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을 향한 여정

두 번째, 기대와 다른 현실

by 우네바


탑승구역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지연은 계속되어 사스캐쳐완에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에서 차를 타고 4시간을 더 달려 나는 세상의 끝으로 왔다. 사스캐쳐완에서도 더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원주민이 주를 이루고 있고 간간히 백인도 보인다. 대중교통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토론토와는 달리 버스도 없고 이곳에서 차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당연히 한국인은 나 혼자뿐이다.


처음에는 한국인이 없다는 게 마냥 좋을 줄 알았다. 토론토에서는 한국인이 많은 건 물론이고 워낙 다양한 인종이 존재해서 토종 캐내디언이 실제로 쓰는 발음이나 억양, 사용하는 문장이나 단어 등을 익힐 기회가 많지 않다고 여겼다. 이제와 보면 진짜 토착민이 누구인지와 진짜 영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채 내린 오류였지만 당시에는 진짜라는 걸 접하지 못해 실력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라 스스로를 한정지 었었다.

그래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강제적으로라도 영어를 쓸 일이 많을 것이고 이는 곧 또 다른 목표점이었던 영어 실력 늘리기를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국인이 없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어디에서도 가릴 수 없다는 의미였다. 마트를 가도, 식당에 가도, 하물며 그저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그들은 그저 한 명의 개인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그 개인들이 모두 더해져 마을 전체로부터 감시당하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초반에야 시선에 주목받기를 원체 좋아하다 보니 이 상황이 나쁘지 않게 다가왔지만 하루하루 흐를수록 부담감이 더해지고 며칠이 지나니 더 이상 밖으로 나가기가 꺼려질 정도의 수준에 다다랐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원어민 친구가 한 명쯤은 있겠지라고 오만했던걸 반성할 정도로 한국 문화는커녕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동북아인은 처음 보는 사람들만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으려다가는 세월이 다 갈게 분명하고 오히려 밑바닥부터 한국이 어디이며 나는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게 더 쉬울 지경이었다. 더불어 마을 사람들은 그다지 친절하진 않았다. 모든 나라에는 각각의 사연이 있다는데 이곳에도 알지 못했던 깊은 사정이 있어 대부분의 주민들이 거친 편에 속했다. 그래서 진짜 원어민 친구를 많이 만들겠다는 큰 다짐은 온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바다는 아니지만 바다만큼 큰 호수가 있다. 그곳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 일이 없을 때면 종종 산책을 가곤 했는데 언젠가는 처음 보는 두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중 한 명이 다른 방향을 향해 욕을 내뱉는 걸 보았다. 처음에는 나에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경계를 했는데 이어진 알 수 없는 이상한 행동에 피해야겠다며 급하게 몸을 틀었더니 다른 여자가 침착하게 해 준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떤 남자가 나를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며 이곳에서는 몸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는 충고까지 이어졌다. 하마터면 큰일을 당할 뻔할 수 있었던 상황이 당혹을 넘어 두려움으로 이어지던 순간, 돈이나 마약이 있냐며 묻는 말에 이들 역시 사회가 정의한 정상성의 범주에는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고 고마웠던 마음도 잠시뿐이고 다급히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영어는커녕 한 마디도 안 하고 지내는 날도 있다. 일은 스케줄로 진행되다 보니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근무 시간으로만 정해져 있고 이외에는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서 어떤 때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입을 한 번도 안 벌리는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었다. 이 마을은 생존을 위해서 있을 건 있지만 그것뿐이다. 걸어서 20분 정도에 마트가 하나 있고 주변에 A&W와 같은 패스트푸드점도 세 군데 있다. 식당도 세 군데 있지만 한국 사람은 없으니 모두 푸틴이나 피자 등 서양 음식만 파는 곳인 건 당연하고 카페도 한 곳 있지만 이상하게 꼭 쉬는 날에는 문을 닫아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마을에서 조금만 더 벗어나면 큰 숲이 있다 이 숲을 따라 쭉 가다 보면 북극으로 갈 수 있을 테지만 걸어서는 절대 갈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다. 언젠가는 혼자서 하이킹을 해보겠다 마음을 먹고 입구까지 간 적이 있는데 겁을 먹고 돌아온 적이 있다. 야생동물 출몰주의 안내판보다 무서웠던 건 가는 내내 단 한 사람도 마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운동삼아 몇 번 왔던 곳인데 그날따라 문득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보던 범죄 장면들이 이곳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 피해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쳐 급하게 왔던 뛰어 돌아갔다. 직감이 강하게 들 때는 이를 믿으라고 했던가 더 가다간 고립되거나 납치당해서 더 이상 멀쩡할 수 없으니 돌아가야 된다는 경고가 강하게 느껴져 이를 믿고 돌아왔고 얼마 뒤에 사이렌 소리가 크게 들려 물어보니 이곳에서는 총과 관련된 사건은 물론 살인사건도 종종 일어난다는 얘기를 듣고 당시의 순간적인 판단에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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