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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Mar 13. 2024

보이스4

말이 안되지 않나요?


새해 1월의 어느 날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번호로 아라에게 전화가 왔다. 아라는 평소 직장에서도 전화 올 일이 있고, 택배도 자주 받는 편이어서 대부분의 전화를 받는다. 모르고 못 받는 경우는 문자로 보내달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다시 답변이 없으면 그냥 홍보 전화라고 생각하고, 직장이나 택배기사님들은 문자를 다시 보내시니 확인 답변만 하면 된다. 직장 동료의 휴대전화 번호를 다 저장해 놓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바로 옆자리에 있는 동료와는 1년을 같이 지내면서 카톡으로 연락하고 카톡으로 전화했다. 그분의 휴대전화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고 착각하다가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와서 놀란 적도 있다. 그분 휴대전화 번호를 다른 동료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같은 실을 쓰고 바로 옆자리에 있는 동료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할까 봐 묻지 않았다. 대신 카카오톡으로 전화하기를 통해 통화한 적도 있다. 아라는 이날도 모르는 전화번호를 보고 당연히 배달 기사님이거나 직장 동료 번호일 것으로 생각했다. 받았다.
"여보세요?"​​
한 여자분이 대답한다.
"김아라 씨 되시죠? 김아라 씨 맞나요?"
"네, 맞아요.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아라는 한숨이 나온다. 홍보성 전화라는 확신이 들어서이다.
평소 보험, 카드, 부동산 등에 대해 홍보성 전화를 너무 많이 받는 아라는 '김아라 씨 되시죠?'라는 말만 들으면 '죄송합니다. 제가 직장 일로 통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자동 답변한다. 그러면 대개는 상대방이 알겠다, 언제 통화 시간이 되냐고 묻는다. 나는 보험, 부동산 등에 대한 거라면 전혀 할 생각이 없으니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끊는다. 그래도 끝까지 조금만 들어보라고 큰 목소리로 전화를 못 끊게 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그런 분에게 미안해서 끝까지 들었었다. 그러나 홍보성 전화에 이골이 난 아라는 크게 '죄송합니다.' 외치고 전화를 먼저 끊는다.
그런데 이날 그 여자분은 우체국이라고 했다.
"우체국인데요, 등기수령해야 할 본인이 전화를 안 받다가 이제 통화되었네요."
"아, 그냥 아파트 문 앞에 놓아두세요."
"본인이 직접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택배나 등기도 저와 확인 통화하고 문 앞에 두었는데요?"
"아, 본인이 반드시 직접 받아야 합니다."
"내일 몇 시쯤 집에 계세요?"
"내일 아침 9시쯤에는 받을 수 있어요."

아라는 순간 교통법규 위반인가란 생각 했다. 성격이 급한 아라는 평소 속도 50이면 62 정도로 달려 벌금 통지서를 받은 적이 3, 4번 정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라는 최근에 받았던 법규 위반 통지서가 그냥 아파트 우편함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등기이길래 본인이 직접 받아야 하는지 의아했다.
"대체 어디서 오는 건가요?"
상대방은 아라가 그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아, 모르시나요?"
"네. 대체 어떤 등기길래 제가 직접 받아야 하는지 궁금하네요."
"법원에서 오는 등기인데, 저는 내용을 잘 모릅니다."
"그래요? 대체 법원에서 제게 왜 등기를 보내는 건지요.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네요. 법원에서 오는 거면 심각한 거 아닌가요?"
"그런 것 같네요. 저는 배달을 가는 거라 이유는 잘 모릅니다.
전혀 연락받은 바가 없나요?"
"네."
"본인 확인 먼저 할게요. 이름 김아라, 주민등록번호 앞번호는 ****** 맞나요?"
"네, 맞아요"
"내일 9시쯤 방문할게요. 본인이 수령해 주세요."
"네, 그런데 궁금하기도 하고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오늘 제가 우체국에 직접 갈게요."
"아니, 지금 제가 지금 법원이라고요. 법원에서 지금 등기가 나가니 내일 되어야 받을 수 있어요."
"그럼 제가 그 법원에 갈게요. 대구지방법원이죠?"
"지금 법원에서 등기가 나가서 안 됩니다."
"어쨌든 법원에서 등기가 우체국으로 갈 거니 우체국이 마치는 시간 전에 제가 가서 그 등기를 직접 수령할게요."
"법원에서 지금 나갔기 때문에 내일 되어야  등기가 우체국에 등기가 갑니다. 아, 법원 등기 내용을 알 수 있는 분이 지금 법원에 계시는지, 출장 가셨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계신다면 전화 연결해 드릴게요."
"네, 연결 부탁드립니다."
수화기 너머로 자판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 그분이 지금 사무실에 계시네요. 잠시만 기다리면 전화 연결해 드릴게요."
전화 연결음 같은 것도 들리지 않고 바로 한 남자가 받았다. 바로 옆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금방 받았다. ​​
"안녕하십니까? 000 소속 000입니다."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무슨 소속과 이름을 밝혔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법원 등기의 이유가 궁금했던 아라는 묻는다.
"법원에서 등기 올 일이 없는데 이상하네요."
"아, 법원에서 전화 안 오던가요?"
"네, 전화 온 적 없어요."
"이상하네요, 전화가 갔어야 하는데. 왜 안 갔지?"
"그럼 법원 등기받는 이을 이유를 전혀 모르신다는 겁니까?"
"네, 대체 제가 왜 법원으로부터 등기를 받는 거죠? 무슨 이유입니까? 그럴 일이 없는데요"
"전혀 모르시고, 전혀 그럴 일이 없다는 말씀이죠?"
"네."
"아 김아라 씨 최근에 외국으로부터 물건 택배시키신 거 있나요?"
"최근에요? 없는데요?"
"인터넷에서 해외 배송받을 물건 없다고요?"
"네."
"이상하네요. 김아라 씨의 관세 번호로 수입된 물건 중에 있어선 안 되는 물품이 나왔습니다. 최근 관세 번호로 뭐 주문한 거 없나요? "
"네? 제 번호로요? 말도 안 됩니다. 제가 그런 물품을 산 적은 전혀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최근 물건 배달시킨 곳 어디서 주로 시키나요? 관세 번호 적어야 하는 건 전혀 시키신 적 없나요? 옷이라던가 등등"
"네, 몇 달 전쯤에 쿠 0이나 그런 곳에서 뭔가를 시킬 때 자동 관세 번호가 기록된 걸 산 적은 있어도 최근에 관세 번호 기록할 것 시킨 적 없어요. 워낙 물건이 중국에서 배송이 많이 오곤 하니 자동으로 관세 번호가 가끔 등록되어 클릭한 적은 있지만, 최근에 그런 적은 없고 금지 물품은 더욱 배송받을 일이 없어요. 대체 제가 배달시킨 그 물건이 뭔데요?"
"이상하네요. 김아라 님이 배달시킨 것 중에 골프채가 있는데, 골프채 앞 둥그런 부분 안에 향정신성 약품이 나왔습니다."
"네? 그게 무슨 일인가요? 향정신성 약품이라뇨? 제가요? 전 골프채도 시킨 적 없어요. 아라 다른 사람이 제 관세 번호를 도용했나 봐요."
"안타깝네요. 하여튼 골프채 안에 향정신성 약품 즉, 마약이 나와서 심각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내일 김아라 님이 법원에 나오셔야 합니다.  시키신 게 아니라면 매우 심각한데요?"
"지금 법원에 나오라는 등기가 내일 온다는 건가요? 내일 등기가 오고, 내일 법원에 가야 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저는 진짜 그럴 일이 없어요"
아라는 그때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흥분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통화의 끝부분에 아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에 잠시 통화를 들었다. 아라가 이상하다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때쯤 아진이도 '엄마 전화 끊어. 보이스피싱 같아'라고 입 모양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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