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마라’던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교육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해도 된다’는 것으로 문을 열어주고 싶었다. 세상에는 해도 되는 게 더 많은데 하지 말아야 하는 틀에 갇히게 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조건은 아니었다.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확실하게 경계는 그었다.
그기에 합당한 교육철학을 정립하는데 첫 번째는 덕승재(德勝才)였다. 덕(德)이 재주(才)를 이긴다는 의미다. 아무리 재주를 가졌어도 그 재주가 덕을 넘으면 칼날과 같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인성의 바탕부터 다졌다. 특히 딸래미는 태교를 할 때부터 음악적인 재주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뮤지컬 배우를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겸손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덕승재의 의미를 새길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교육학자인 전혜성 박사님의 교육철학을 벤치마킹했었다. 미국에서 6남매를 모두 박사로 키워낸 신화적인 인물로 미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고경주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미국 교육부의 ‘동양계 미국인 가정교육 연구 대상’이 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분의 교육철학이 덕승재(德勝才)를 기본으로 삼고 있었기에 아이를 키우는 내겐 절호의 기회였다. 어릴 때부터 덕승재의 의미를 새긴 탓에 별로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또래보다 큰 체격에 힘을 썼던 에피소드가 있다. 자신보다 연약해보였던 친구의 필통을 만지면서 학용품을 자기 것 마냥 하나씩 사용하면서 괴롭혔던 것이다. 이 일로 친구가 울어서 선생님께 들키게 되고 급기야 엄마인 나에게 전화가 왔었다. 세상에나!!! 착하다고 생각한 딸래미의 과격한 친구 괴롭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괴롭힘을 당한 친구를 데리고 문방구에 가서 새 필통과 학용품을 채워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더니 스스로 놀랬나보다. 그 이후에는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되었다. 훈계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더니 즉각적으로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보다 큰 키가 재주는 아니었지만 무기가 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두 번째는 공부는 하나의 재능에 불과 할 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가는 것에 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공부밖에 몰랐던 엄마 아빠의 세대에 비해서 다양한 길을 갈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놀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유아 스포츠단을 보냈더니 정적인 아들 녀석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기에 비해 딸래미는 스포츠에도 열정적이었다. 동생을 챙기는 아들 녀석에게 자유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유치원으로 방향을 잡아주면서 홀로 스포츠단을 다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치원도 패스하고 2년을 더 다녔다. 얼마나 동적인 체질인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 때부터 운동부에서 콜이 시작된 것 같다. 수영이며 태권도며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는 멀리 뛰기에 소년체전 대표로 보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승낙하지 않았다. 예쁘지 않은 아이를 예쁘게 키우고 싶은 보통 엄마의 욕구였다.
바랐던 대로 음악적인 재주를 갖고 태어난 딸래미는 음악만 나오면 흥 뿜뿜이었다. 어린이집 원장님이 학예발표회 때 사회자를 맡길 정도로 재주가 보였다. 피아노도 곧잘 쳐서 대회에서도 수상경력이 좋았다. 아이돌을 하고 싶다 길래 오디션을 보러 가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후원을 했었다. 예체능에 실력을 뽐내던 아이가 오디션에서 탈락을 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때 축구소녀의 명성을 가지고 있던 것을 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여자아이가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공을 차고 다니는 모습을 교장선생님이 보고 붙여준 애칭이 축구소녀였다. 선수로 한번만 해보고 싶다는 애원에 축구협회에 전화를 해서 감독님을 소개받고 찾아가게 되었다. 많은 선수들이 있어 선뜻 받아줄 마음을 내지 않았던 감독님이 훈련하러 오는 문은 열어 둘테니 언제든 와도 된다고 허락을 했다. 한 달여 동안 훈련하러 오는 끈기에 선수로 받아준 이야기는 지금도 웃음이 나오게 한다. 정작 힘들어 도망가려고 할 때 감독님이 해 준 한마디 “임마!!! 넌 축구가 운명이야~”
비록 음악적인 재능은 접어두고 축구소녀로 자랐지만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좋아서 하는 축구니까 힘들어도 충분히 이겨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만 잘해서 가는 길 보다는 운동선수이면서 음악도 잘하는 게 훨씬 좋다는 다재 다능에 점수를 얹어주는 아빠의 응원에 자긍심을 가지는 딸래미를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대학시절에는 운동을 하면서 체력도 키우고 좋아하는 춤과 노래도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섭렵하기도 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여정에 어떤 길이 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해도 되는 거라면 맘껏 해볼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