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공포영화
영화 <랑종> 리뷰
공포영화만이 주는 감각이 있다. 살다보면 가끔 으스스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을 지나가야 하는 순간이 온다. 실제 그 상황을 맞딱뜨리는 건 무척이나 싫지만, 안전한 내 방 침대에 가만히 누워 공포영화로 그 기분만을 느낀다는 건 긴장되긴 해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이다. 이번 글에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공포영화 <랑종>을 리뷰하고자 한다. <랑종>은 태국을 배경으로 하고 태국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이지만, <추격자>, <황해>, <곡성>의 감독으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이 원작자이자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기본 컨셉은 카메라맨이 랑종인 '님'을 촬영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카메라맨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영화 속 세상을 보게 된다. 그 리얼한 앵글과 흔들림이 영화의 공포감을 고조시킨다.
랑종은 우리말로 '무당'이라는 뜻이다. 태국의 어느 지역, 그곳에서 사는 랑종 '님'이라는 중년의 여자는 가문 대대로 신 '바얀'을 모시고 있다. 바얀은 그 지역을 오랫동안 수호해온 선하고 강한 신이다. 산속에 위치한 바얀의 석상을 관리하고 신을 위해 삶을 사는 님이었다.
님은 조카인 밍의 상태가 이상함을 파악하고 그것이 신내림 증상이라고 자신의 언니인 '노이'에게 말했다. 그녀는 밍의 엄마이다. 그러나 노이는 밍이 내림굿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두 자매 사이에 얽힌 이야기가 밝혀진다. 원래 가문의 첫째 딸인 노인가 내림굿을 받아 바얀을 모시는 랑종이 되어야 했으나 그녀는 그것을 두려워해 거부했다. 그리하여 둘째인 님이 내림굿을 받아 랑종이 된 것이었다.
밍의 상태가 점점 더 이상해져 직장의 상사는 그녀를 해고했다. 물건이 계속 사라짐을 이상하게 여기던 사장은 CCTV를 확인했는데 밍이 낯선 남자들을 회사로 데려와 거친 성관계를 맺었던 것이었다. 본인의 상태에 비관한 밍은 자살을 시도하게 되고, 노이는 어쩔 수 없이 님에게 내림굿을 부탁하게 된다. 그러나 님은 그것을 거절하게 된다. 밍에게 들어온 존재는 바얀이 아니었다.
님은 밍에게 들어온 존재가 여러 귀신들이 한 데 뭉쳐 생겨난 거대한 악귀임을 알아낸다. 그리고서 산속의 바얀 석상에 제를 드리러 간 님은 오열하고 만다. 그 석상의 목이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작중 초반에 밍은 카메라맨에게 어떤 꿈을 꾼다고 말했다. 그 꿈은 어떤 남자가 큰 칼을 들고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 바닥에는 피와 함께 어떤 존재의 머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 머리는 계속 뭐라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밍의 꿈에 나온 남자는 그녀의 몸에 들어온 악귀였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는 바얀의 머리였던 것이다. 이는 그 악귀가 바얀조차 이길 수 없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님은 알고 지내던 퇴마사 '싼티'의 힘을 빌려 구마의식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도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던 밍은 방에 갖히게 되었는데, 어떻게 나왔는지 집에서 키우던 개를 끓는 물에 넣어 죽이고는 먹어치운다. 이 부분이 상당히 기괴하고 잔인했다. 끓는 물이 가득 담긴 큰 냄비에 개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개의 울음소리와 그것이 발버둥치면서 나는 냄비의 달그락 소리는 공포감과 기괴함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소란이 있던 다음 날, 님은 제단 앞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제단의 음식들에는 엄청난 양의 구더기가 있었는데, 이상한 점은 그 음식이 차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작품의 후반부를 보면 알겠지만, 영화에 나온 대부분의 인물이 죽게 된다. 그것도 악귀에 의해 잔혹하게 말이다. 그것과 비교해 님의 죽음은 어떠한가? 제단 앞에서 고요히 쓰러진 채 죽었다. 평온한 죽음인 것이다. 나는 이를 바얀 신의 마지막 자비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힘으로도 결코 구마의식에 성공하지 못할 것을 깨달은 바얀 신은 자신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 그녀만은 적어도 평온하게 죽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푼 것이라 느꼈다.
이후에는 '싼티'를 중심으로 구마의식이 진행되나 앞서 말한 것처럼 구마의식은 실패로 끝나고 그곳의 모든 이들은 죽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생전 님의 인터뷰가 나온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깃든 게 바얀이라 확신한 적이 없다며 눈물과 함께 고백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깃든 것은 바얀이 맞았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낀 바얀이 적어도 그녀만은 평온한 마지막을 선사해주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