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받은 리퍼와 잡오퍼

캐나다 직업 변천기 1편: 카지노 딜러

by 우네바


캐나다에 온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던 때였다. 1년이라는 워홀 기간 안에 어떻게든 비자 연장을 도와줄 회사를 구하기 위해 로컬잡, 한인잡 구분 없이 레쥬메를 돌렸고, 몇 번의 인터뷰 기회를 얻었지만 최종 관문인 잡오퍼 획득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벌써 남은 기간이 한 달이나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영주권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멀어졌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어서 엄청난 스트레스는 받던 찰나에 한 회사에서 잡오퍼를 받게 되었다.


근무 제안을 받게 된 직종은 바로 카지노 딜러였다. 살면서 카지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카지노에서 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실제로 해 본 경험조차도 없었던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이유는 바로 친구 덕분이었다.


연고지도 없는 이 낯선 땅 속 비싼 물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일을 구하는 게 급선무이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를 워킹으로만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일은 구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캐나다에 오기 전에 꿈꿨던 로망 중 하나인 외국인 친구 만들기를 실행하기 위해 잡어플라이를 함과 동시에 거의 매일같이 언어 교환 밋업에 나갔고 그때 우연히 카지노에서 딜러로 근무하고 있던 친구 H를 만나게 되었다.


본인의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던 H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을 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꺼내며 사실 내가 아닌 다른 친구에게 먼저 리퍼(Reference, 추천서)를 제안했었다. 처음에 옆에서 들었을 때는 나에게 온 제안이 아닐뿐더러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직종이어서 내가 할 일은 전혀 아니라 판단하고 듣고 흘려버렸었다. 하지만 이후에 점점 일을 구하는데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H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고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마침 제안을 받았던 친구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리퍼의 기회는 관심을 계속 표하던 나에게로 넘어오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리퍼는 거의 천하무적이다. 만약 A 씨가 B라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을 때, 리퍼없이 레쥬메를 내면 인터뷰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낮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A 씨가 현재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C 씨의 리퍼를 받게 된다면 인터뷰를 볼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물론 리퍼를 주는 사람의 회사 내 평판 역시 정말 중요하다. 회사 내에서 C 씨의 평판이 여러모로 좋았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이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믿고 인터뷰를 진행해도 된다고 판단을 하지만 평판이 좋지 않았다면 리퍼를 들이밀어도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리퍼를 받는 인터뷰이 역시도 중요하다. 신뢰가 높은 C 씨의 리퍼를 받은 사람이라 기대를 했는데 C 씨보다 한참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회사에서는 C 씨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그 뒤로는 C 씨의 리퍼 신망도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그래서 리퍼는 받는 사람과 해주는 사람이 동시에 평가되기 때문에 리퍼를 잘해주지도 않고 얻기도 힘들다.



그래서인지 막상 리퍼의 기회를 얻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고민된 부분은 근무 환경이었다. 내가 원하던 로컬 회사에서 일할 수 있어서 영어를 많이 쓸 수 있고, 외국인 동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이 문제였다. 급여는 최저 이상이었지만 근무 시간이 유동적이어서 급여가 일정하지 않아 투잡을 해야 될 수도 있다는 것,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 4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점, 스케줄제이다 보니 밤이나 새벽 시간에 일해야 될 수 있는데 문제는 여기까지 갈 때 타야 되는 버스가 우범 지역을 지난다는 문제가 있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니었기에 투잡은 고려하지 않았었고, 거주지를 옮기자니 근처에 마땅히 거주할 곳이 없었을뿐더러, 총기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을 항상 지나야 된다는 게 고민이 안 되려야 안 될 수 없었다.


이런 내 고민을 들은 H는 그런 고민은 잡오퍼를 받은 후에나 하라며 오히려 자신의 리퍼를 이용해서 인터뷰 연습을 한다는 생각으로 도전이라도 해보라고 나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틀린 말도 아니고, 흔치 않은 기회를 그냥 보내고 싶지도 않아서 긴 고민 끝에 결국에는 어플라이를 하게 되었다.


어플라이를 한지 하루 만에 HR에서 전화가 왔다. H에게 얘기를 들었다며 인터뷰 참석 여부를 물었고 당연히 참석을 하겠다고 답변했다. 인터뷰는 전화를 받은 날로부터 일주일 뒤에 진행됐다. 이전까지는 한인회사의 인터뷰만 봤던 터라 실제 영어 인터뷰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냥 인터뷰도 아니고 리퍼까지 받은 인터뷰였기에 합격 유무를 떠나서 망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구글과 챗지피티를 이용해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들고 이에 대한 답변을 몇 날 며칠 외우며 인터뷰를 준비했다.


나중에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참석자의 말을 들어보니 인터뷰 질문 내용을 리퍼해준 사람한테 왜 안 물어봤냐는 말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H에게 인터뷰 준비까지 도움을 받으면 너무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서 준비를 했던 건데 이런 부분마저도 도움을 받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너무나도 다른 정서를 가진 이 문화가 다시 한번 낯설게 느껴졌다.




인터뷰는 오후 1시쯤 진행되었는데 환승을 세 번이나 했어야 했기에 오전 일찍부터 나와서 버스를 타고 카지노로 향했다. 우범 지역을 지나야 한다는 두려움과 인터뷰 걱정으로 잔뜩 긴장을 했었는데 막상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니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초조함이 많이 풀릴 수 있었다. 그렇게 먼 길을 지나 도착한 카지노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번쩍이고 화려한 불빛과 정장과 드레스 차림을 한 사람들로 가득한 사람들이 많은 곳일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눈빛과 며칠은 씻지 않은 것 같은 옷차림, 왠지 모르게 험악한 인상을 가진 사람들이 잔뜩 했고 카지노 외곽은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역시 카지노라는 이름답게 내부는 규모가 꽤 컸는데 맨 위층에 위치한 인터뷰장에 어떻게 가는지 알 수가 없어서 몇 번을 헤매다 지나가는 직원에게 물어 겨우 도착을 했다. 도착해서 보니 나를 포함해서 거의 10명 이상이나 되는 인원이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총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일대일 인터뷰가 진행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다대일 인터뷰와 시뮬레이션 시현으로 구성된 인터뷰에 속으로 엄청나게 비명을 질렀다. H에게 인터뷰에 대해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봤는지, 왜 혼자 준비하기로 결정했는지 여러 가지로 엄청난 후회가 이어졌다.



처음 진행된 인터뷰는 흔히 생각하는 기본적인 인터뷰였다. 왼쪽에서부터 오른쪽 순으로 첫 번째 사람은 1번 질문에 답변, 두 번째 사람은 2번 질문에 답을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인터뷰어가 모든 답변을 수기로 쓰는 게 굉장히 특이했다. 당시에는 그게 보편적인 줄 알고 한국과는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른 인터뷰를 보다 보니 그냥 이곳만의 방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속한 첫 번째 그룹은 총 7명으로 구성되었고 앉은 순서대로 번호가 부여되어 나는 4번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긴장되어 식은땀을 흘리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처음도 끝도 아닌 딱 중간이라 심지어 3번도 아닌 4번을 받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답변한 질문은 2개였는데 내 바로 앞 사람인 3번 사람이 받은 2개의 질문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질문들은 단어라도 캐치해서 대충 이해라도 했는데 이 질문들은 이해 자체가 되질 않았다. 하필이면 3번 인터뷰이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어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끝을 냈는데 이 사람이 답하지 못한 질문에 내가 답변을 해야 될까 봐 굉장히 식은땀을 많이 흘렸다.


다행히 나는 그다음 질문을 받았는데 첫 번째 질문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할 건지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내가 준비한 예상 질문과 정확히 일치하여 문제없이 답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질문은 일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팀워크를 통해 극복해 낸 적이 있는지를 물었고 준비를 한 답변은 아니었지만 관련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기억을 되살려 답을 하고 잘 넘길 수 있었다.



두 번째 인터뷰는 시뮬레이션 인터뷰로 인터뷰어가 알려주는 걸 익히고 이를 직접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새로우면서도 약간의 사고능력을 요구하는지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해서 창피를 당할까 봐 굉장히 떨렸었다. 그리고 시행을 기다리는 동안 문뜩 H가 지나가는 말로 했던 것들이 인터뷰에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닫고 다시 한번 H의 도움을 끝까지 받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다행히도 인터뷰는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대보다 괜찮게 보고 나왔다. 당일에 최종 합격 전화를 준다고 했지만 기대는 안 하고 있었는데 막상 6시가 다 되어도 전화가 오지 않으니 인터뷰를 잘 봤는데도 일을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깊은 좌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합격 통보를 받아 정말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처음으로 잡오퍼를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 한 편, 내가 잘해서 해냈다기보다는 리퍼가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크게 들어 왠지 모르게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국에서 경쟁을 해낼 자신이 없어서 이곳에 왔는데 이곳에서는 더 많은 경쟁과 더불어 인맥마저도 관리해야 된다는 새로운 압박감에 압도당한 순간이었다.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현실이 기쁘면서도 굉장히 두렵고 낯설었다.



결론적으로 잡오퍼는 거절했다. 합격 통보를 받고 계약을 하기 전까지 2주 간의 기간이 있었는데 일주일을 남기고 있었던 때에 한 달 전에 지원했던 다른 일에 대한 오퍼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던지라 H와 긴 대화를 거친 끝에 카지노 딜러를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카지노 딜러 일을 실제로 해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조금의 아쉬움이 남긴 하다. 그렇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도전하고 그 과정이 어쨌든 좋은 결과를 얻어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큰 용기가 생겼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20대 후반에 떠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