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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남주 Aug 12. 2021

아이가 하기 싫어 할 때 어떻게 하실 건가요?

      

딸래미가 축구를 하면서 하기 싫어서 못 하겠다고 울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살다보면 늘 좋을 수는 없지만 좋아서 시작했던 것을 스스로 못하겠다고 땡깡 부리는 것을 보면서 속이 답답했었다. 그 중에 중학교 3학년 시즌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왜냐하면 축구를 하는 딸래미도, 키우는 우리도 이런 슬럼프는 처음이었으니까.     

 

먼저 시작했던 게 3학년 첫 경기였다. 본격적인 선수 활동을 중학교 2학년에 시작 했으니 조금 익숙해지면서 나태해질 시기도 되었다. 놀이로 하던 축구가 경기에서 주전으로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3학년의 실적으로  고등학교 진학도 이루어지는 것이라 책임은 막중할 수밖에 없었다. 필드 선수는 교체카드가 충분했지만 골키퍼는 교체가 어려웠다. 골키퍼를 하던 후배가 그만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골키퍼의 자리는 훈련은 같이 하지만 주전으로 게임에 투입되는 건 3학년이 될 때까지 흔하지 않았다. 항상 선배가 먼저여야 하는 룰이 아니어도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라도 3학년이 무조건 뛰어야 한다. 골키퍼의 숙명처럼 보였다. 게임에 훈련이 안된 부담감이 밀물처럼 몰려오는 시기를 맞았다. 봄바람이 차가운 3월이면 ‘춘계연맹전’이 시작된다. 여자축구의 첫 시즌에 첫 주전으로 뛰니 가슴이 두 근 반 세근 반 하면서 게임에 들어갔을 것이다. 17개의 중등부에서 팀원이 좋았던 딸래미 학교가 강력한 우승후보였으니 얼마나 부담이 컸을까 싶다. 8강까지 올라갔을 때 그 부담감이 극도로 밀려왔나보다. 경기를 이기고도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감독님과 팀원들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CT촬영까지 했지만 이상은 없다고 했다. 아직 어리기에 승패를 가르는 무대에 대한 부담감임을 인정해주고 있었지만 걱정도 되었다. 어린 마음에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고 있을 때 아이들을 이끌고 있는 감독님의 센스가 나왔다. 4강 진출이 되어서 게임을 뛰어야 하는 아침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감독님이 딸래미에게로 와서 얼굴을 보면서 "얼레리 까꿍~~~" 하더란다. 어린마음에 감독님의 개그가 자신에게 힘을 주기위한 응원이란 걸 알아차렸다고 한다. 부담감을 없애주기 위한 감독님의 응원센스가 도망가고 싶은 어린 마음을 돌이켜 놓은 계기였다.  그 경기에서 우승을 달성해서 최고의 골키퍼 상인 GK상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 감독님이 그동안 쏟아 부었던 열정이 꽃을 피우게 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눈물까지 보였다니 그 감동이 얼마나 큰 지 알만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뛰는 게 부담을 주는 건 어떻게 덜어낼 수가 없었나보다. 5월쯤에 ‘여왕기 대회’에서 두 번째 GK상을 받았음에도 못하겠다고 징징거렸다. 세 번째 경기인 ‘선수권대회’를  앞에 두고 마음을 못 잡고 있을 때 음악을 좋아하는 딸래미에게 아빠의 깜짝 이벤트가 준비되었다. 바로 SM콘서트였다. 샤이니의 광팬인 딸래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아 아빠가 선수를 쳤다. 사기를 북돋아 줄 SM콘서트 티켓을 미리 구매를 한 후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샤이니 광팬인 딸래미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나 보다. 골키퍼의 활약이 두각을 나타내어서 3관왕 달성을 할 수 있었다. 우승팀의 선수에게 주는 최고의 공격수 상은 무조건 가져오는 데  최고의 수비상과 GK상은 감독님의 선택으로 하나를 가져오는 룰이 있다. 두 번씩이나 GK상을 받았으니 당연히 최고의 수비상을 줄 거라고 예상했는데 웬걸 딸래미에게 GK상이 주어졌다. 후에 감독님께 여쭤 봤더니 안 줄 수가 없었단다. 막상막하의 경기에서 선방을 너무 잘해서 이긴 경기였다고 했다. 골키퍼가 몸을 날려서 공을 막아내는 게 ‘슈퍼 세이브’라고 한다. 요즘 팀에서 선방하는 실력은 그때부터 싹이 있었나 보다.     

 

10월에 열리는 ‘추계연맹전’은 다른 팀에게 우승컵을 주기위해 감독님의 배려가 있었다. 동년배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고 후배 선수들을 데리고 골키퍼인 딸래미만 경기에 임하고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마지막 경기를 할 때까지 축구하기 싫다고, 못하겠다고 하는 딸래미에게 팀원이 많아 안 받아 줄 수도 있었는데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이해하신 감독님이 어렵게 선수로 키워 준 은혜는 갚자는 게 엄마 아빠의 마음이었다. 3학년으로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어 감독님과 팀에 민폐는 끼치지 않았으니 되었다고 했다. 하기 싫은 축구를 계속 시키지 않기 위해 고등학교는 일반학교로 진학 할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 그 때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발탁이 되어버렸다. 해외 훈련을 가게 되어 부랴부랴 여권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국가대표가 되었는데 어떻게 축구를 그만 두냐?"는 말을 딸래미 스스로 했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국가 대표가 좋은 건 알았나보다. 이후에 계속 되는 대표 팀 호출에는 약발이 먹히지도 않았지만 그 때는 그게 약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은 GK상 3관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못하겠다’고 울던 딸래미를 생각해보면 ‘하기 싫은 것’은 누구도 못 말리는 것이다. 그 때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들어주고 달래는 것이었다. 감독님이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사랑에 빚을 지지 않는 방법으로 성공했으니 마무리가 잘 될 수 있었다. 그 마무리에 애를 썼던 딸래미를 위해 감독님께 집에서 통학을 시켜보고 싶다고 제안을 했었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감독님은 흔쾌히 승낙해 주셨고 잠시 기숙사가 아닌 집에서의 통학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 갈 수 있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등교하면서도 마냥 좋아하던 모습은 천진난만했다. 그 때의 이야기를 뒤져보니 ‘콩나무의 카카오스토리’에 흔적이 남아 있다. 추억의 한 페이지를 들춰보는 시간이다.    

 

억지로 ‘참으라’고 했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이치를 알기에 나름대로 겪도록 해준 시간이었다. 중학생에게 새벽을 안고 등교하는 길은 인생에 스스로 찾아가는 길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기 싫어 할 때 어른들의 잣대가 아닌 당사자의 마음을 포용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실천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지금도 싫다면 언제든 그만두라고 응원을 하고 있다. 오직 그 길만이 정답이 아닌, 때론 다른 길을 선택 할 수도 있는 모험심을 기를 필요성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을 사는 데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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