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시절이 아닐까 싶다. 그 당시에 겪는 열병은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지만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닌 것에 감정이 휘몰아쳤음을 알고 웃음이 나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부모들이 ‘사춘기’를 겪는 과정을 두려워한다. 내겐 특별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사춘기라고 겪는 것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축구하러 기숙사 들어 간 딸래미는 주말이면 집에 오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적당한 거리가 자연스럽게 유지되었으니 오히려 애틋한 시간이었다. 내 놓으면서 키운 장점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육아맘들과의 대화에서 축구소녀 딸래미의 사춘기가 궁금하다고 했다. 내 기억으로는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아 딸래미에게 사춘기 과정에 방황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쿨했다. “축구하기 싫어하던 그 때가 사춘기 아니었을까?” 축구가 좋아서 축구를 한 소녀가 축구하기 싫을 때가 있었다고?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축구하기 싫어서 투정부리던 그 때를 생각해보니 짧지는 않았다. 5년 정도는 아주 극렬한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그것이 사춘기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는 의례 살면서 겪는 과정으로 받아들였기에 별 반응이 없었다. 그냥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살필 뿐이었다.
중학교 1학년까지는 축구가 좋아서 거의 삼매경에 빠져 있었던 시절이니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되었다. 그런데 웬걸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기숙사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관계는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라 단체생활에서 오는 부당한 대우에 견디기 힘들어하는 모습이 제일 먼저 나타났다. 원래 사춘기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많은 시기이니만큼 니것 내것 하지 않고 자신의 옷과 물건이 섞이는 게 불편하다고 하소연하는 일이 잦았다. 단체생활이란 걸 염두에 두지 못한 자신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에 잦은 부상도 한몫했다. 키에 비해서 발 사이즈가 작은 딸래미는 발목이 늘 아킬레스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발목만 전문으로 하고 있는 원장님은 선수생활을 시키려면 아예 수술을 해서 더 튼튼하게 하자는 제안을 할 정도였다. 그 때 딸래미를 키우는 감독님도, 중학교 때 감독님도 수술은 안 된다는 단호한 팁을 주셨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수술을 해서 오히려 더 악화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뼈를 다치면 수술을 통해 오히려 튼튼해 질 수 있지만 근육이나 인대부분은 함부로 손을 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잠시의 고통을 인위적인 방법을 쓰다가 진짜 좋아지는 시간이 왔을 때는 돌이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에 딸래미가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정말 축구를 하기 싫어 수술이라도 해서 축구를 안 하고 싶었다고. 헐!!!! 아이의 모든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당연히 모를 수도 있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견뎌야 한다는 어른들의 고정된 사고가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그 시간을 지혜롭게 헤쳐 나왔다고 자부를 했기에 순간 느낀 마음은 짠 하는 마음이었다.
‘저는 제가 더 어른이니까 저보다 어린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에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똥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똥 이야기를 해주고, 좀 더 크고 난 후에는 연예인, 남자친구 이야기를 함께 했어요. 물론 방향을 잘못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노력해야 합니다.’‘여덟 단어’ 중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방향을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문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데리고 다니면서 쉼의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은 열심히 노력했던 것으로 자부하고 싶다.
사춘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부족하니 두려운 게 아닐까 싶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기에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오히려 현직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좋아하면 아픈 것도 모른다고 한다. 아니 아픈 통증보다 뛰는 행복이 더 크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프다는 소리가 전혀 없다. 경기를 방송으로 보면서 딸래미의 컨디션이 어떤지 몸 상태가 어떤지 다 보이는데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은 축구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어떤 것도 견뎌낼 수 있다는 마음이 보이기에 그냥 지켜볼 뿐이다. 여름을 워낙 타는 체질이라 보약을 먹이려고 하는데도 괜찮다고 손사래를 칠 정도다. 물론 사춘기 때 운동하던 것에 비하면 근력상태가 훨씬 좋아진 것도 있다.
아이들의 사춘기를 보낸 엄마로써 한마디 한다면 아이의 감정선에 끌려가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 어릴 적에 사춘기는 어땠는지 돌아보면 지금의 아이가 하는 행동에 피시시 웃음이 나오지 않을까. ‘나 때는 말이야’가 아닌 ‘나도 그 때 저런 마음이었어’ ‘충분히 괜찮아~’ 먼저 경험 해본 감정을 함께 공유하면서 아이의 사춘기보다 엄마의 갱년기가 더 무섭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