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인터뷰 경험들

by 우네바




캐나다로 떠날 준비로 하면서 나는 희망감에 가득 찬 상태였다. 한국에서는 안 그래도 힘들었던 취업이 코로나로 인해 더욱 힘들어진 상황이었지만 캐나다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발에 치이는 게 일자리이고 이력서를 넣기만 해도 인터뷰를 볼 수 있고 자연스레 일도 바로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행복한 상상에 빠졌었다. 도착과 동시에 취업을 해서 최소 비용으로 단기간 내에 영주권을 취득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고 당연히 이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1년이라는 비자 기간은 불안감을 갖기도 충분했는데 이 기간이 길다면 길지만 영주권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불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익스프레스 엔트리(Express Entry, EE)는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신청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캐나다에서 최소 1년을 일해야만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빨리 일을 한다고 해도 캐나다에 도착하는 날과 동시에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일수가 부족해서 EE에 신청할 자격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구직활동은 한국에서 시작됐다. 레쥬메와 커버레터 작성, 링크드인 프로필 생성과 잡 어플라이까지 캐나다의 전형적인 구직과정을 그대로 실천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는 잠시였을 뿐이고 비교적 단순한 절차가 오히려 긍정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일을 지원하다 보니 예상보다 빨리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아무런 수확도 하지 못하고 출국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우선, 현지 회사에서 내 레쥬메가 마음에 든다고 해도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이메일 밖에 없었다. 캐나다 번호, 캐나다 주소, 특히나 SIN 넘버(캐나다의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사람을 회사에서 고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자를 무작정 지원해 주기에는 캐나다 경력이 없고 그렇다고 한국에서의 경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다른 지원자와 비교했을 때 여러 부분에서 부족한 면이 많았다.


조금의 실망감이 있긴 했지만 이는 잠시 뿐, 캐나다에 도착한 날부터 바로 레쥬메를 수정하며 어플라이를 이어나갔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썬더스톰으로 인해 왜 한평생을 살아온 내 나라를 두고 이 먼 곳까지 와서 생고생을 할 생각을 했는지 나의 선택에 대해 후회가 되었지만 15시간을 날아온 만큼 금방 돌아갈 수 없었다. 지하철을 어떻게 타는지도 모를 만큼 모든 게 낯설고 새로운 곳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살아낸다는 다짐 하나로 낮에는 캐나다 문화를 배우고 밤에는 구직 활동을 하며 버텨냈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지원하는 회사에 맞춰 레쥬메를 고치고, 링크드인을 업데이트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해보았다.




20군데 정도 레쥬메를 냈을 때쯤, 처음으로 인터뷰가 잡혔다. 캐나다에 온 지 나흘 만에 처음으로 인터뷰 기회를 준 이곳은 한인 회사였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한인 회사는 절대 가지 않을 거라 다짐했었다. 한인 회사에 대한 평판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겨우 한국을 벗어났고 캐나다라는 새로운 문화권에 왔는데 이곳에서 마저 한국식 회사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구직하는 과정에서 현지 회사만을 고집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현지 경험이 없고 비자마저도 짧은 외국인을 채용할 회사가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점점 줄어드는 시간을 보며 촉박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어 실력 역시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나름 듣고 말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며 왔는데 막상 현지 사람들과 말을 해보니 잘 들리지도 않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어디가 됐든지 캐나다에서의 경력을 먼저 만들고, 그동안에 영어 실력도 높여서 현지 회사로 이직하자는 생각으로 전략을 바꿔 한인 회사에도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운이 좋게도 빠르게 인터뷰를 보자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인터뷰 통보는 이메일로 전달받았다. 몇 시쯤에 전화 인터뷰를 하겠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이에 응하겠다는 답장을 보내는 형태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이루어진 전화 인터뷰는 아쉽게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전화 상으로는 간단한 사항을 물어볼 것이라고 예상과는 달리 체계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는데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데 경력과의 연관성도 떨어지다 보니 결국 다음 인터뷰는 진행되지 못했다. 겨우 잡은 기회였는데 허무하게 끝나게 되어 스스로에 대한 원망감과 좌절감이 크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보다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이곳에서 계란에 바위 치기로 무작정 일을 구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내 선택에 대한 후회도 일었다.


그렇다고 모든 걸 바로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고, 다행히도 첫 번째 인터뷰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두 번째 인터뷰 기회도 얻었다. 연달아 인터뷰가 잡히는 게 흔하지 않은 데 일이 잘 풀린 편이었지만 결과는 역시 참혹했다. 대면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인터뷰는 처음보다 더 냉정한 평가가 이어졌다.

“캐나다에 왜 오셨어요?”, “나이가 많은 건 알죠?”, “제가 본인을 왜 뽑아야 되는지 더 어필해 보세요”, “본인은 동물에 비유한다면 어떤 거에 비유하실 거예요?”

경력과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내세워 지원을 했었는데 굳이 경력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고 연관성이 떨어지는 질문들만이 이어졌다. 시차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간절한 마음 하나로 준비를 하고 간 내 시간이 아까울 따름이었다. 오퍼를 받았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거나 빠른 시일 내에 그만뒀을 것 같다.



그 이후에도 한인 회사 인터뷰 기회가 한 번 더 생겼었는데 앞서했던 경험들보다 더 수준이 떨어지는 인터뷰였다. 역시나 경력에 대한 질문은 전혀 하지 않고 “결혼하면 딱 좋은 사람이 있는데 결혼할 생각 없냐”라는 말만 삼십 분 동안 하다가 끝이 났는데 비자가 짧다는 이유로 일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도대체 레쥬메는 읽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인터뷰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음에도 왜 50분이나 늦게 왔냐며 시간 숙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내 탓을 돌렸다. 이를 보며 이런 사람들 때문에 다른 한인들이 욕을 먹는 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고 이런 수준이 사람들이 이곳에서 떳떳하게 한 자리 잡고 살아가는 게 어이가 없기도 하고 오히려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결심 때문이었는지 현지 회사의 인터뷰도 몇 번 이어졌고 캐나다에 온 지 한 달이 되는 시점에 파트타임을 구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아니었고 시즌으로 진행되어 이후에 다른 일을 구해야 했지만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이었고 식사와 교통도 제공되어 큰 만족을 하며 다녔다.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거나 저녁에 출근해서 아침에 퇴근하는 등 근무 시간은 일정하지 않아 몸이 정말 힘들었지만 현지 일인 만큼 캐내디언을 많이 만났고 친구들도 만들며 꿈만 꾸고 소문으로만 듣던 캐나다의 근무 환경을 경험하고 나니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지만 그게 무엇이 됐든 그 끝에는 바라던 곳에서 바라던 일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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