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에 떠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by 우네바




드디어 꽤나 긴 시간 동안 바라왔던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영어 실력도, 돈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내가 과연 해외를 갈 수 있을 운명일지 확인해 본다는 게 비자를 받는 기회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캐나다 워홀은 호주와 달리 추첨을 통해서 정해진 인원만 갈 수 있었기에 4년 동안 신청을 해도 비자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꽤 존재했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한 번에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동시에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운을 시험해 본 건데 한 번에 비자를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는 뛸 듯이 기뻤고 믿기지 않았다. 드디어 해외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가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신청할 수가 없어 포기를 했었고, 졸업 직전에 운이 좋게 해외 인턴 경험을 하면서 국내 취업이 아닌 해외 취업을 당연한 목표로 설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무산되어 모든 계획은 접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시 해외로 나가는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이 시점에 캐나다를 갈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있어서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



해외에 대한 로망을 갖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사실 해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한국인의 전형적인 인생 수순대로 사는 걸 당연한 절차라고 여기며 살아왔고 이를 벗어나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 하지만 배우고 싶지 않은 전공을 억지로 배우며 학교를 다니는 것은 고역이어서 휴학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는 해외여행을 가는 게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유행을 한다는 게 SNS의 보급화가 시작되면서 여행에 대한 콘텐츠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를 따라 여행을 가고 이를 자신의 계정에 업로드하며 과시를 하는 게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나는 앞서 나가는 아이콘이 되고 싶었고 여기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아 휴학을 한 첫 한 해 동안 해외여행을 세 번을 갔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해외살이에 대한 호기심이 시작되었다.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고 행복한 경험들로 가득했으며 해외에 가기만 하면 새로운 것들이 가득하고 현실에 대한 고민은 잊을 수 있는데 이 경험을 연속적으로 하고 나니 로망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 없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해외 이주라는 목표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워홀을 선택한 이유는 한국이라는 존재 자체에 질려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싫고, 갓생이 유행하는 게 경악스러웠고, 취업조차도 경쟁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게 싫었다. 더 나이가 들면 취업하기 힘드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취업을 해야 하고 돈을 악착같이 모아야 한다는 게 끔찍했다. 한 가지 일을 평생동안 해야 된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경박스러운지 모르겠고, 특정 나이대에 꼭 해야 된다고 하는 건 왜 이렇게 많은지 그걸 다 하는 사람이 있긴 한 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곳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지냈지만 한국은 마치 내게 어울리지 않은 옷은 입을 기분을 들게 만드는 곳이었다.


나는 내 스펙에 만족하는데 세상을 이 스펙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더 채우기를 요구했고 이 경쟁을 계속 이어갈 자신이 더는 없었다. 딱 1명을 위한 문에 들어가기 위해 1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달려들고 있는 것을 그 길 한 복판에 서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보니 다른 길을 가고 싶는 사람들이 보였고 나도 이들을 따라 반대편 길로 달리기로 결정했다.



캐나다를 워홀 국가로 고른 이유는 언어와 영주권 때문이다. 워홀을 가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린 나이도 아니었기에 가진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고 싶었다. 호주는 캐나다와 함께 최종까지 고민한 국가였지만 호주 이민은 이미 어렵다는 말을 워낙 많이 보았고 비영어권 국가도 고민해 보긴 했으나 그 나라 언어를 할 줄 모르면 일을 구하는 게 쉽진 않을 거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이곳에 오기로 결정을 했다.


나의 모든 환상이 실현될 것이라고 행복한 상상을 하며 출국 준비를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기대는 줄어들고 두려움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워홀을 실패하고 일찍 귀국을 하게 된다면, 1년을 잘 채운다고 해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만약 다 잘 돼서 캐나다에 남게 된다면, 이러한 만약이라는 고민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잘 되면 잘 되는대로 그곳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야 될 일들이 걱정되었고 잘 안 풀려서 돌아온다면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현실의 벽을 마주하게 될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리는 게 불안해졌다. 하지만 가면 가는 대로 안 가면 안 가는 대로 후회를 할 테니 어차피 후회할 거 일단은 도전해 보자고 다짐하고 캐나다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캐나다 영주권 계획은 캐나다 땅을 밟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후회되는 일이 일어날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영주권이라는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해나갔다. 영주권 계획이라는 게 특별한 건 아니고 바로 취업이었다. 1년밖에 안 되는 비자 특성상 장기 거주를 위해서는 회사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캐나다에 도착하고 빠른 시일 내에 비자를 지원해 주는 회사에 취업을 하는 게 제일 급했다. 그래서 IT가 취업될 확률이 높다는 검색 결과를 따라 캐나다에 가기 전까지 IT 기술을 배웠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정 지역에서 영주권을 빨리 받을 확률이 높다기에 그 지역의 일을 찾아봤지만 구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미리 일을 구하고 가는 게 유리하다는 말에 현지 회사에 레쥬메를 보내보며 희망을 꿈꿨지만 지금까지도 답변은 받지 못했다. 해외를 여행으로 가는 것과 살려고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준비하는 순간부터 깨달았다. 여행 준비는 매 순간이 즐겁고 설레기만 했는데 거주 준비는 하나부터 열까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가득한 또 다른 현실이었다.




결국 애매하게 준비된 채로 토론토에 왔다. 캐나다에서 제일 대도시이자 영주권을 받기 제일 힘들다는 곳. 토론토는 몇 년 전에 여행으로 와서 그때의 그 모습을 기대하고 왔는데 다른 점 하나를 간과했으니 그게 바로 계절이었다. 그때의 토론토는 봄이어서 꽃이 가득하고 밝은 날씨가 이어졌었는데 이번에 본 토론토는 회색 하늘이 계속되고 칙칙함만이 가득했다. 심지어 캐나다에 도착한 날 선더스톰이 와서 외출은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나마 날씨가 진정되어서 외출을 하고 나서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나를 도와줄 가족도 친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교통도 건물도 언어도 모든 게 다른 이곳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배우고 혼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게 막막하다. 벌써부터 다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지만 그렇기엔 아직 크게 해 본 게 없다. 지금은 만날 사람도 없고 하는 일도 없지만 매일매일 이튼센터라는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는 큰 쇼핑몰을 구경한 후, 토론토 레이크에서 거위를 보고, 도서관에서 영어 수업을 듣고, IT 수업을 계속 들으며, 레쥬메 돌리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왕 캐나다까지 왔으니 최대한 모든 것을 즐기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이곳에 와서 세운 새로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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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