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파트타임, 영화 촬영에 대하여

처음으로 해본 캐나다 로컬잡

by 우네바


캐나다에 온 지 한 달이 되던 날, 어느 때와 다름없이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낯선 메일 한 통을 발견했다. 이곳에 오자마자 지원을 했던 회사에서 드디어 연락이 온 것이다. 일은 당장 내일모레부터 시작이며 원한다면 회신을 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고민을 할 것도 없이 바로 답장을 하려고 했으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으니 바로 딱 하루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카지노 오퍼도 들어왔기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미래를 생각하면 카지노를 선택하는 게 당연했지만 이 하루밖에 안 되는 일이 내가 한 때 일을 하길 소망했던 영화 촬영 일이라 쉽게 거절을 할 수 없었다. 한국도 아닌 캐나다에서 영화 촬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였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한 때 내가 꿈꿔왔던 일이었기에 결국 이 날 하루를 위해 풀타임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가 몰려왔는데 이유는 바로 근무지역이 브램턴이었기 때문이다. 토론토가 서울이라면 브램턴은 인천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곳인데 문제는 서울과 인천은 대중교통이 잘 이루어져 있어 지하철로 쉽게 갈 수 있지만 토론토에서 브램턴은 지하철 노선이 없고 버스를 타고 가야 되는데 이마저도 환승이 쉽지 않았다. 심지어 새벽 4시까지 출근을 했어야 해서 치안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걱정 중 하나였다. 주변에서 새벽에 는 길거리에 마약 중독자나 범죄자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게 생각이 나서 출근길에 대한 걱정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때 마침 TTC(토론토 교통회사 중 하나) 지하철 1호선의 종점인 키플링 역에서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아 용기를 내 새벽 3시에 출근길을 나섰다.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온갖 마약범이 가득할 것이라 예상한 바와는 달리 정말 고요했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만 몇 대 보일 뿐 지나가는 라쿤도 보이지 않았다. 토론토의 야간 버스인 블루나이트버스에서도 나와 같이 새벽부터 출근을 하기 위한 사람들만 있을 뿐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쳐야 될 정거장의 수가 많아 계속 주변을 살피며 잔뜩 긴장한 채로 도착지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랐고 도착을 하자마자 쏜살같이 버스에서 뛰쳐나왔다.



그렇게 도착한 키플링 역 주변은 한국의 도시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건물의 모양이 좀 다를 뿐 길거리 미관은 한국과 바를 바가 없어 보였다. 이를 보고 순간적으로 집이 생각나 내가 외국까지 와서 이 새벽에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다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울컥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예상 시간을 한참 지났는데도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도 셔틀버스도 보이지 않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출근하려는 TTC 직원들만 보였고 스쿨버스처럼 생긴 버스가 와서 그 버스인가 싶어 괜히 기웃거려 봤지만 아니었지 그냥 지나쳐갔다. 당시에는 이곳에서 출근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안 온 거라 판단했고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서 결국 리프트(택시 회사 이름)를 타고 브램턴까지 갔고 $40를 냈다.


키플링이 브램턴에서 가까웠던지 예상보다 비용이 덜 나왔지만 일을 하기도 전에 택시비로만 이만큼의 비용을 쓴 게 기분이 좋진 않았다. 하지만 이 생각도 잠시 도착장소가 예상치 못한 장소여서 당황스러움만이 가득해졌다. 택시기사마저도 여기가 도착장소가 맞냐고 몇 번이고 확인할 정도로 의심스러운 장소였는데 바로 도로 한복판에 있는 공사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박스와 굴삭기만이 잔뜩 한 이 장소가 진짜 촬영장소가 맞는지 이대로 실종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가득했지만 우선 지도상으로 보았을 때는 일치했기에 택시에서 내려 가까이 가보았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보이는 건 컨테이너뿐이었고 돌아가야 되나 더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면 어떡하나 괜히 시간이랑 돈 낭비를 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려던 찰나에 앞에 사람이 있는 걸 보았고 수상해 보이지는 않아서 도움을 요청할 목적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촬영 장소가 맞았고 곧이어 차를 타고 퇴근을 하던 직원이 나를 보고 안에 데려다주겠다며 목적지까지 무사히 안내해 줬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을 한 후 긴장이 풀리려는 순간, 이제부터 모든 것을 영어로만 해야 된다는 생각에 다시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계약서를 쓰고 지시사항을 듣는 모든 과정이 낯설어서 많이 헤매기도 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일은 실수 없이 잘 마칠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근무 환경이었다. 촬영이라는 특수한 근무 환경상,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서 기본적으로 18시간 이상, 즉 내 하루를 모두 투자해야 된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이래서 사람들이 캐나다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구나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실수를 해도 바로 화를 내는 사람이 없고 말로 잘 이해시키려고 하고, 촬영이 힘든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 계속 웃으며 배려하고 서로를 도우며 일을 하는 게 놀라웠다. 직급에 관계없이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달려가서 괜찮은지 확인하고,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문제점은 바로 지적해서 바꾸려고 하는 게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이 날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고 눈보라도 계속되는 등 날씨가 굉장히 안 좋은 날이었는데 야외촬영인걸 몰랐던 나는 옷을 남들에 비해 얇게 입고 갔고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고통스러워했었다. 주변에서는 바로 걱정을 하며 챙겨줬고 이후에는 더 높은 직급의 스태프들 여러 명이 와서 계속 건강을 확인해 주는 상황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촬영에서 부상자가 생기면 안 되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제일 낮은 직급의 나를 여러 명이 와서 적극적으로 챙겨준다는 거는 지금까지의 내 상식 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들이 나를 챙겨줄 때 진심을 다해서 챙겨주던 게 느껴져서 지금까지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일은 하루가 아닌 한 달 동안 하게 되었다. 이 날 이후 계속 연락이 와서 촬영이 끝날 때까지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첫 촬영 이후에 제대로 흥미가 생겼던 터라 망설이지 않고 바로 수락을 했다. 몇 번 더 하다 보니 점점 익숙해져서 굳이 풀타임을 구하지 않고 계속 이 일을 할까 싶었지만 건강 상의 문제로 그만둬야만 했다.


장점이 확실한 만큼 단점도 확실했다. 출퇴근시간이 유동적인데 근무시간이 너무 길어서 연이어 출근해야 되는 경우 세 시간도 겨우 자고 출근해야 되는 날이 있었으며, 스튜디오 촬영을 할 때는 다행이지만 야외 촬영의 경우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감기를 달고 사는 일이 대다수였다. 불행히도 일을 하는 동안 야외 촬영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야간 촬영도 몇 번 있어서 달이 뜰 때 출근하고 해가 뜰 때 퇴근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다행히도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시차적응이 덜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근무시간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지만 수면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또 다른 문제는 식사였다. 삼시세끼 다 제공되긴 했지만, 식사 패턴이 굉장히 불규칙했다. 촬영이 오후 1시에 시작되면 오후 12시, 오후 7시, 오후 11시에 밥이 제공되고 촬영이 오전 11시에 시작되면, 오전 10시, 오후 4시, 오후 9시에 밥이 제공되는 등 매번 바뀌는 식사 시간 역시 내가 모르는 사이 영향을 미쳐 건강 문제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자칫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될 상황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상상해보지 못했던 그리고 꿈꾸었던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드디어 조금씩 캐나다에 적응해가고 있던 이제 막 시작하던 시점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서 드럭스토어에서 파는 영양제와 한국에서 가져온 소염제로 어떻게든 버텨내며 일을 끝냈고 그 뒤로 며칠간은 굉장히 크게 앓았다.


정신적으로는 행복했지만 육체적으로는 굉장히 고단했기에 참여했던 촬영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나도 이 일을 그만두었다. 원하는 만큼의 만족감을 얻기도 했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더 이상은 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정말 어렵게 기회를 얻어 시작한 첫 파트타임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한 달 동안 캐나다의 문화를 많이 체감할 수 있었고 더불어 캐나다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을 계기로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도 된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초기 인터뷰 경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