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리그로 한창 바쁘게 경기를 치르던 때였다. 월요일에 경기를 하고 화요일에 2박3일의 외박을 나오는 딸래미의 일정에 맞추어 화요일이나 수요일에는 카페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 나도 시험도 있고 딸래미도 시험이 있어 어김없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노닐 수 있었다. 알바중인 엄마의 시간을 배려해서 오전에는 집에서 학과수업을 듣고 오후에 카페에서 만났다. 변덕스런 날씨에 아침에는 걸치고 갔던 옷을 가방에 넣고 걸어서 도착해보니 딸래미는 벌써 자리를 잡고 열공 모드 중이었다. 엄마의 시장기를 달래주기위해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와플에 아이스크림이 곁들여진 간식도 챙겨준다. 엄마는 시대에 뒤떨어진 50대의 전형적인 아줌마지만 20대의 푸름을 자랑하고 열정이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딸래미는 세세하게 엄마를 챙긴다.
유튜브도 함께하고 있는 우리 모녀를 보면서 어떻게 스물을 넘은 딸이 엄마랑 놀아주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 그렇게 노는 줄 알았다고 하면서 엄마와 딸은 친구같이 그렇게 자유롭게 노는 거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을 한다. 늘 그래왔으니까.
30년의 나이차이가 나는 딸과 함께 놀 수 있는 비결은 ‘소통’이다. 그래서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살짝 내어 보고 싶다.
첫째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다. 엄마의 눈높이가 아닌 아이의 눈높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는 모든 게 아이의 눈높이에 집중했다. 가장 쉬운 방법 중에 하나는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유아교육에 대한 지침서 같은 것을 읽은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어린아이가 사람들 속에서 함께 걸어 갈 때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그 때 당황한 어른은 어찌 할 줄을 몰라 당황해서 왜 우는 지를 묻지 않고 그치게만 하려다 낭패를 본다’고 했다. 당황하지 말고 사람들 속에서 아이의 키 높이에 앉아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커다란 사람들 속에서 아이가 느꼈을 두려움과 불안감이 그대로 전해진다고 한다. 우리 어른들도 낯 선 곳에 가면 두렵고 불안한데 아이에게는 많은 사람들 속이 낯 선 곳이라는 의미로 읽혔기에 실천을 할 수 있었다.
둘째는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들어주는 것이었다. 아이가 하는 말이 쓸 데 없는 말이 아닌 나름대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임을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우리 어른들 세대는 부모님의 말에 토를 달면 무례한 행동이라고 교육을 받아서인지 자신의 의사표현을 잘 하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아이들의 시대를 맞출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예를 보자면 주역에 천지비(天地比)라는 괘상이 있다. 하늘과 땅이 각각 자기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니 만물이 불통’이라고 했다. 30대에 이 부분을 들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은 ‘하늘과 땅이 각각 자기 자리에 있는 게 맞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늘이 땅이 되어보지 않고, 땅이 하늘이 되어보지 않으면 교감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 바꿔보기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치를 그 때 알았던 것이다. 지천태(地天泰)는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모양이다. 아이의 입장을 들어주는 것이 곧 소통하는 지름길이다.
셋째는 일찍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아이들이 부모를 이해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온실 속에 키우는 콩은 콩나물밖에 안되지만 광야에 던져두면 콩나무가 된다’는 서양속담을 빗대어서 아이들을 세상에 내 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축구하는 딸래미가 처음 숙소생활을 할 때 곱게 키운 탓에 숙소의 환경을 보고 엄청 놀랬다. 공주침대에 재우고 키웠는데 합숙하는 숙소에는 매트리스를 깔아놓는 환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축구하지 말고 집에 가자고 했더니 걱정 말고 가라고 했다. 하고 싶었기에 그런 환경은 충분히 감내하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그 때의 충격으로 나는 119응급차에 실려 가는 불상사를 겪었지만 딸래미는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자녀들과 소통하고 싶다면 간단하게 위에 있는 세 가지만 실천해 보면 될 것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