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사기 피해! 예방만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제가 예금을 해지하려고 하는데…”
“네 고객님 여기 전표에 해지하실 계좌번호 적어주세요. 금액이 꽤 큰데 계좌이체나 수표로 출금하시는 게 어떠실까요?.” “아뇨 현금으로요. 제가 급해서요. 빨리 처리해 주세요.”
젊은 고객 양반. 뒤를 돌아보시게나. 많은 고객들이 지금 대기 중이다. 본인도 바쁘겠지만 나도 바쁘거든요? 아니 통장도 없고 비밀번호도 모르면서 어찌 빨리하라고 명령이냐… 여긴 패스트푸드점이 아닙니다 고. 객. 님. “네 고객님 제가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지하신 금액이 꽤 큰데 어디 급하게 쓰시려고 하시나 봐요? 지금 해지하면 이자가 거의 없고 가입하실 때 금리 조건이 좋으셨어서 아깝네요.”
“ 이유 꼭 말해야 하나요? 제가 그냥 쓸려고요.”
또 이 소리다. 내 돈 내가 찾아간다는데 왜 묻냐 기분 나쁘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본데. 나도 사실 안 궁금해요. 빨리 고객님 업무 처리하고 뒤에 기다리시는 고객님들 업무 처리하고 싶은데, 나의 의무랍니다. 이럴 땐 말을 줄이고 [고액 현금 출금 문진표]를 내민다. 얼마 전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예금을 출금해 준 해당 금융기관 직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담당 직원이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고 출금을 안 해줬다면 피해가 없었을 거라고… 금융기관 직원으로서 의무를 저버렸다나 어쨌다 하면서. 그 뒤로 회사에서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고액 출금 시 자금의 사용처를 묻도록 권고하였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고액 현금 출금 문진표.
고객이 보이스피싱 때문에 출금을 하는지 아닌지 몇 가지 질문으로 판단하여 미리 예방하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현장에서는 도통 통하지 않는다. 고객들은 의심을 받는 것 같고 일처리가 늦어진다며 불평하고 직원들은 그런 고객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누굴 위한 것인지.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 나쁘게 말하면 더 이상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렵다. 서류만 받고 빨리 처리하자. “저, 제가 이런 상황인데요.” “네? 이건 보이스피싱 사기입니다.” “저 지금 사기당한 건가요?” 젊은 고객님이 왈칵 울음을 터트린다.
대학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갓 시작했다던 고객님은 금융거래는 직접 해본 적이 없고 공부만 열심히 했다고 했다. 그래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을 때 혼란스럽고 큰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단다. 금융 사기에 연루되어 검찰청에 공탁금으로 5천만 원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곤 새마을금고에 있던 예금을 급하게 찾으러 왔다. 처음에는 사기를 의심했지만 무시하다 잘못되면 정식으로 의사 생활을 할 수 없을 거란 사기꾼들의 말에 덜컥 겁을 먹었고, 이미 일부 금액은 다른 은행에서 출금해서 벌써 이체를 하였단다. 나쁜 것들. 사기꾼들 중에서도 악질이다. 욕하고 울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미 피해가 발생하였다면 빠르게 경찰서에 가서 피해 신고를 해야 한다. 고객님을 경찰서에 보낸 뒤 다시 업무를 시작하였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업무가 끝날 무렵 젊은 고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다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보니 내가 아니었다면 더 큰 피해가 있었을 거라며 몇 번이고 감사하고 하셨다. 실무책임자이신 전무님도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칭찬을 들었는데도 기쁘지가 않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몰랐다. 고객을 마주하고 있는 내 책상의 위치를. 내 앞에 대기하는 고객들이 빨리 창구에서 일처리를 하고 지점을 나가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 가볍게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씩 늘어나는 일들이 귀찮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나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뒤에서 기다리는 고객들이 아니라 나의 관심이 필요한, 나와 눈을 마주 보고 있는 고객 한 사람이다. 나의 질문이 고객을 하여금 귀찮게 느껴진 것은 이런 내 마음이 묻어 있어서가 아닐까. 내가 조금 더 관심 있게 물어보았다면 고객도 나도 달랐을까.
저 종이 한 장의 중요함을 이제야 느낀다. 종이에 담긴 질문엔 고객들이 답하지만, 질문이 진짜 궁금한 건 직원인 내가 고객들에게 이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던 건 아니었을까. 나의 귀찮은 마음이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아 몹시 부끄러워졌다. 빨리 업무 처리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고객들을 살피기로 다짐했다. 나의 관심으로 누군가의 전 재산을 지킬 수 있다. 한 번 더 다짐한다.
금융감독원( 금융기관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에서는 피싱 근절을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는다. 그중 많은 부분들이 금융기관 직원들의 교육을 통한 예방책에 집중되어 있다. 피싱 수법이 계속 교묘해진다. 개인의 아주 중요한 약점이나 개인 정보, 가족 등을 미끼로 하기에 쉽게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판단이 흐려진다. 그런 고객들의 상황을 눈치채고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예방책이 창구 직원들이 아닐까. 이제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고객에게 질문을 하려 한다. 부디 나의 이런 마음이 고객에게 전해지길. 나의 질문에 짜증보단 답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또 하나 창구에서 직원들이 보이스피싱을 의심할 때 많은 고객들이 내가 이런 사기당할 사람으로 보이냐고 한다. 세상에 사기당할 만한 사람은 없다. 소중한 것들을 미끼로 사기 치는 범죄가 많을 뿐이다.
문진표를 여러 장 프린터를 한다. 프린트한 출력물을 선배들 책상에 여러 장씩 놓아둔다. 준비해둔 문진표가 떨어져서, 출력하는 것이 바쁘고 귀찮아 문진표 작성을 놓치지 않길 바라며.
* 지급정지 피해신고 (경찰청) 112
* 피싱사이트신고 (인터넷진흥원) 118
* 피해상담 및 환급 (금융감독원)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