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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25. 2024

잃지 말아야 할 것들 9

춘재, 헤매다


춘재는 아들 영철이 돌아온 이후부터 맞은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그들의 하위 조직원이 되었다. 춘재는 아들인 영철이가 범죄자가 되면 자신 죽어서 죽은 친구, 영철이의 친아빠를 만나게 되면 얼굴을 들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춘재는 영철이가 평범하게 보통 10대처럼 살아가게 하고 싶었다.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다.
영철이를 괴롭혔던 조직은 춘재에게 슈퍼마켓에 오는 손님 중에 숨겨둔 돈이 많을 것 같은 사람에 대한 개인 정보를 빼내라는 지시를 내려왔다. 춘재는 최대한 알 수 있는 정보를 기록했다. 춘재는 배달이나 다른 여러 방법으로 개인 전화번호, 주민증, 사는 곳, 집 앞 택배의 종류, 식구들, 옷이나 신발, 가방 등의 브랜드명, 슈퍼에 오면 주로 뭐를 사는지 등을 기록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슈퍼마켓에 아라가 들어왔다. 최근 타깃이 될 사람에 대한 정보를 빨리 안 준다고 조직원이 난리 치기 시작했다. 춘재는 부잣집 마나님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라를 보는 순간 다음 타깃으로 정했다. 춘재에게는 사진을 찍는 안경이 있었는데 그 안경으로 아라의 모든 정보를 찍기 시작했다. 아라는 직전까지 본인의 아들과 통화를 했는지 손에 들고 있던 통화 목록이 춘재에게 보였다. ‘아들 아진이’가 마지막에 통화한 목록에 있었다. 춘재는 아라의 핸드폰에 펼쳐져 있는 아라의 아들 전화번호도 찍었다.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개인 정보를 훔쳐야 할 시간이 되었다. 한숨이 나왔다.
‘내가 도둑질까지 하게 되다니!’
아라가 장을 보는 중간 춘재는 그 근처 박스 정리하거나 물건 욺 기는 척하면서 아라의 열린 가방에서 슬쩍 지갑을 빼냈다. 자연스럽게 지갑을 들고 슈퍼마켓 안에 있는 창고에 들어가 아라의 지갑을 열고 주민증과 안에 있던 작은 수첩을 펼쳐 빠른 속도로 찍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지갑 안에 수첩도 들고 다니는구나.’
그때 아라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계산대에 사람이 없으니, 아라는 주인이 있을 법한 창고 근처에서 큰 소리로 가게 주인을 불렀다. 급하게 나온 춘재는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아라의 질문에 춘재는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손짓하며 보미가 원하던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다음 짐을 정리하는 척하며 아라 근처에 가서 지갑을 아라의 열린 가방 안에 넣어 놓았다.
‘이 사람은 평소 좀 둔한 성격인가 봐. 지갑을 누가 갖고 갔다 다시 갖다 놓는 것도 모르다니. 가방을 연 채로 다니고 없는지도 못 알아채는 스타일이네. 아이고 아줌마. 아줌마가 다음 범행의 대상이 되겠소.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제발 당하지 마시오.’
춘재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 너무 괴로웠다. 시간이 지나자, 조직은 춘재에게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어디로 오라고 지시하더니 춘재에게 강제적으로 교육을 하고 매뉴얼을 암기하게 했다. 춘재는 그 후 전화금융사기범으로 투입되었는데, 하루에 4시간 정도 전화를 해댔다. 창고 같은 곳에 엄청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들도 춘재처럼 전화하며 보이스피싱 즉 전화금융사기범이 되어 가고 있었다. 춘재는 슈퍼를 보다가도 조직이 부르면 슈퍼를 보미나 영철이에게 맡기고 가서 몇 시간 동안 사기전화를 해댔다. 그들은 자세한 매뉴얼과 개인자료를 건네주며 설명서대로 읽으면 된다고 했다.
춘재는 처음에는 무섭고 피해자에게 미안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양심의 가책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춘재는 어느 순간 습관적으로 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피해자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지금은 그들이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그냥 영화나 드라마의 가짜 존재인 것처럼 여겨졌다. 춘재는 자신의 이런 변화가 너무 무서워 화들짝 놀랐다. 조직이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다. 춘재는 경상도 출신이라 표준어를 잘 사용하지 못해 설명서를 읽는 것도 매끄럽지 못했고, 연기력도 안 되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 의심해서 신고한다고 소리치거나 비아냥거리며 보이싱범죄 저지르지 말라며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아지자, 조직원들은 춘재에게 더 이상 전화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춘재에게 어떤 장소에 가서 돈을 받아오라고 시켰다. 춘재는 영철이와 부인에게는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고 나갔다. 조직원들이 춘재를 도청하고 있으니, 딴짓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은행 앞에서 할아버지를 만나 1억을 받았는데, 그때 경찰이 있었던 것 같았다. 갑자기 저 멀리 행인으로 보이던 두 사람들이 멀리서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춘재는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뛰어갔고, 그들은 춘재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춘재는 급하게 지하로 달리며 가방 안 현금이 든 비닐만 빼고 가방은 버렸다. 지하철 역사 안으로 내려갔다. 지하철 역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6명 정도의 노숙인들도 보였다. 아까 만난 할아버지가 건네준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 안에는 현금 1억 원이 있었다. 남녀 화장실 앞에서 춘재는 잠시 고민했다. 춘재는 재빨리 눈치를 살핀 후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남자 화장실은 경찰에게 금방 수색당할 게 뻔했다. 다행히 여자 화장실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핸드폰을 보거나 딴생각들을 했고, 그 누구도 타인의 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으나 누구 하나 쳐다보거나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춘재는 화장실의 제일 끝 칸의 마지막 변기 뒤편쪽에 검정 비닐봉지를 숨겼다. 비닐을 변기 위쪽에 쓰레기처럼 두었다. 의심이나 감시의 눈길이 걷어질 때 몰래 다시 가서 찾아갈 생각이었다. 춘재는 여자 화장실을 나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몇 분 앉아 있는 고객 쉼터에 앉았다. 아까 춘재를 쫓던 경찰이 두리번거리며 찾았으나 그들에게 춘재를 의심하는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을 찾아가고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춘재는 한 시간을 거기서 계속 기다렸다. 추웠지만 그쯤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돈만 조직원에게 전달해 주고 이제 춘재는 손을 떼려고 결심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조직원의 우두머리를 찾아가서 어떤 일이 있어도 신고하지 않을 거니 이제 춘재와 영철을 내버려 두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돈이라도 달라면 슈퍼마켓을 정리해서라도 주려고 했다. 춘재는 이번 돈만 무사히 전달하면 더 이상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경찰은 없는지 살폈다. 돈이 든 비닐을 눈에 띄지 않게 넣기 위해 지하철 내에 있는 편의점에서 저렴한 천 가방도 하나 샀다. 춘재는 천가방을 사면서도 여자 화장실 쪽을 계속 지켜봤다. 가방을 산 후 다시 고객 쉼터에 앉았다. 춘재가 고객쉼터에 있는 한 시간 동안 많은 여자들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다. 춘재는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 누구도 돈이 든 비닐을 발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춘재는 느낌으로 알았다. 아무도 돈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혹 누가 검은 비닐봉지를 본다고 하더라도 쓰레기를 버리고 간 것처럼 여겨질 만큼 사용한 흔적이 많이 나는 비닐이었기 때문에 춘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한 여자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춘재는 이상하게 그 여자를 곁눈질로 쳐다보는 데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을 그 여자에게서 받았다. 춘재는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설마 그녀가 돈이 든 비닐을 발견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화장실을 매의 눈으로 계속 관찰했다. 춘재의 불안한 예감이 맞았던 것일까?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는 검은색 비닐을 들고 나왔다. 물건을 보는 순간 춘재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기저기 묻다가 춘재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왔다. 그녀는 여자 화장실에서 발견한 비닐이니 당연히 비닐의 주인은 여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객 쉼터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 유일한 여자인 할머니한테 물었다.
“할머니, 혹시 이거 두고 가셨어요?”
“아니.”
춘재는 모자 사이로 그 여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놀랐다. 그녀는 며칠 전 슈퍼마켓에 왔던 아라였다. 춘재는 그녀가 본인을 알아볼까 싶어 긴장했지만, 그녀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저 여자가 왜 서울까지 왔지? 왜 지금 저걸 들고 놔서 내 일을 방해하는 거야? 저 여자의 정체는 대체 뭐지? 저기서 신고하면 끝장인데.’
춘재는 그녀에게 다가가 강제로 뺏어서 도망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뺏어 달아나는 순간 안내소에 있는 지하철 직원이 신고할 것 같아 망설였다. 안내소를 빠르게 쳐다보는데 다행히 거기에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그냥 훔쳐 달아나 버릴까? 저 여자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경찰에 신고까지 하겠지? 그전에 내가 수를 써야겠어.’
춘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검은색 비닐을 들고 다시 화장실에 들어갔다. 당황한 춘재는 화장실 입구를 쳐다봤다. 잠시 후 다시 그 여자가 나왔다.
‘어랏? 비닐이 없다.’
대신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 보이지 않았던 시장바구니 같은 천가방이 보였다. 춘재는 그녀가 천가방안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넣었나 보다 생각하고 그녀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현금으로 지하철 무인 매표소에서 표를 샀다. 동전을 들고 있는 그녀에게 한 노숙인이 다가가서 돈을 달라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여자가 그 노숙인과 뭐라고 말하더니. 잠시 후 그녀는 동전뿐만 아니라 지갑을 꺼내 지폐 몇 장을 꺼내 노숙인에게 주었다. 그 뒤로 몇 마디 더 주고받더니 그녀가 천 바구니를 노숙인에게 줬다. 춘재는 놀랐다. 노숙인이 그걸 받아 들고 어디론가 갔다. 아라는 지하철을 타러 들어갔다. 춘재는 아라를 따라갈지 고민했으나 천가방을 들고 있는 노숙인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노숙인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노숙인은 그 가방을 들고 1층으로 올라갔다. 춘재는 노숙인 바로 뒤에 바짝 붙어갔다. 그에게서는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겼다. 춘재는 악취에 눈을 찌푸리고 계속 노숙인을 따라갔다. 노숙인이 걸어가고 있는 지하철역 지상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춘재는 노숙인의 입을 막고 팔을 꺾은 후 공원의 나무 많은 구석으로 끌고 들어갔다.
“읍. 너 뭐야? 나한테 왜 그래? 나한테 돈 없어.”
“그거 내놔.”
“미친놈. 노숙자, 거지 것 뺏는 놈이 어딨어. 어떤 여자가 노숙인들 쉼터 관계자에게 주라고 줬어. 책이나 본인이 그 양말 같은 거래. 너 거지야? 어디 가져갈 게 없어서 노숙이들에게 물건 뺐어? 너도 참 불쌍한 사람이군. 겨우 양말 얻으려고 사람을 납치해? 그것도 거지를?”
“시끄러워. 그거 주고 가.”
“아 아까 아줌마한테 꼭 갖다 준다고 약속했는데, 에이씨. 몰라.”
“시끄러워. 당장 꺼져. 처맞기 싫으면 꺼져.”
“그 참 거친 사람이네. 나보다 더 불쌍한 놈이구먼. 별 필요도 없는 물건인 것 같은데, 그냥 너 다 해라.”
노숙인은 춘재에게 천 가방을 주고 갔다. 춘재는 급하게 도망가는 노숙인을 쫓아가지 않고 천 가방을 편의점에서 산 가방 안에 급하게 넣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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