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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자현 Jan 23. 2021

내가 나인데 무엇으로 증명하나요?

금융실명제, 금융기관과 거래를 할 때 본인의 실명으로 거래해야 하는 제도

“신분증 보여 주시겠어요?” ”아이쿠야 깜빡하고 안 가져왔네. 주민번호 불러줄게.” “고객님 신분증이 없으시면 업무처리가 어렵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신분증 지참 후 다시 한번 내방해주세요.” “뭐? 내가 여태껏 기다렸구먼 집에 다시 갔다 오라고? 주민번호 알려준다니까. 사람 귀찮게 해.” “본인 확인을 위해서 신분증은 꼭 필요하세요. 죄송합니다.” “본인 확인? 내가 나인데 그깟 신분증이 뭐라고 그래. 아가씨 내가 여기서 거래를 30년 동안 했어. 지금 이사장, 전에 이사장 다 나랑 친하다고. 모르면 한번 물어봐.” 


데자뷔인가? 너무 익숙한 이 스토리. 입사 이후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틀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신분증이라고 당당하게 휴대폰에 찍힌 사진 한 장을 보여 줄 때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1993년 우리나라의 모든 금융거래를 금융거래 당사자 실제 본인의 이름으로 하도록 도입한 제도가 금융실명제이다.  금융거래의 투명성과 함께 금융사기를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따라서 93년 이후에는 모든 금융 기관에서는 금융실명제를 근거로 신분증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하고 있다. 직원들이 처음 입사했을 때 제일 먼저 관련 공부를 한다. 교육 자료만 하더라도 100페이지가 넘는다.


신분증의 종류는 기본적으로 성명, 주민번호, 사진이 부착되어있으며 발행 기관이 국가기관이 여야 한다. 주민등록증이 원칙이지만 운전면허증, 여권 , 복지카드를 기본으로 꽤 많은 실명확인 증표들이 있으며 학생들은 학생증도 가능하다. 그 외에 외국인, 재외국민 등으로 나눠 각각의 신분증으로 실명확인을 하고 있다. 주의사항은 신분증의 사본, 거래시점에 유효하지 않거나 사원증은 실명확인 증표로 사용할 수 없다.


확인 순서는 신분증에 기재되어있는 성함 주민번호와 거기에 부착된 사진으로 먼저 본인 확인을 한다. 그 후 신분증 진위 확인을 할 수 있는 기계로 확인까지. 고객 입장에서는 단순하고 생략 가능해 보일 수 도 있겠지만, 아주 중요하고 기본적인 절차이다. 그래서 가끔 회사에 두고 왔다며 목에 걸린 사원증을 내밀거나, 신분증 상의 사진과 얼굴을 대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아주 잠깐만 내려 달라는 요구에 짜증을 내는 고객들을 만날 때면 서로 난감하고 짜증 난다. 내가 나인 것을 왜 증명을 해야 하냐고 묻는 고객님께 고객님이 고객님인 것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신분증 외 다른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그래서 다른 방법이 그 자리에서 생긴다면 이 전쟁이 끝날 수 있을까. “아 알았어. 내가 이따가 가져다 줄테니까 먼저 업무 처리해요.” 전혀 이해를 못 하신 것 같은데…




실명확인만큼 또 어려운 것이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를 받는 것.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 후 업무처리를 위해 민감한 개인정보를 활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동의서를 받는다. 물론 모든 업무를 위해서 받는 것은 아니나 신규 거래이거나 업무 종류에 따라 많게는 몇 장의 동의서를 받는다. “이거 무조건 동의해야 하나요? 개인정보 민감해서 전화 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영업하려고 이런 거 받는 건가요? 저 관심 없어요.” 


이해한다.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영업활동 전화를 받을 때면 내가 언제 동의를 했기에 이렇게 전화가 오는지 정신없다. 그래서 다음번에 동의서에 서명을 할 땐 꼭 조심해야겠다 생각하는 거. 또 동의서의 글자는 얼마나 많고 어렵나. 그냥 다 동의하지 않음에 체크하고 말고 싶다는 고객님의 생각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직원들이 내미는 동의서는 거의 대부분 동의를 해주어야 현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어려운 동의서 내용을 막상 설명해줘도 시끄럽다고 하거나, 어른을 가르치려 든다고 말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도 그냥 다 때려치웠음 생각이 든다.


금융기관 업무들은 행정민원 업무와는 다르게 해당 기관과 고객의 계약에 의해 처리된다. 그만큼 계약서의 내용과 동의 여부가 중요하다. 직원들이 형광펜으로 표시한 것은 업무처리를 위해 꼭 고객 본인 확인 후 서명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 관계상 먼저 중요한 곳을 미리 체크하는 것인데, 서류 내용이 이해가 어렵다면 직원에게 물어보라. 친절하게 설명해 줄 것이다.


“아휴 간단한 거 처리하는데도 쓸 게 너무 많다. 이렇게 많고 복잡한데 사람들이 어려워서 거래하겠어? 그리고 본인이 직접 왔는데 왜 신분증이 필요해. 참 쓸데없는 게 너무 많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작성하실 서류가 많아서 불편하시죠? 고객님의 소중한 개인 정보 활용을 위해 받는 것이니 꼭 읽어보시고 서명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오늘도 나는 죄송한 일들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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