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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남주 Jul 14. 2021

많고 많은 재주중에 하필 축구를

        

우리 집에는 축구하는 딸래미가 있다. 여자가 축구를 한다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도 여자축구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십 여년 전에는 더 더욱 이해 할 수 없는 길이었다. 우리나라에 김연아 선수가 피겨의 여왕으로 세계를 놀랠 킬 준비를 하던 시절이었기에 이왕 할 거면 연아 언니처럼 우아하게 피겨를 하면 좋겠다고 설득도 해 보았다.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아이가 보는 세상에서는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축구가 최고로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있는 이 강인이 어릴 적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하던 시절이었다.  딸래미는 축구에 흥미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른들의 관점에서는 많은 프로그램 중에 하나에 불과했지만 초등학생 여자아이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나보다. 딸래미 또래보다 어린 친구들을 데리고 시작된 프로그램에서 흥미를 느끼는 모습에 의아했던 엄마인 나에 비해서 딸 바보 아빠인 신랑은 달랐다. 울산에서 살던 그 때 현대 호랑이 축구단에서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을 해 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등판에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받는 혜택도 누리니 딸아이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축구에 빠져들었다.     

그 때부터 축구공 하나를 가지고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운동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초등 5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곧 6학년이 되고 중학교 진학을 고민 할 시점에 축구하는 중학교에 진학할 방법을 계속 물어왔다. 우리 집에서는 꽤 먼 거리였다.  굳이 가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는 조건도 있었다. 성적을 핑계 삼아서 안 된다고 했다. 참고로 아이들에게 공부는 하나의 재능일 뿐이라고 키우고 있었기에 공부에 대한 욕구는 별로 없는 아이였다. 그 때부터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딸 바보 아빠는 딸래미가 하고 싶은 축구를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엄마인 나의 반대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학교에 데리고 가서 천연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꿈에 부푼 딸래미는 축구에 더 몰입하고 있었다.      

예쁘지는 않지만 예쁘게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축구에서 눈을 떼기 위한 전략을 구상했다. 하고 많은 재주 중에 하필 축구냐고 반문을 하면서 늘 동경하던 수도권으로의 생활반경을 옮기기로 했다. 축구를 안 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딱이었다.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리라는 생각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끊어내었다고 생각한 축구와 다시 연결되는 일이 벌어졌다. 수도권에 와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아이돌’에 도전하는 오디션에서 매번 탈락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인 재주가 뛰어나 피아노는 물론이고 노래와 춤을 곧잘 해서 대회에 나가면 입상은 기본이었기에 상실감이 컸었다. 그 때 우리나라의 여자축구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었다. 월드컵 U-20세 언니들이 4강 진출과, 월드컵 U-17세 언니들의 우승컵을 들어올림으로서 여자축구가 조명을 받게 된 것이었다. 딸래미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오디션에 자꾸 떨어지니 그 길은 어려운 것 같다고 스스로 포기를 선언했다. 대신에 축구 한 번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매달리는 것이었다. 운명이란 게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땀 흘리고 힘들어 보이는 축구를 안 하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나의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딱 한번만 선수로 뛰고 싶다고 사정을 하는 게 많아지면서 길을 찾게 되었다. 여자 축구연맹에 전화를 해서 감독님을 소개받아서 찾아갔다. 말리고 싶은 엄마의 간절한 마음보다 축구를 하고 싶은 딸래미의 간절한 마음이 훨씬 컸나보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현직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현직 선수로 활약을 하다 보니 주위의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소리가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재능을 찾는 게 제일 어려운데 어떻게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서 키웠냐는 물음이다. 그냥 지켜보았을 뿐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고 대답을 한다. 단지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언지, 즐거워하는 것이 공부가 아닌 축구일지라도 인정해 주었을 뿐이었다고 말 해 줄 뿐이다. 부모가 알고 있는 범위의 틀에 밀어 넣지는 않았을 뿐 특별한 방법은 없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싶다.  활동적인 아이에게 맘껏 뛰어 놀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게 최고의 선물이었고 재능을 찾는 지름길이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아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퇴약볕에 그을리면서 땀 흘리는 모습이 엄마인 내겐 고생스러워 보였지만 딸아이는 그것에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네 인생이니 맘껏 살아보라”고 응원을 보낼 뿐이다. 아이의 재능은 끊임없는 관심과 인정 속에서 찾아내는 것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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