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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자현 Jan 15. 2021

저는 금고 언니입니다.

무슨 일을 하냐는 물음. 이제 답합니다

오전 9시 창구 문이 열리자마자 등장한 할머니. 번호표는 뽑지 않는다. 곧장 나의 앞으로 와서는 통장을 던진다. “십만 원 줘.” 맡겨 놓았나 속으로 생각하지만 “고객님 출금 전표 작성 부탁드립니다.” 하며 억지로 웃어본다. “아, 그냥 언니가 쓰고 빨리 돈이나 줘. 시장 가야 해서 시간 없어.” 이게 무슨 개똥 같은 말이야... “고객님 출금을 위해서는 자필로 전표를 꼭 써주셔야 합니다. 금액에 일십만 원 한글로 적어주시고 아래 줄에는 성함 크게 적어주세요.” 


억지로 올린 입가가 미세하게 떨린다. 이 할머니는 올 때마다 무례하다. 본인 통장에 돈을 출금하면서 마치 빌려준 돈 받으러 온 것처럼 짜증을 낸다. 도대체 뭐가 불만인지. 그리고 왜 내가 언니야… 언니의 단어를 모르나… 아니면 내가 나이 어린 직원이라 막 부르는 건가? 나도 엄연히 직급이 있는 직원이다. 아니  왜 올 때마다 이러는지.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나의 단호한 눈빛과 태도를 본 할머니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나 글을 못 써. 쓸 줄 몰라 이름만 겨우 써.” 아… 순간 당황한 표정이 내 얼굴을 스쳐간다. “아, 그러시면 일단 이름 먼저 적어주세요.” 귓불이 빨개진 나는 후다닥 통장을 인쇄기에 넣는다. 생각도 못 했다. 매번 올 때마다 적는 걸 싫어하시는 게 귀찮아서 나에게 시킨다고만 생각했다. 글을 쓸 줄 모르신다고는 생각 못 했다. 당황한 나를 보며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초등학교를 겨우 나왔지만 다니는 날이 적었고 글씨는 이름만 쓸 정도로 겨우 익히셨단다. 그때는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해 배우는 게 중요한지 몰랐다고 하셨다. 할머니께서 처음 우리 금고에 거래를 했을 때 고등학교를 나와 이곳에 취업했다는 젊은 여자 직원의 말을 듣고 이제 여자도 공부를 시키는 세상이라 참 다행이라 생각하셨다고  하셨다. 그 후 만난 새로운 여자 직원이 전문대학을 나왔다는 말을 듣곤 이제 여자도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하니 좋은 세상이라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자 직원. 남자 여자 똑같이 공부하고 사회에서도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부럽다고 하셨다. 지금 태어났으면 나도 책도 보고 공부하고 학교도 다녔을 텐데 하며. 요즘 사람한테 글을 못 쓴다고 하면 이해할까 싶어 말하기가 곤란했었다고... 짜증 내서 미안하다며  손 흔들며 나가시는 할머니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이곳에 입사한 지 여러 해.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낙담해 있었다. 같이 취업 준비를 한 친구들은 연봉 많고 대기업인 은행에 취업을 했지만 나는 다 떨어지고 이곳에 겨우 합격했다. 그래서인지 정을 못 붙이고 적당히 다녔다. 낮아져 있는 자존감에 남들과 쉽게 나를 비교하고 불평불만하기에 바빴었다. 그런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본 이곳은 별로였다. 


연령이 많으신 몇몇 고객들은 나에게 금융 업무와 관련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해달라 졸랐다. 휴대폰의 어플을 다운로드해달라던지 콜센터에 전화해 개인적인 민원 업무를 봐달라는 일. 그뿐만 아니라 길 찾기 등 이런 걸 왜 금융기관인 이곳에 와서 직원들에게 시키는지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많았다. 

또 회사 생활은 어떤가. 막내라고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고 각종 잔심부름에 커피 심부름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반말을 하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내가 이러려고 공부해서 이곳에 취업했나 자괴감에 괴로웠다. 매번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기고 싶다 생각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이곳에 마음을 두지 못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스스로 만든 색안경을 쓰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진짜 별 인 건 신세한탄만 하며 맘대로 생각한 내가 아니었을까? 누군가 부러워할 만한 충분한 교육을 받고도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불평불만하는 데 온 마음을 쓰고 있는 나. 내가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졌다.


할머니 고객이 이곳에 들어와 글을 써야 할 때 얼마나 난처하셨을까. 당연하게 글을 적어 달라던 나에게 글을 쓸 줄 모른다는 말을 하시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쁘다는 말로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인다는 말로 나에게 둘러서 말하고 있던 게 아닐까. 많은 고객들이 지인이나 자식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미숙한 모습을 숨기려 이곳에서 도움을 청했을 것일 텐데. 나는 보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고개를 들어 고객들의 눈을 맞추니 보인다. 나의 재산을 다 맡기고 알려 줄 수 있는 유일한 남. 공부도 열심히 해서 똑똑하고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믿음직한 사람들. 고객들은 이곳의 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이것저것  개인적인 부탁도 한다. 


이 신뢰를 나는 이제야 비로소 본다. 그리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해보겠다고. 돈만 적당히 벌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나를 믿고 이곳을 찾는 고객들에게 도움되는 직원이 되겠다고. 내가 이 일을 하겠다 생각했을 때 나의 마음을 다시 꺼내어 보고 다시 다짐을 했다.


오전 9시 창구 문이 열리자마자 등장한 할머니. 번호표는 뽑지 않는다. 곧장 나의 앞으로 와서는 오렌지가 담긴들을 검은 봉지를 던지신다. “뇌물이다 못 받는다 하지 말아. 손 민망하니까.” “엥? 이걸 왜 안 받아요! 저 오렌지 엄청 좋아하는데요? 잘 먹겠습니다 다른 직원들이랑 같이 나눠 먹을게요.” 싱글벙글 웃으며 옆에 앉은 선배에게 오렌지를 슬쩍 자랑해본다. 할머니도 선배도 피식 웃는다. 그리곤 흰 봉투를 꺼내시며 “이거 좀 봐줘. 집으로 왔는데. 글을 모르니… 자식들한테 물어보기도 민망하고..” “아 이거 노인대학에서 보낸 건데요. 한글 수업 참석하라고 안내문 보냈어요. 내일부터 등록해야 하니까 신분증 가지고 직접 오시래요!” “고마워. 언니가 그때 알아봐 줘서 전화했더니 합격했나 봐. 아니 근데 글 모른다니까 왜 편지를 보내고 지랄이야?” “ 아이 할머니!!! 이제 열심히 배우셔서 시도 쓰고 일기도 쓰고 하셔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편지 궁금하시면 언제든지 저한테 갖고 오셔요.” 고맙다며  손 흔들며 나가시는 할머니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 편 이 뿌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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