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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남주 Aug 16. 2021

공부를 못해도 밉지 않은 아이

     

축구하는 딸래미는 앉아서 공부하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공부 못하는 딸이 밉지 않은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본다.     

첫째는 나에게 웃음을 선물한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내게 유머가 뭔지를 가르쳐준다.  홍진경의 유머능력을 따라가게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할 정도의 실력으로 보인다.      

어릴 적에 개그맨 이 수근과 은지원이 함께 불렀던 ‘160’의 노래가사가 생각난다. 

♩ .....♬

♪ 키 키 키 키 ♩커 커 커 커♪

키 컸으면 키 컸으면 키 컸으면

머리 어깨 무릎 발까지 160 동산위에 올라서도 160

.....  ♩♪♬

‘머리 어깨 무릎 발까지 160, 동산위에 올라서도 160’은 키 작은 사람들의 콤플렉스를 대변해 준 노래였다. 키 작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 작은 키를 가지고 평생 자존감 낮은 사람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노래였다. 요기에 공부에 대한 대목도 나왔던 기억이 있는 데 지금의 내 머리로는 찾아 낼 수가 없다. 곧잘 따라하는 녀석을 보면서 아빠는 패러디까지 했었다. 아이 둘이서 시험점수 합쳐도 100점이 안 나온다는 뉘앙스였는데 관점을 바꾸니 의외로 웃음을 선사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사는 잔머리는 줄충하다. 워낙 활동적인 아이라 더하기 빼기를 하는 것에는 지루함을 느끼고 글을 읽고 이해하는 속도에는 움직임이 빠른 편이어서 답답해했다. 책을 읽는 내용은 고사하고 후다닥 페이지를 넘기기 바쁜 딸에게 빨리 가는 길을 찾아서 속독을 배우게 했던 적이 있다.  속독은 똑딱 시간 초를 재면서 글을 읽는 연습을 함으로써 집중력을 키우고 이해력을 높여서 짧은 시간투자에 효과 만점을 기다리는 어른들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라고 본다. 그 때 곧잘 해내는 녀석을 원장님은 너무나 믿었고 다음 시험에 성적이 오를 것이라 기대를 했던가 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리 성적이 오르지 않아 엄마인 나에게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 웃으면서 “아이의 잔머리에 원장님이 속았네요” 했었다. 평소에 아이의 행동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속독을 하는 목적은 공부를 잘하라는 어른들의 기대지만 아이들의 잔머리는 어른이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였다. 빨리 가는 길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책을 읽는 자체가 싫었던 딸아이의 행동에 학원을 그만 다니게 해 주었다. 

    

세 번째는 기죽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에 갑작스런 아빠의 병원 행으로 온 가족이 긴장했었다. 다행히 열흘 쯤 쉬고 퇴원할 수 있었다. 아빠의 퇴원을 축하하면서 아들과 딸이 아빠를 위한 외식을 진행했다. 아들 녀석이 점심을 대접하고 딸래미는 빵돌이 아빠의 취향을 저격해 우리 동네에 있는 빵공장으로 나들이를 갔다. 맛있는 빵과 음료를 테이블에 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가 갑자기 아들에게 주식이야기를 하면서 ‘수에즈운하’에 대한 질문을 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딸래미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들리는 대로 아빠에게 다시 물었다. 수에즈 누나?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일반상식인 ‘수에즈 운하’를 모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뭐냐고 딸래미는 계속 궁금해 하는 데 우리는 웃음을 그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무식할 수 있냐”는 오빠의 핀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떻게 다 아느냐”며 오히려 주식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고 “100주를 사면 100주가 지나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헐~ 이렇게 무식하면 우리는 부끄러워 할 텐데 너무도 당당하게 묻는 녀석에게 두 손 두 발 머리털까지 다 들었다.  딸 바보 아빠의 세심한 설명으로 주식을 헤아리는 단위가 주(株)라고 가르쳐 주었다. 커피 한잔, 음료 한잔 하듯이 주식을 셀 때의 단위가 주니까 100주는 100개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했더니 그제야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100주의 주를 시간으로 읽고 있었던 딸래미에겐 새로운 앎의 시간이 되었다.

     

사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닌 건 맞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지식으로 경쟁하듯이 살고 있다. 남의 눈높이에 맞추느라 그런 현상이 생겼다고 본다. 딸아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는 철저하게 연구하고 탐구해가면 되는데 말이다.  축구 경기를 하면서 골 먹는 것으로 승패만 보는 무식한 엄마에게 경기의 흐름에 대해서 동영상으로 분석하면서 설명해 주는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모르면 물으면 되는 것이다. 물으면 즉각 대답해주는 네이버가 있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데 무조건 알아야한다고 지식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지식으로는 많이 부족하지만 모름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묻는 딸아이의 성격에 박수를 보낸다. 

     

공부는 하나의 재능으로 인정해주고 키웠다.  우리 세대에는 콩나물시루에서 공부를 가지고 서열을 매기는 때였지만 아이들이 사는 21세기는 각자의 재능을 가지고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우리는 축구 경기를 볼 때 이기고 지는 승패만 볼 줄 만 아는데, 넌 현직에서 뛰면서 온 몸으로 익히고 갖춘 게 있잖아.” 선수들끼리 경기운영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것도 실력으로 보이고, 동영상을 다시 보면서 골 먹는 장면을 체크하는 것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내가 알고 있는 수에즈운하 모른다고 무시하는 태도를 오히려 고쳐야겠다. 학교공부를 못해도 밉지 않은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는 철저하게 배우고 익히는 자세로 임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충분히 찾아가기에 공부를 못해도 밉지 않은 아이로 성장 할 수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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