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사랑한다.

#8 다시 돌아온 여름, 미국

by Zepline

미국인 남자친구와 지내다 보면 소통의 오류가 꽤나 많이 발생한다. 특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문화 차이는 가끔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잡음을 안겨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쪽은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고, 다른 쪽은 저렇게 하는 게 당연한 문화 속에서 20년을 넘게 지내온 사람인 지라 그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파헤치기 전에 행동으로 먼저 마주치면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즉, 직접 겪어 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다.) 각국의 문화는 그 나라의 언어에 잘 녹아 있는데,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바로 이런 거다. 한국어에는 ‘그랬구나.’,’어떡해...’,’수고했어.’ 같은 공감의 뜻을 품은, ‘나는 너를 이해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표현이나 단어가 많다. 하지만, 그 말을 영어로 번역하고자 하면 어딘가 조금 어색하다. 실제로 해당 문장을 번역기에 넣어 검색을 해보면 ‘I’m sorry.’, ’That’s too bad.’, ’You did well.’ 같은 문장들이 전부였다. 직역하면 ‘미안해.’ ‘그거 참 안됐다.’ ‘너 잘했어!’ 와 같은 말인데, 토종 한국인으로서 그 문장들은 위로와 공감의 맛이 잘 안 난다. 하루는 차가 없던 나를 위해 장기간 운전을 한 친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You did well!’ 이라고 기운 차게 말했다가 ‘응? 내가 뭘 잘 했어? 나 뭐 했어?’ 라는 대답을 들은 적도 있었다. 꽤 멋쩍었던 감정에 뇌리 깊숙이 남아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Thank you.(고마워)’가 전부였다.


하루는 사자 군(가명, 금발을 가진 토종 미국인)과 여행 중 생리통이 심하게 온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는 연애 중이었으며, 한 달 동안 미국 기차 여행을 하던 중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고, 내가 가고 싶다고 조른 센트럴 파크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한 뒤 우리는 그날 저녁 뮤지컬 예매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배가 찢어지게 아팠다. 내가 배가 아프다고 얘기를 하니, 옆에 있던 남자친구는 ‘15분만 걸으면 약국 있는데 여기 먼저 갈래?’, ‘대신 좀 잘래?’, ‘뭐 좀 먹을래?’ 하며 물었고, 나도 모르게 속에서 무언가 울렁거림이 확 올라왔다. ‘얘는 내가 얼마나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궁금하지도 않은가?’ 하는 예민한 상황에서 튀어 나오는 특유의 부정적으로 잔뜩 물든 생각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속에 뭐 하나가 콕 박혀, 꼭 날카로운 것 하나가 콕 박혀 들어오는 것마다 재단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필 그 위치가 가슴인 지라 들어오는 족족 깎아 대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그가 하는 모든 말이 고깝지 않게 들렸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리 곱지 않은 것들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너무나 보고 싶었던 뮤지컬 예매까지 실패했고, 당시의 나는 예민함+통증+아쉬움에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도 그는 ‘하루 더 보내고 내일 다른 거 볼까?’, ‘다른 카드도 해봤어?’ 하며 질문을 남발했다. 순간, 폭발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머리 속에서만 맴돌던 그 날 선 문장을 필터도 없이, 다듬기도 없이 내뱉어 버렸다.


“너는 나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속상한 지, 기분이 어떤 지는 궁금하지도 않아?”


하고 빽. 순간 그 아이의 눈에 슬픔이 고였다. 눈동자가 붉어지고, 얼굴이 빨개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긴 여정이었다. 호텔에서 출발할 시점부터 예매에 실패했을 때까지 장장 3시간의 긴장이었다. 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우리는 뮤지컬 예매하는 건물 로비에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후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각자가 느낀 감정에 대해. 나는 그에게 아픈 내게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기분이 어떤지 묻지 않아 속상했다고 했다. 내 상태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그 점 때문에 실망했다고. 그러자 그는 가만히 내 말을 듣다가, ‘한국에서는 아프면 그런 걸 물어 봐?’ 하고 질문하는 것이었다.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했던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누군가 아프면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어떤 걸 해줄 수 있는 지 먼저 생각한다고. 어떻게 도와줘야 할 지 물어보고 생각하는 게 걱정하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통상 누군가 아프면 ‘많이 아프겠다.’, ‘어떡해.’, ‘많이 아파?’하며 묻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표현이 없었다. 그런 말보다 ‘What can I get for you?’ 또는 ‘How can I help you?’ 의 표현이 공감의 표시라고 했다. 그는 그대로 최선을 다했고, 나는 나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가 했던 공감의 신호가 보였다. 가장 가까운 약국을 찾아 내게 보여주고, ‘저거 화장실인가.’ 하고 물으면 먼저 뛰어가서 확인해주고, 잠시 누워서 쉴 때 자신의 후드를 내게 덮어주던, 그런 행동들이 그제서야 뒤늦게 하나 둘 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미안한 마음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로를 꼭 안으며 하나 또 이해했다.


사실 이런 류의 갈등은 같은 국적의 사람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소위 말하는 F성향의 사람과 T성향의 차이점이라고 하며. 누군가는 T성향의 사람을 공감을 못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정말 공감을 못하는 것일까. 단지 공감의 방식이 조금 '다른' 것인 게 아닐까.


대화가 끝난 후 나는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것 같다고. 식성도, 언어도, 생김새도 같은 것 하나가 없는 것 같다고. 그 말을 듣더니 그가 말했다. 'I don't want to date with me.' 라고. 나는 나와 연애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자신과 내가 다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쉽게 다름을 틀렸다고 인식한다. 특히나 내가 옳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화를 일어나게 하고, 대화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름은 까보면 생각보다 별 것 아니다. 세상엔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로 갈등이 일어나고, 또 생각보다 단순하게 해결되는 일들이 참 많다. 다름은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지루하지 않게 만드니. 더욱 알고 싶게 만드니. 5월의 뉴욕, 그 유명한 여행지에서 제대로 해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그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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