온 개념이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맞춤형 대량생산입니다. 개념은 단순합니다. 고객의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면서도 대량생산의 효과를 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고자 하는 거죠. 그런데, 고객의 폭을 넓히면서 동시에 고객에게 최대한 맞추겠다는 것이 말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위한 수단이 필요하죠. 그중 하나가 모듈화입니다. 제품을 구성하는 전부가 고객의 요구사항과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직결되는 부분도 있고, 일부 관련되는 부분도 있고, 아예 관련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모듈화는 이런 제품의 이질적인 성격을 이용하여 제품을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사양을 기준으로 분할합니다. 그리고, 분할한 모듈을 고객 또는 기업이 조합하여 다양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모듈화를 추진하는 많은 기업들이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즉 맞춤형 대량생산의 수단으로 그것을 활용합니다. 내부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운영 효율성을 높이면서, 외부적으로 고객/시장 대응력을 높이고자 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하고자 합니다만, 둘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서 모듈을 선택하여 제품을 구성하는 과정을 기업이 직접 하기도 하고, 고객이 합니다.
삼성전자 비스포크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후자일 경우에는 고객이 제품을 구성하는 툴, 즉 제품 컨피규레이터가 필요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거창한 것처럼 들리지만, 자주 경험해본 툴입니다.
지금 삼성전자 홈페이지에서 비스포크 메뉴를 선택하면, 구매하기 전에 제품을 직접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제품 컨피규레이터의 예시입니다. 이미 자주 본 형태이죠. 홈페이지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비스포크 메뉴에 들어가면, 구매까지 총 4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제품 컨피규레이터를 제공할 때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각 단계별로 무엇을 선택하는지 명확해야 합니다. 당연히 고객의 언어로 표현을 해야 하고, 지나치게 기술적인 용어나 선택은 배제를 합니다.
두 번째, 구매까지 이르는 단계가 너무 길어선 안됩니다. 구매까지 5단계 내에서 해결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고객은 전문가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아예 문외한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 제공이 가능한 항목이 많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단계는 고객을 지치게 하고, 구매를 포기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위와 동일한 이유로 단계별 선택을 지나치게 많이 두어선 안됩니다. 최대 10개를 넘어선 안되고, 가능한 한 5개 내에서 선택을 유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의 단계와 항목을 적절하게 배치해야 합니다. 항목을 적게 두기 위해서는 단계를 길게 두어야 하고, 단계를 적게 두기 위해서는 항목을 많이 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네 번째, 고객 별로 메뉴를 달리 운영한다. 선택이 익숙하지 않은 저관여 고객에게 어려운 선택이 많을 경우는 추천 제품을 제공하고, 기술적인 배경이 있거나 상세한 선택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별도의 상세 선택 메뉴를 제공합니다.
다섯 번째, 기업이 원하는 방향이 있을 때는 가격으로 유도합니다.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여 고객에게 판매를 하지만, 모든 선택이 기업에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익을 많이 주는 옵션이 있고, 이익을 적게 주는 옵션이 있을 겁니다. 또는 대량 생산하면 좀 더 수익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 옵션, 추천 제품 등을 선택할 때는 할인을 제공하고, 상세 선택을 할 경우는 또는 꺼려지는 선택을 할 경우는 비용을 올리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고객이 모든 선택을 다했을 때 실제로 어떤 구성을 가지고, 어떤 모습을 갖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는 기능과 여러 가지 구성을 비교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면 좋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 비스포크 사이트에는 총 4단계를 거쳐서 제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각 단계별로 10개 이내의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있으며, 선택한 제품을 살펴볼 수 있는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선택과 관계없이 구매할 수 있는 추천 제품 리스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주방에 맞는 설치 타입을 선택하는 단계입니다. 세프 컬렉션 프리 스탠딩, 비스포크 프리 스탠딩, 비스포크 키친 핏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본 단계에서는 제품의 플랫폼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품의 사이즈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선 고가 제품군인 세프 컬렉션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멀티 도어 냉장고는 높이와 너비는 고정하고 깊이를 가지고 용량을 조절합니다. 그렇게 하여 냉장고의 도어를 재사용 또는 공용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냉장고는 주방에서 홀로 튀어나온 모습을 보입니다. 그걸 보완한 제품이 비스포크 키친 핏입니다.
이렇게 제품의 사이즈인 플랫폼을 선택하고 나면, 두 번째 단계에서는 제품 타입을 선택합니다. 도어 개수, 도어 타입, 용도를 선택하는 데 위 플랫폼 별로 2개, 6개, 8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여기서 단계를 줄이고자 한 노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패밀리 허브를 포함시키는가 여부, 쇼케이스를 포함시키는가 여부, 쇼케이스를 몇 개로 구성하는가, 도어 별 냉장/냉동/변온/김치, 김치냉장고 용량 등을 하나의 항목에 두었습니다.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개의 단계를 둘 수 있는 것을 하나의 단계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1 도어를 여러 개를 두면, 개별 기능을 하는 냉장/냉동/김치 냉장고를 나란 히 둘 수도 있죠.
세 번째 단계에서는 기능과 가격을 비교하고 원하는 모델을 지정합니다. 여기서는 세부 기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효율, 베버리지 센터 여부, 이온 살균 청정기 여부, UV 청정 탈취 등 고객이 크게 관여하지 않을 기능을 선택하게 해 뒀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컬러와 소재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아마도 비스포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핵심 특성일 것 같습니다. 냉장고가 단순 백색 가전이 아니라, 인테리어 항목으로 변화하는 항목이죠. 직접 보면서 색상과 재질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에 따라서 권장하지 않거나 불가능한 조합은 표시를 해줍니다. 고객이 실수하지 않도록 프로그램 상에서 막아둔 거죠.
이렇게 고객이 선택해서 다양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듈화를 활용한 사례가 됩니다. 고객이 선택하는 부분은 다른 부분과 영향을 주지 않도록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제품을 모듈화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패밀리 허브, 쇼케이스를 선택하느냐 여부에 따라서 다른 쪽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도어가 모듈화가 되어있어야 하고, 도어 내에서도 패밀리 허브, 쇼케이스 선택 여부에 따라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야겠죠.
다양한 고객의 선택에 민첩하게 대응하려면 회사 내부에서는 공급망도 그에 맞게 최적화해야 할 겁니다. 고정적인 부분, 즉 고객의 선택에 바뀌지 않는 부분은 앞 단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들어놔야 할 것이고, 반면에 고객의 선택에 따라서 바뀌는 모듈 또는 부품의 수급은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자사 공정에서 협력사까지 체계를 마련해뒀을 겁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 비스포크의 장점만 소개한 것 같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바로 앞에서 다룬 것처럼 공급망 관리가 복잡해지고, 예상치 못한 조합에 대한 품질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듈 별로 철저한 품질 관리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고객의 선택 별로 비용과 이익 산출이 필요합니다. 즉, 운영상에서는 좀 더 정교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품 측면에서는 인테그럴 아키텍처와 모듈러 아키텍처 간의 장단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냉장, 냉동이 한 시스템이 있을 때는 같은 비용이라면 좀 더 향상된 에너지 효율을 보였을 겁니다. 냉장고와 냉동고 간 연결이 분리되어있을 때보다 최적화된 상태로 성능을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표현하면 분리된 두 개의 시스템이 되면서 모든 게 두 개가 필요하게 된 거죠. 내부적으로 어떻게 해결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분할하면 그만큼 전체 최적화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과거에는 강건한 시스템 하나를 가졌다면, 선택이 용이해지면서 중복된 자원을 갖는 강건한 시스템 3개를 갖게 됩니다. 이 부분은 내부적으로 어떻게 해결했을지 궁금하네요.
좀더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