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남주 Jul 19. 2021

지속성이 부족한 아이

   축구하는 딸래미는 재주가 많은 반면에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축구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재능을 보였던 피아노도 그랬고, 춤과 노래를 배우고 익히는 것도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가면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다가 그만 두는 일이 잦았다. 딸 바보 아빠는 이 부분에서는 참지를 못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대기업에 다닌 근성이 몸에 베인 사람에게서 나오는 성향이지만 아빠와 딸의 아킬레스가 되는 분위기였다. 그기에 반해 엄마인 나는 느긋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이것저것 경험해 보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면서 잘 하는 것을 찾는 시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든 한 순간에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는 것에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었다.     

지속성이 부족해서 아빠랑 가장 큰 트러블이 있었던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피아노 사건이었다. 얼마 전에 유튜브를 하면서 내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시간이 있었다. 어릴 때 피아노를 곧잘 치는 것을 보고 아빠가 큰 맘 먹고 피아노를 사주었던 때이다. 그 당시 울산에 살 때 피아노 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받는 것이 여러 번 있었다. 그 때 이화여대 교수님이 심사를 보던 대회에서 다른 아이와 결선에서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다시 치게 한 후에 최종적으로 딸래미가 대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 때 교수님에게 피아노를 전공시키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음악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밀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들 뜬 마음에 피아노를 사 준 아빠의 입장에서는 저녁에 집에 오면 아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 큰 힘을 얻었었나 보다. 얼마 후에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벌써 싫증이 났어?" 라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안 치는 피아노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팔아버린 사건이었다. 그 때의 아빠의 행동에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의 위압감에 힘이 없는 우리는 숨죽이는 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성장해서 힘이 생긴 아들 녀석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그 때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학교 갔다 오면 피아노를 치는 동생 때문에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고. 분명히 피아노를 열심히 치고 있는 데 저녁에 와서 피아노 소리 안 들린다고 하는 아빠가 이상했단다. 어린 마음에 말을 하면 반항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될 것 같아 말을 하지 못했단다.  아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 때의 미안함을 사과하는 마음에 피아노를 다시 사 주었다. 딸래미는 ‘힘들어도 피아노는 절대 팔지 마라’고 당부한다.      

축구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할 때는 하고 싶다고 졸라서 할 수 없이 시켰는데 들어가서 해보니 힘도 들고 다른 것이 더 재밌을 것 같아 못하겠다고 징징거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인 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고비를 넘겼다.      

어른인 우리도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인데 아직 어린 아이에게는 그런 감정 기복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충분히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협조를 한다. 예를 들면 축구가 하기 싫다고 할 때 과감하게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학생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면 집중을 하지 않는다는 지도자들의 우려에 외박 나올 때가 아니면  주지 않는 시절이었다. 모르는 번호가 뜨는 데 받았더니 딸래미가 울먹이면서 답답해 죽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친구의 휴대폰을 빌려서 몰래 전화를 한 것을 알기에 들어주었다. 그것으로 만족이 안 되는 것 같아 도망 나오라고 시켰다. 엄마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중간에서 만나자고 했다. 엄마의 응원에 용기를 내어 도망 온 사건이었다. 그 일로 감독님이 전화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친구 전화를 빌려서 전화가 왔길래 도망 칠 수 있으면 능력껏 나오라고 했다고, 중간에서 픽업하기로 했다고 하니 감독님이 보내달라고 사정을 했다. "아이구~ 감독님~! 저도 딸래미를 품에 재우고 싶어요. 엄마 품에 재우고 보내면 더 씩씩하게 할 거니까 걱정하지마세요" 라고 했었다. 보통의 부모들은 참으라는 말을 할 뿐 도망오라고 시키지는 않는다. 특이한 나의 교육철학에 감독님이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사건이었다. 그 때 이후로 도망오지는 않는다. 힘들 때마다 울기는 하지만 뛰쳐나올 정도는 아니다.      

꾸준히 하기 위한 뒷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지속적이지 않다고 짜증을 낼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이치로 키운 시간이었다. 지금은 축구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면 절대적으로 하겠다고 한다. 축구를 해 온 시간이 짧은 게 아닌 데도 말이다. 참고 견디고 하던 친구들은 아예 다른 길로 갔는데 딸아이는 현직에서 뛰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 하다고 가끔 웃는다.

이전 02화 공부를 못해도 밉지 않은 아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